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지난 4월 27일의 남북정상회담 중 화제의 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은연중에 내뱉은 이 말이었습니다.
평양에서 판문점까지의 거리를 그의 말대로 멀다고 하면 안 되는 거리였지요.
이 말이 왜 나왔을까?
바로 냉면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어렵사리 평양에서 가져온’ 그래서 제법 먼 길을 온 냉면을 소개하다가 문득 ‘멀다 하면 안 될 길’임을 자각했던 것이겠지요.
그는 본의였든 아니었든 중의법을 구사한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4월이 지나고 기록에도 남을 뜨거웠던 여름을 힘들게 지나오면서 냉면은 남쪽의 사람들에게는 줄을 서서라도 먹고 싶은 피서 음식이 되었습니다.
물론 냉면 맛을 모를 리는 없었지만, 그것은 뭐랄까
한 여름의 시원함과 함께 북미와 남북 관계가 잘 풀려나가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내포한, 그러니까 중의적 뜻을 가진 음식이 되었던 것.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그 옥류관 냉면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지나쳐서였을까..
북측의 고위급 인사가 내뱉었다는 이 말이 진위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남북관계가 잘 안 되길 바라오? 왜 그렇게 질문하오?”
-이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6월 1일
안 그래도 그는 말품새가 그리 곱지 못한 것으로 회자되던 터라 이번에도 아마 그렇게 말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지경이긴 합니다.
물론 말이란 것이 나름 그것이 나온 갖가지 배경과 맥락이 있는 것이니까, 달랑 한 문장만 놓고 평가하기는 무리가 있고, 또 실제로 현장에서 들었던 이들 가운데는 그런 말은 못 들었다는 얘기도 들려오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북미관계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 따라 왔다 갔다 하고 있고, 한국 정부는 그나마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겨우겨우 북한과 미국을 붙잡아 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재벌 회장들 아니라 누구라도 냉면이 쉽게 넘어갈 것 같지는 않군요.
그래서 지난여름 시원함과 간절함의 중의적 의미를 담았었지만
이제쯤엔 졸지에 무례함과 답답함의 중의적 의미를 지니게 돼 버린 냉면의 팔자
그러고 보면 냉면이란 것이 본래 두 얼굴의 음식이긴 합니다.
누구는 아무리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하고, 누구는 거의 중독되다시피 하니까요.
그리고 나서도 냉면은 또 한 번의 반전 있으니,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냉면의 또 다른 얼굴은 그것이 본디 겨울 음식이라는 것.
“겨울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던 냉면이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호철 작가
함경도 원산이 고향인 작가 이호철도 겨울냉면을 그리워했다는데 올 겨울 냉면은 또다시 그 어떤 간절함을 담아낼 수 있을까...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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