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우리 모두가 들었던 옛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중국 한 마을의 동장이 도량의 물이 잘 흐르도록 바닥의 쓰레기를 끌어모아 깨끗하게 청소를 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이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당신이 미꾸라지를 다 잡아먹기 위해 도량을 치운 게 아니냐”
사람들은 오히려 동장을 비난하고 나서더라는 겁니다.
너무나 억울했던 동장은 한밤중에 몰래 마을을 떠나버렸습니다.
선의를 위한 일이라도 대중이 곡해한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30년 전에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바로 1989년 제5공화국 청문회에 출석한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였습니다.
그는 기자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준비해온 발표문을 낭독했습니다.
“저에겐 이제 도망칠 곳도 없습니다.
5공 청산을 위해서라면 감옥이라도 가겠습니다.”
그는 염치를 아는, 창피하지 않은 전직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지요.
그 후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그는 정말 자신의 소망대로 기억되고 있을까...
“예금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다.”
“미국식과 같은 민주주의를 했다.”
이런 사고는 그의 배우자 역시 마찬가지여서 많은 어록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우리 내외도 5.18 사태의 억울한 희생자다”
“민주주의의 아버지,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등등
그는 넘치도록 당당했고 그 당당함은 바이러스처럼 퍼져서 광주를 왜곡하고 모욕하는 자들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은둔해있던 산속 사찰에서 나와 보무도 당당히 걸음을 옮겼던 사람
그 유명해진 골목성명 후 합천으로 내려가 다음날 새벽 동도 트기 전에 연행될 때도 당당했던 사람.
그는 오래전 자신이 이야기한 중국 고사 속 억울하게 도망친 동장에게 스스로를 빗댄 이후 한 번도 생각을 바꾸지 않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억울합니다.
“이거 왜 이래!”
2019년 3월 11일, 광주지방법원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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