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월도스님_BTN즉문즉설

월도스님 BTN 즉문즉설 14_6. 붓다로 가는 길(탁! 돌아서면 싹~ 잊어버립니다.)

Buddhastudy 2017. 8. 28. 19:45


불교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안이비설신의 육근이 육경이라고 하는 대상을 만나서 끊임없이 번뇌를 일으켜 가는 것 자체를 제어하는 것. 그래서 그 번뇌를 청정하게 비웠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바로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오늘날 우리를 보면 흔히 생각 생각의 잊어 살아야 행복합니다. 마음에 너무 많은 부분의 기억을 담고 있거나 마음에 풀리지 않는 수수깨끼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번뇌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절대 지나간 것을 그렇게 길게 기억하지 않습니다. 순간의 어떤 부분을 지적하기 위해서 많은 후배들을 경책을 할 때는 무섭게 경책을 하지만,

 

탁 돌아서면

싹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중생들은 본인에게 조금만 뭔가 서운한 게 있으면 그 서운한 것을 가지고 다녀요? 안 가지고 다녀요? 끝까지 가지고 다닙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꺼내봅니다. 그 서운한 것을 많이 꺼내서 저장을 해서 꺼낼게 많은 사람들은 삶이 괴로운 사람입니까? 행복한 사람입니까? 괴로운 사람이에요. 그런데 보는 것 마다 내 마음에 상처가 되는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내 마음에 항상 좋은 것만 있어요. 항상 좋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사람입니까? 행복한 사람이에요.

 

옛날에 어떤 큰 스승이 제자하나를 데리고 항상 가르쳤습니다. “얘야, 계를 범하지 마라. 계를 범하지 마라. 이 불자가 특히 출가한 스님이 계를 번하는 것 자체는 독사를 만나는 거나 마찬가지다. 특히 그 계를 지키기 위해서 출가한 스님은 여자를 가까이하면 큰 업이 되느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여색을 가까이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어느 날 이 큰 스님이 제자를 데리고 길을 가다가 폭우가 내려서 갑자기 강물이 늘어났습니다. 냇물이 늘어났는데 그러다보니까 그 냇물을 건너야만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폭우가 내려 건너가기 부담스러운데 하필이면 그곳에 가보니까 어떤 아주 예쁜 아가씨가 냇물을 건너느라 위로 가고 밑으로 가고 그냥 건너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요. 그때 큰 스님께서 그 젊은 아주 아름다운 그 여인을 덥석 등에 업고 길을 건넙니다.

 

제자가 볼 때 우리 큰스님이 정말 웃기는 분이다. 정말 여자를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의 손을 잡아도 안 되고 여자를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어찌 저렇게 주저함도 없이 저렇게 아름답고 젊은 여자를 선뜻 업고 건너나. 그리고 큰 스님은 그 강을 건너놓고 난 이후에 아무 말 없이 길을 갑니다. 제자는 끊임없이 하루 종일 뒤를 따라가면서 도저히 수수 깨기가 풀리지 않았어요.

 

왜 일까? 도대체 뭘까? 나한테는 절대 하지 말라 해놓고 당신은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뭘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 종일 길을 가다 저녁때쯤 되어서 너무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스님에게 여쭈었습니다. “큰 스님, 큰스님께서 평소 저에게 여자는 독사 같은 존재다. 절대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말씀을 하시고, 오늘은 그 냇가에 그 젊은 여인을 주저함도 없이 덥석 업고 건널 수 있습니까?” 하고 따졌어요.

 

그때 큰 스님께서 허허허허 웃으시면서 너는 아직도 그 여인을 업고 있느냐? 나는 냇물을 건너고 난 후 그 여자를 놓고 왔느니라.” 바로 중생에게는 끊임없는 잔상으로 그 부분을 업고 있지만, 이미 큰 스님은 그 여인을 여인으로 본 것이 아니고, 그 냇물을 건너지 못해서 고통 받고 있는 한 중생을 그냥 구제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중생은 구제하지 않고 여색으로 봤다라고 하는 것을 놓고 본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보는 안목을 제대로 가져야 될 것이며, 그 마음 또한 세상을 보는 부분의 판단을 잘해야 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오해를 해서 상대방을 폄해하거나 상대방을 험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험담할 수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유가 있겠지. 이유가 있을 거야.’ 라고 하는 부분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그런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내 마음에 번뇌를 가지고 살기 보다는 항상 세상을 좋게 볼 수 있는 주인공이 되어서 산다면, 그것 자체로서 우리 불자들이 누군가에게 억압당하지 않는, 스스로 그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우리 불자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모쪼록 가족관계 친구관계, 도반관계 여러 가지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오해라는 것을 내려놓고, 항상 이해와 포용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혜로운 불자들이 되리라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