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조선을 상징하는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은
한때 본래 자리에서 3.75도가량 비틀어져서 비뚜름히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조선을 강제병합한 일본이 가장 먼저 손보고자 했던 장소.
그들은 경복궁 한복판에 총독부를 들여앉힌 뒤에 광화문마저 남산을 향하도록 뒤틀어 놓았는데,
바로 그 남산에는 일본을 받드는 ‘신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바로잡아야 했지만, 고민은 깊었습니다.
“시내 한복판에 너비 50m, 높이 20m짜리 대형 공사막을 흉측해서 어떻게 설치하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너비 50m, 높이 20m의 건축물을 가려야 하는 대공사
고민하던 당시 문화재청장은 거대한 벽을 떠올렸습니다.
광화에 뜬 달
-강익중 설치미술가
벽은 벽이되, 공사장을 가로막은 그 벽은 또 다른 예술작품으로 태어나서 시민과 마주 선 것이지요.
공사를 진행한 3년 동안 길을 지나다니는 이들은 비록 광화문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너머를 상상했습니다.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역사
시민은 거대한 벽 너머에 있는 광화문을 보지 않고도 보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
그곳에도 단단한 가림막이 세워져있습니다.
“철거하지 않으면 가솔린 통을 들고 가겠다”
“일본 국민의 마음을 짓밟는 일. 내 마음도 짓밟혔다.”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
일본 정치권과 극우의 으름장으로 인해서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함께 지키던 소녀상은 벽 뒤에 가려졌고
아예 경비인력까지 배치돼서 관람객 출입을 막고 있다 하니
소녀들은 가려진 벽 뒤에 숨어 또다시 긴 시간, 숨을 죽여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사람들은 벽 너머에 있는 소녀상을 보지 않고도 이미 보고 있습니다.
견고하게 세워진 그 흰 벽과 보안요원이 배치된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어서,
누군가 철저하게 가리고자 하는 죄의식을 오히려 세상에 내보이고 있으니까요.
“역사적 폭거...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 사건”
-아이치트리엔날레 실행위원 3인
“협박이나 폭력을 긍정하는 일”
-나카가키 가쓰히사 전시 참가 작가
단단한 벽 앞에 가로막힌 오늘의 역사를 또렷이 보여준 그 전시의 이름은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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