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반갑습니다. 예, 오늘 공부는 정심행선분 제23, 책 267페이지 본문을 큰 소리로 같이 독송해 보시겠습니다.
부차 수보리 시법평등 유무고하 시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무아 무인 무중생 무수자 수일체선법 즉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보리 소언선법자 여래설즉비선법 시명선법
또한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하느니라
아도 없고, 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이
일체 선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수보리야, 말한 바 선법이란 것은 여래가 설하되
곧 선법이 아니고 그 이름이 선법이니라.
예, 여기에 분의 이름이 정심행선인데, 66페이지 거기 봐요, 깨끗한 마음으로 선을 행함. 했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선을 행함. 아주 간단한 분인데, 그 끝부분에
/선법이란 것은 여래가 설하되 곧 선법이 아니고 그 이름이 선법이니라./
예, 선법이라는 것은 착한 것, 훌륭한 일, 그런 겁니다. 그래서 선법이 아니고 그 이름이 선법이라고 한 것은 선법, 착한 일이라 하는 것은 우리 보살이 착한 일을 했다하면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임으로 이름만 선법이지, 선법이다 하고 떠벌일 일은 못된다. 그 이름이 선법이다. 이름이 선법이지 선법이라고 떠벌일 일은 못된다.
스님들 같으면 ‘수행을 잘 한다.’ “햐, 그 스님 대단해.” 대단하기는 뭐 대단해. 원래 수행자는 수행을 하는 것이 정도이고 또 우리 보살님들은 보살행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죠. 그런데 그것을 워낙 안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보살행을 잘 하는 사람 보면, “저 사람 참 훌륭해” 말은 그렇게 하지만 본래 훌륭해야 되는 거죠.
그 위에 또 하나 보시면,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하느니라/
부처님의 광명, 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상정등정각 같은 이런 깨달음의 세계를 말할 때, 주로 태양에 많이 비유해요. 태양이 이 세상을 비출 때, 사사로움을 가지고 비추지는 않아요. “내가 산등성이를 좀 많이 비춰야 되겠다. 골짜기는 덜 비추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비추지는 않습니다.
태양은 똑같이 비춥니다.
그런데 근기에 따라서
산등성이는 좀 많이 비춤을 받고,
골짜기는 덜 비춤을 받고, 그런 거지요.
예, 사람에게 가피를 내릴 때도 부처님께서는 저 사람한테 좀 많이 내리고, 이 사람한테 좀 적게 내리고, 부처님이 분별심을 내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은 저 태양과 같이 똑같이 가피의 빛을 내리쬐지만 그 신심이 높고 그 법이 높은 사람은 부처님의 태양광명을 많이 받는 거고, 근기가 낮고 하는 짓이 시원찮고 수행력이 떨어지면 받는 거죠. 바로 그 얘깁니다.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고 그랬잖아요.
또 우리가 법성게를 보면 우보익생만허공이라. 이런 말이 있어요.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그런 말은 들어봐야 되는데. 읽어보겠습니다. 우보익생 만허공. 우보익생 만허공. 아주 가문 날 하늘에서 보배비가 쏟아져요. 그러면 보배 비는 똑같이 평등하게 비를 내립니다. 비가 내려옵니다. 그런데 그 그릇에 따라서 지상에 있는 그릇, 그러니까 작은 그릇은 작게 빗물을 받을 것이고, 큰 그릇은 크게 받을 뿐이지, 비가 차별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그 감로부부가 비치면 쏟아진다 하지만, 사람사람이 자기 근기 따라서, 또 자기 수행력에 따라서 그 보배 비를 많이 받는 자가 있고, 적게 받는 자가 있을 뿐이지, 보배 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그랬어요. 심지어는 높고 낮음이 없다. 이 말에는 출가자 재가자, 출가한 스님들에게는 부처님이 많은 가피를 내리고, 재가자_집에 있는 신도들에게는 가피를 좀 덜 내리지 않느냐? 또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는데, 그것 또한 분별이고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기만 하면 스님들만큼만 하면 스님들만큼 가피를 받고 마음의 열림이 있는 것이고, 비록 스님이라 할지라도 재가자 보다 수행력이 떨어지면 가피를 적게 받고, 또 마음 열림이 적은 거죠.
그래서 우리는 하기만 하면 다 되는 일이지, 부처님한테 법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이것을 의심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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