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스님으로 보내던가 다 붙들고 앉아있으니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억지로 되는 것은 없겠죠. 그런데 이 노보살님 사연을 들어보니 너무 아파요. 아들 낳았다고 얼마나 좋아했겠어요. 그리고 그 시대에 아들도 하나만 낳은 게 아니고 둘을 낳았으니 더 좋았을 거 아닙니까? 그 아들 뒷바라지 하고 키우고 이렇게 하는 과정 속에 오직 희망을 가졌던 것은 나중에 장가들여서 떡두꺼비 같은 손주 보는 즐거운 인생을 그렸을 텐데 아직도 결혼도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상은 욕심만 갖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인연이라는 것을 소중하게 가꾸었어야 되는 것인데 아마 그런 부분들이 좀 덜한 결과가 이런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저는 꼭 아들을 결혼으로 종영하려는 이유는 별로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저희들이 하고 싶어야 되는 거거든요. 정하고 싶다면 눈을 너무 높이 뜨지 말고 조금 낮추어 뜨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꼭 보면 이 안되는 분들이 두 가지 부류가 있어요.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내 눈의 평균치를 따지지 않고 그 이상을 자꾸 추구하다보니까 주변에서 사람들은 조건을 너무 많이 따지고, 그럼 본인 또한 조건이 까다롭다 보니까 안 맞는 그런 경우가 무척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너무 크게 꿈을 꾸기 전에 자녀분들이 알아서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관심을 끊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네가 알아서 해라.” 그래서 본인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오직 기도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잔소리를 해서 될 수 있는 것이면 벌써 되었을 거예요. 40대 50대가 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상상을 해봐도 얼마나 잔소리를 많이 했겠어요. 그러면 못하는 아들은 또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보면 이런 게 있어요. 이세상의 모든 자녀분들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안 되니까요.
저는 그렇더라구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지 모르지만 제 기분으로 생각해보면 옛날에 우리어머니나 우리 아버지가 참 공부를 잘했기를 원했거든요. 그런데 잘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 되더라고요. 문제는 뭐냐 하면 아이의 수준을 보고, 아이의 능력을 보고, 능력을 가진 만큼만 숙제를 주거나 눈높이를 맞추면 이 세상에 효자 아닐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 수준을 무조건 따라와 주기를 바라고, 내 친구 자식이 잘된 것처럼 너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소통이 지금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는 돈을 준다고 부모가 아니에요.
걱정을 한다고, 잔소리를 한다고 부모가 되는 게 아니에요.
자식의 능력을 평가하고
자식이 진정 바라다보는 행복이 뭔지를
바라다보는 게 중요하겠죠.
40이 되었든 50이 되었든 목표가 결혼이어서는 안 되는 거겠죠. 뭐가? 행복이 우선되어야 되겠죠. 네가 느끼는 행복이 정말 혼자 있을 때 행복하다면 그것마저 해라. “아, 그리고 어머니 저는 꼭 장가를 들고 싶어요.” “그럼 그대로 해라.” 이렇게 바라봐주는 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바라봐 주는 부모이기보다는 “내가 살아보니까 이게 행복했으니까 너도 이렇게 살이라.”고 강요를 하다보면 오히려 자녀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고맙기보다는 잔소리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 어린 자녀들을, 특히 유치원이라는 곳에서부터 잘 기를 필요가 있어요. 거기서 친구와 어우러지고, 소통하고 하는 것이 다 교육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은 뭡니까? 영어 잘하고, 수학 잘하고, 과학 잘하고, 그래서 모든 것 잘해서 올백 받아오는 놈만 공부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부분만 교육이 아닙니다. 친구들끼리 소통하는 것도 교육인 거예요. 그래서 가방 들고 학교 가서 잠만 자고 왔어도 그놈이 공부하고 온 거에요. 왜? 그 선생님 눈치 보면서 잠자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아니 그게 세상사는 방법과 직결이 분명이 되어 진다는 얘기죠. 이 세상에 공부 **없습니다. 그 선생님이 눈이 시퍼렇게 뜨고 공부를 가르쳐주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데 그거 비껴서 눈감고 자느라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 것까지도 다 공부라는 거죠.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그 여학생 남학생이 어우러져서 레크레이션을 함께하고 서로 소통하고 하는 것이 다 공부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볼 때는 결혼을 지금 40대 50대 두 자녀가 결혼을 못했다고 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너무 걱정할 이유는 없다. 너희들이 행복한 일이라면 난 기꺼이 지켜봐 주련다는 마음으로 오직 부모의 입장에서 그들이 결혼을 하는 게 원이라면 부처님 전에 열심이 축원 들여서 좋은 인연이 좀 속히 이루어져서 우리 아이가, 우리 자식이 정말 가정을 잘 이루어서 살기를 발원하고 기도해주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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