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안타까운 사연인 것 같아요. 누구든지 부처님 도량에 찾아올 때는 중생의 허물을 벗고 자비를 받아들여 부처님과 같은 존재이고 싶은 마음으로, 나를 변화시켜서 보다 선한 존재로 만들어서 세상에 칭송받는 삶을 꿈꾸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오신 분들인데, 누구든지 절에 들어가서 오래 살다보면 그 마음자체를 부처님과 같이 잘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꼭 보면 돌연변이가 생겨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그런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전도몽상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처음에 마음먹고 왔을 때는 본인도 착하고 주변사람들도 착하게 어우러져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와서 살다보면 그 근본을 잊어버리고, 주지도 않은 권력을 본인 스스로가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그런 경우들이 무척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요즘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 당시에도 그런 것은 성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코산비 마을이라고 하는 곳에 머물러 계실 때의 일이었습니다. 안거 기간이 되었는데, 그 안거에 동참하는 많은 스님들이 끊임없이 싸웠습니다. 끊임없이 싸우다보니 부처님께서는 그 싸움을 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보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냥 숲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숲속에서 코끼리가 과일을 따오고, 코끼리가 시중과 공양을 해서 3개월을 사십니다. 그 많은 제자들은 부처님이 숲속으로 들어가신 그 모습에 너무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숲속으로 부처님을 찾아갑니다.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이 계속 그렇게 다투고 그렇게 싸우고 한다면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할 수 없다.
난 이 착한 코끼리에게 공양을 받을지언정 싸움 박질하고 있는 너희들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라고 거절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다시는 싸우지 않겠다는 맹세를 듣고 난 이후에 부처님께서는 다시 코산비 마을로 다시 돌아오십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싸움을 무지막지하게 하고 있는 수행자보다는 저 산속에 있는 코끼리가 훨씬 더 우월하다 라고 하는 가르침을 주신 바가 있습니다. 우리가 도량이라는 곳에 와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오신 분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해내기는 커녕 서로가 반목하고, 서로가 다투어가면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그 괴롭힘을 당하는 누군가가 부처님과 인연을 끊어버릴 수밖에 없는 삶을 반복한다면 그 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죄가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현실 속에서 부처님이 생존해 계심과 다름이 없는 부처님을 모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반목하고, 우리가 누군가를 왕따를 시키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그래서 그가 부처님의 진리를 등지고 갈 수 밖에 없는 삶이 만약에 이루어진다면 그 도량에는 부처님의 법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부처님이 살아생전에 계실 때도 코산비 마을이라고 하는 그 곳에 안거를 하고 계실 때도 제자들이 싸웠을 때 그 싸우는 모습이 싫어서 어디로 갔다고 그랬습니까? 숲속으로 가셨다고 그랬어요. 바로 우리가 사는 도량 속에서 불자들끼리 서로 반목하고 싸운다면 아마 현실속의 부처님 운도 그와 똑같이 자리를 비우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반드시 하는 지혜로운 불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죠?
우리는 반드시 싸우기보다는 화합이 근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아난이라고 하는 제자가 부처님에게 물었습니다. 부처님, 우리 사부대중이 서로 다투지 않고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도의 반은 이룬 게 아니겠습니까? 라고 여쭌 적이 있어요. 그때 부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하면 “아난아, 그것은 도의 반을 이룬 것이 아니고, 도의 다를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다.”
화합이라고 하는 것이 이만큼 중요하다고 가르쳤던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자비를 바탕으로 살아야 되는 겁니다. 자비라고 하는 것은 뭡니까? (사랑 자) 모든 중생을 즐겁게 해주는 게 자요, 비는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이 비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도량에 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해야 될 것은 바로 자비인 것입니다. 모든 중생을 사랑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시는 불자들이 되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 괴로움이 보이거든 그 괴로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애쓰는 보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과 눈 맞춰 부처님이 오직 나만 바라다봐주기는 바라는 이기심에서 벗어나서, 내가 그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내는 보살행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번 해보십시오. 모든 눈을 떠서 모든 대상이 다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눈을 습관으로 들여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무엇을 괴로워하나 라는 것을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을 해결해주기 위해서 애써 실천했을 때, 그것이야 말로 멋진 불자의 행위요, 공덕을 짓는 행위요, 또 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것을 형성하는 행위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흔히 보면 계화동준이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가 부처님도량에서 살아갈 때 지켜야 될 덕목이 6가지가 있는데, 그 6가지 중 첫째 덕목이 뭐냐 하면 계화동준이라. 약속을 지키라는 얘기죠. 약속을 지킨다는 얘기는 뭔 약속일까요? 이 도량에 들어온 모든 불자들은 계율을 지켜야 된다는 겁니다.
계율을 지킨다는 얘기는 바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약속이 바로 계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가는 불자는 아닙니다. 바로 부처님이 계율에 근거한 부분으로 우리는 지켜야 될 것은 지켜야 되는 거고, 소위 행해야 될 것은 행해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불자가 되어야 된다.
둘째는 뭐냐 하면 견화동행이라. 상대방과의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는 불자가 되어라. 여러분 이 세상을 살다보면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으면 다퉈요? 안 다퉈요? 다투게 되어있어요. 이해라고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겁니다. 이해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넉넉한 마음으로 포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만이 이해력이 생깁니다.
여러분, 부부지간에도 싸워요? 안 싸워요? 형제지간에도 싸워요? 안 싸워요? 싸우게 되어있습니다. 이 싸움이 잦은 집에는 뭐가 없다는 얘깁니까? 이해가 없다는 얘기거든요. 내 입에 있는 혀도 가끔 물어뜯어요? 안 뜯어요? 내 입에 있는 혀도 물어뜯는 게 인생인 겁니다.
그래도 어찌 구구각각 딴 인격을 갖고 사는 우리들이 딱 맞는 인격을 바라겠습니까? 부부지간에 왜 싸우지 않는 거냐하면 어느 한쪽이 이해력이 넓다는 얘기가 되는 거거든요. 수많은 대중이 모여 살면서 어떻게 우리가 한마음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한쪽은 이쪽으로 가자고 이야기하고, 한 쪽은 저쪽으로 가자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쪽도 맞고 저쪽도 맞다고 이야기하는 넓은 이해력이 요구되는 것이 바로 승단의 모습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불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 종단은 이 이해력이 많이 요구가 됩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는 사찰의 살림을 스님이 중심이 되어서 살기 보다는 불자들이 중심이 되어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모든 금전출납부터 사찰경영에 신도들이 직접 참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참여하는 그 분들이 화합을 중심으로 참여를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내 고집을 중심으로 모이다보면 다퉈요? 안 다퉈요? 바로 그런 다툼으로 질문주신 분의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꼭 이해다. 이거죠. 내가 꼭 옳다고 이야기 할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도 귀 기울여서 들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듣는 게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내 고집을 세우기는 참 쉽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 정말 충분한 인내가 필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내어야 된다. 견화동해라.
세 번째는 이화동균이다. 이익을 균등하게 나눠라. 나만 무조건 잘났다 해서 내 이익만 가지려하다 보면 다툼의 현상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절에서 큰 제가 끝나거나 초파일 행사가 끝나거나 그러면 부처님 전에 올렸던 공양물을 서로 나눠요? 안 나눠요? 이 나눌 때도 균등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대게 보면 공양주한테 잘 보인 사람은 덩어리를 큰 것을 싸가지고 가고, 잘못 보인 사람은 적은 것을 싸가지고 가다보면, 적은 거 싸가지고 가는 사람이 큰 거 싸가지고 가는 사람 봤을 때 갈등이 일어나요? 안 일어나요? 일어나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이 균등해야 된다. 항상 앞에서 일하는 리더가 자기가 우선 희생을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월광사 같은 곳도 일을 할 때 보면 간부님들이 시주를 먼저 해놓고 그리고 일반 불자들에게 하라고 그래야 따라오지, 지는 쏙 빠지고 너희만 하라고 그러면 해요? 안 해요? 안하잖아요.
그런데 꼭 손해는 보지 않고 이익만 취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그 단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항상 리더는 뭔가 균형 있게 뭔가 나눌 때는 나는 적은 것을 갖고 상대에겐 큰 것을 주려고 애를 쓰고, 또 나는 썩은 것을 먹어도 너는 옳은 것을 주려고 마음을 냈을 때 그것이 공덕의 주인공인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든 기회는 가진 사람의 마음이 어떤 거냐에 따라서 그 단체가 잘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게는 인색하고 상대방에게는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집에 조상제사를 모신다고 칩시다.
여러 형제들이 모이겠죠. 여러 형제들이 모였을 때 그 종가집의 종부는 그 음식에 탐을 내면 안 됩니다. 그날 오는 모든 가족에게 좋은 음식이 있거든 다 나누어서 옛날에 우리 어렸을 때는 집에 돌아갈 때 그냥 안보내고 ‘봉송’이라는 것을 쌌어요. 아세요? 봉송. 제사음식을 다 골고루 나눴어요. 좋은 음식을 나눠서 한보따리씩 들려 보내면 가는 분의 기분이 좋아요.
그 다음 제사에도 오고 싶은 생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연히 오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좋은 것은 다 창고에 넣어놓고 입 싹 닦고 앉아서 그냥 돌아가라면 그 다음부터는 오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 당연하듯이, 우리 사찰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무엇을 나눌 때는 균등하게 나누는 마음을 가지고 단체를 꾸려가라.
네 번째는 신화동주다. 비밀을 두지 마라. 서로 소곤거리지 마라는 얘기에요. 그냥 사찰에서 일어나는 일이 있거든 모두가 알고, 모두가 지나갈 수 있다 보면 귓속말 할 일이 있어요? 없어요? 이 세상에 제일 나쁜 사람은 저는 항상 귓속말 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요.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말은 서로 하지 마라.
비밀의 영역을 만들지 마라.
비밀을 서로 이야기하거든 아예 하지를 않는 것이 좋다.
비밀의 영역을 만들지 말고 모두가 다 투명하게 경영될 수 있도록 마음을 내라.
그 다음에 다섯 번째가 뭐냐 하면 구화무쟁이라. 입으로 다투지 마라. 우리가 싸움을 해서 다투는 경우는 많지가 않아요. 뭐로 다툽니까? 이 말 때문에. 꼭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말로 상처 입을 이야기는 아예 하지를 마라.
그 다음에 여섯 번째는 의화동지라. 즉 상대방의 뜻을 거스르지 마라. 되도록이면 어떻게 하라는 얘기에요?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는 얘기에요. 들어주고 “그래. 네 말도 맞아. 네 말도 맞아. 그런데 네가 다 듣고 나니까 내 생각은 좀 요런 것도 있거든. 네 생각과 내 생각을 섞으니까 이런 게 되네. 우리 한번 같이 가보자.”
싸울 일이 있어요? 없어요?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툼의 현상이 일어나면 부처님도 돌아설 수밖에 없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점을 꼭 기억하시고, 우리 도량에서 항상 부처님의 운이 우리들을 돌볼 수 있는 화합의 정신을 통한 사찰경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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