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질문주신 불자님은 제가 이 강룡사에 주지를 할 당시에 합창단도 하시고, 또 여성 소방대장도 하시고, 아주 홍천에서는 아주 엘리트 중에 엘리트에 속하시는 우리 보살님이신데, 저런 고민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사실은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단순하게 살고 싶죠. 그런데 단순해지지가 않아요. 단순해지지 않는 이유는 뭐냐 하면 노심입니다. 걱정입니다. 내일에 대한 불안함 같은 부분이죠.
우리가 흔히 보면 자살을 하거나 우울증을 많이 앓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에요? 삶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너무 절박하면 우울할 새도 없어요. 우리 과거에 우리 어머니들이 다자녀를 길렀던 농경사회 속에서 우리 어머니들은 우울증이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우울할 새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이놈 치다꺼리하고, 저놈 치다꺼리하고, 내일 깨 털러 가야 되고, 내일 콩 털러 가야 되고, 이웃집 품 팔러 가야 되고, 그냥 하루해가 뜨면 저 하루해가 언제 넘어가나 하는 그런 인생을 살았던 것이 우리 과거에 우리 어머니들의 삶, 아버지들의 삶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의 삶은 과거보다는 참 좋아졌지 않습니까? 이 좋아진 삶의 여유 속에서 느끼는 것은 뭐에요?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겨요.
그러면 내일에 대한 걱정이 생기는 겁니다. “내가 지금은 이렇게 괜찮은데, 내일은 아프면 어떻게 하지?” “내일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지금은 내 자식이 저 정도로 잘 살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잖아.” 뭐, 이런 위험성이 많이 노출되어져 있는 삶의 환경이 지금 현실의 삶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 자체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게 하거나 복잡하게 만드는 소위 번뇌가 많아지는 거죠.
그래서 이 번뇌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자체가 수행이에요. 그리고 여러분, 이 불교를 만났다는 것은 저는 큰 다행스러움이에요. 내 마음 밭에 모든 사람들이 번뇌 없는 삶이 없어요. 하나의 걱정이 끝나면 또 다른 걱정이 일어나죠. 그래서 큰 스님 전에 와서 친견을 하거나, 부처님 전에 와서 참배를 하거나, 스님에게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오냐 하면
"스님, 제가 이거 한 가지 소원만 딱 해결이 되면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잘할 거에요."라고 약속을 합니다. 제가 지켜보거든요. “너 한번 잘되나 봐라.”하고. 그리고 저는 기다리는 게 뭐냐 하면 네가 약속했듯이 꼭 한 가지만 딱 이루어지고 나면 더는 소원이 없다니까 한번 기다려보면요, 그거 이루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 또 있다고 또 쫓아와요.
다음다음이 끝없는 끝없는 욕구가 생기는 것이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동안은 그 욕구가 다 없어질 수가 없다. 그 욕구는 항상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보면
99섬 가지 사람이
1섬 가진 사람에게 뭐라고 한다고 그래요?
채워 달란다는 거죠.
내 현실에 만족이 있는 사람은
결코 나는 단조롭게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만족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더라.
그래서 부처님께서 우리 욕심은 한없다.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은 다 채울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을 채울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완벽하게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마음을 비우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면 나는 영원히 살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보면 많지 않아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나?
오늘이 내 생애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내 생에 마지막이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오늘이 내생에 마지막이라는 마음만 갖고 살면 너무나 시간이 없잖아요. 좋은 일 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베풀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내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그 하루하루는 값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 이 순간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부처님을 뵐 수 있는 시간은 오늘 하루뿐이다.
그런데 대게 인생사는 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을 해요? 숙제를 내일 하지. 내일 하지. 그러다보면 두 달 세달 방학이 그냥 가버립니다. 그래서 오늘 해야 될 게 좀 마땅히 오늘 해야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임제선사가 수처작주하라.
수처작주:
처해진 곳에 주인이 되어라.
오늘 이 순간이
내생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다보면,
걱정할 것도 별로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대게 보면
비운다라고 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없애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집착을 하지 말라는 거죠.
대게 보면 부처님과 중생의 차이가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중생은 지나간 거에 마음 뺏기는 게 중생이에요.
오지 않을 거에 걱정하고 앉아있는 게 중생이에요.
대게 보면 조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쫓아와서 뭐라고 그러냐하면 “스님, 나는 다음 생에 뭐가 될까요?” 얼마나 걱정이겠어요? 그죠? 다음 생에 뭐가 될지 뭘 걱정해요? 지금 열심히 하면 다음 생은 저절로 되는 건데, 그러니까 다음 생 걱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강룡사 와라. 와서 관세음보살 불러라.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면 명상이 참 좋은 거예요. 명상. 우리가 관세음보살 부르는 것도 명상이에요. 부처님께서 이 우주법계에는 이미 수많은 선지자들이 왔었고, 부처님이전에도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명상은 인류가 존재하는 순간부터 명상은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명상을 완성하신 유일한 분은 부처님이세요. 그 부처님의 명상은 수식관이었거든요. 그 수식관이 뭐냐 하면 내가 지금 여러가지 고민을 하고 있지만,
제일 큰 걱정은요,
숨 들어가시고
숨 나가는 것
요거 걱정하세요.
그래서 요것만도 너무너무 행복한 겁니다. 여러분들이 일상적으로 호흡을 할 수 있으니까 좋죠. 감기 한번 앓아보세요. 그래서 코가 한번 막혀보면 이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아요? 몰라요? 알아요.
그러니까 그 순간순간 “아, 내가 편안하게 호흡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내가 눈으로 편안하게 볼 수 있으니 감사하다.”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강룡사 절을 오고 있으니 감사하다.” 모든 순간순간을 잘 생각해보면 행복이 넘치지 않습니까? 그렇죠? 이 순간을 잘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은 근심걱정이 없어요. 그런데 그것을 싹 잊어버리는 거예요. 너무나 편안하게 사니까.
그래서 저는 가끔 인생의 미래를 걱정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어요.
종합병원 응급실 같은 데를 한번 가봐라.
네가 존재하고 있는 게 얼마나 귀중한 줄 알 수 있다.
그 부분을 확인 할 수 있는 게 내가 행복한 순간이다.
여러분, 먼 미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내가 지금 처해져 있는 환경을 긍정적으로 보면
끝없는 행복이 나한테 있고,
그 끝없는 행복을 확인하는 순간에
근심걱정 번뇌는 사라진다.
열심히 기도해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갈 수 있는
멋진 불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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