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천막에서 살며 가축을 키우는 사람”
그는 장막에서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 창세기 4장 20절
창세기 맨 앞에 등장하는 아담의 아들 카인의 후손들은 천막에서 살았습니다.
셈하기 어려운 아득한 시간부터 인류와 함께 기록되었던 구조물, 천막.
양을 치는 목동에게 천막이란 비바람과 들짐승으로부터 생명을 지켜주는 보금자리였으니…
천막은 그 안에 들어서는 자를 따뜻하게 감싸는 지극히 기본적인 기능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시절이 바뀌어 1850년대
골드러시로 물결치던 미국 서부에서 천막은 옷으로 변신했습니다.
어느 날 ‘리바이 스트라우스’라는 사람이 두꺼운 천막 천을 이용해 옷을 만들었는데
쉽게 닳지 않는 그 튼튼한 바지가 광물 캐는 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청바지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천막은 또 다른 향수를 불러옵니다.
“은은한 불빛 향기가 멀리 새어 나가면
때 묻고 상처받은 구두가 휘장을 젖히고 들어선다”
- 강영환 < 포장마차 >
시인의 표현처럼
귀갓길 카바이드 불빛 아래 값싼 안주를 벗 삼아 한잔 걸치던 아버지들의 뒷모습은
무언가 아련함을 불러오는 그 시절 단골 풍경이었습니다.
천막은 때 묻고 상처받은 마음까지 보듬어주는 위로와 온기였던 것입니다.
어제 서울시가 철거했던 광화문의 천막들
아수라장 끝에 잠시 사라졌던 천막들은 몇 시간 만에 더 많이 세워졌습니다.
철거하면 두 배로 더 세우겠다던 위협은 현실이 되었지요.
허가 없이 천막이 세워진 이후부터 어린이들은 분수놀이를 마음껏 하지 못하게 되었고
시민들은 걸어 다닐 때 위협을 느꼈으며
큰 경기 때마다 흥겹게 모이던 축구 응원은 다른 장소를 물색해야 했습니다.
물론 민주주의란
생각이 다르더라도 함께 가야 하는 더디고 비효율적인 절차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천막은 다른 이들을 품는 대신 내치려 하고 있었고
세상을 향해 고함을 지르고 있었으니…
“은은한 불빛 향기가 멀리 새어 나가면
때 묻고 상처받은 구두가 휘장을 젖히고 들어선다”
노란 불빛을 따라 휘장을 젖히면
그 안에는 위로의 온기가 가득했던 천막의 기억.
그리고 고함과 욕설과 몸싸움으로 뒤범벅이 된 채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는 2019년의 또 다른 천막들…
휘장을 젖히면 그 안에 가득한 것은 무엇인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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