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붉은색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그곳은 일본의 수도 도쿄가 전쟁으로 파괴된 뒤에 새로 건설된 ‘네오 도쿄’
1988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이후 수많은 SF영화에 영향을 준 ‘아키라’의 무대는 2019년,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배경이었습니다.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8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 속 2019년의 네오 도쿄는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속에서 그들은 또다시 경기장을 건설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지요.
196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감독 오토모 가쓰히로는 1964년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던 일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이 더 이상 패전국이 아니며 일본은 원폭 피해를 입은 전쟁의 피해자라는 사실
원폭 당시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소년이 개막식 최종 성화 주자로 나설 정도였으니까
올림픽은 전점 국가인 일본의 논리를 세계에 홍보하는 데 더 없이 좋은 무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애니메이션의 그 장면처럼 바로 내년에 열릴 올림픽을 준비하는 도쿄
그들은 이번에도 역시 후쿠시마의 참극으로부터의 ‘재건’과 ‘부흥’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들이 말하는 재건과 부흥은 무엇인가.
“지금 후쿠시마에서는
부흥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오염이 있음을 잊어버리고 싶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후쿠시마를 잊게 하기 위해서
매스컴은 더욱 올림픽의 열기를 올릴 것이고
올림픽에 반대한 국민은
비국민이라 불리는 때가 올 것입니다.”
-고이데 히로아키/핵물리학자
전 교토대학의 핵물리학 교수 고이데 히로아키의 말처럼, 그 저의는 이미 다 드러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아키라’에서 주인공은 인간을 넘어선 생명체가 되기 위해 폭주하다가 결국 도시와 함께 폭발하고 맙니다.
작품 속의 도쿄는 이미 첫 장면에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는데, 그 이후 간신히 재건해 올린 네오 도쿄 역시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지요.
물론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이야기하고자 했겠지만.
그것은 건드려서는 안 될 영역까지 침범하여 다스리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이 가져온 참혹한 말로였습니다.
작품이 제작된 시기는 일본경제 버블이 정점에 이르렀던 1988년도
그들이 자신감으로 넘쳐흐르던 시기였는데
아마도 지금 그들은 그때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치유하는 대신 그저 덮어두려고만 했던 탐욕의 세상을 향해서
오래된 작품이 보내온 묵직한 경고
네오 도쿄의 2019년은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시사 - 역사 > 손석희앵커브리핑(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8.6(화) 기시 노부스케…'친서' 그리고 '훈장' (0) | 2019.08.07 |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8.5(월) '표현의 부자유, 그 후' (0) | 2019.08.06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7.30(화) 살아있는 갈대들의 묵직한 전쟁 (0) | 2019.07.31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7.29(월) 에우제비우를 추억하다 (0) | 2019.07.30 |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7.25(목) 'Discover Tomorrow?' (0) | 2019.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