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크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낳는 것도 얼마나 소중합니까? 그런데 낳는 것도 소중하지만 기르는 정은 정말 엄청난 소위 은혜라고 볼 수가 있어요. 자녀를 갖지 못하는 아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마는 그냥 그렇게 사는 것 보다는 입양이라고 하는 부분을 통해서 부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을 쏟아서 아이를 기른다면 그것으로서 무량한 공덕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출가한 스님의 입장에서 이 부분은 정말 찬사를 보낼 일이고, 꼭 입양을 하셔서 정말 훌륭한 아이로 좀 길러주는 공덕을 더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불교가 조선시대 때 500년 동안 핍박을 받았어요. 사대문 안에 스님들이 못 들어갔습니다. 저 지방에 있는 스님들이 노역의 대상으로 착출이 되어 저 경복궁 공사를 하고, 다리를 놓고, 그야말로 모진 순환을 겪었던 것이 바로 조선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스님들이 대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불교 학문을 더해 왔고, 불교의 문화를 더해 왔어요. 훌륭한 스님들이 많았죠. 절집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났었죠. 이유가 뭘까요? 바로 절집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가 기르는 스님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스님의 피는 양반 피라는 그런 속설이 있어요. 무슨 얘기일까요? 바로 과거에 삼족을 멸할 수밖에 없는 위기상황에 있는 가문들이, 멸문지가를 당하는 그런 가문들이, 젖먹이 도련님을 데리고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그 어린 아이를 끌어안고 산중으로 도망을 가서 갖다 맡길 수 있는 곳이 오직 절 밖에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 절집에서 그 아이를 받아 길러서 암죽을 끓여 먹이고, 그 아이들을 키워서 천자문을 가르치고 불경을 가르치고, 그래서 스님의 대를 이어왔던 부분의 과거가 소위 조선시대 불교의 어떤 그런 맥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무척 많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다면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를 집적 기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입양이라고 하는 부분을 통해서 또 다른 하나의 인격을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길러주는 은혜만큼은 이 세상에 더 없는 은혜 일 수 있습니다.
단지 아이를 기르면서 내 자식을 대가를 바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입양을 해서 기르면서 아이에게 대가를 바라기 보다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길러주는 공덕이라고 하는 행위만을 통해서 입양을 해서 기른다면 좋은 부분의 가정이 웃음꽃 만발하는 그런 가정을 이룰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입양을 생각하신 부분은 잘했다고 찬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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