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
폭파돼 사라졌다 스스로 부활한 서울 유일의 람사르 습지
1945년 해방 직후
미군이 항공 촬영한 여의도 일대 한강사진이다.
일본이 만든 여의도비행장 활주로가 x로 뻗어있다.
여의도 옆 작은 섬이 밤섬이고 그 위가 선유도다.
밤섬은 고려시대에는 죄인을 가두던 곳이었다.
섬을 감옥으로 활용한 것이다.
조선 건국 이후 밤섬에는 양인들이 거주했다.
주로 고기잡이를 했고, 염소 방목 땅콩 재비 등을 생업으로 삼았다.
가뭄으로 한강물이 줄어들면
사람들은 밤섬과 여의도 사이를 걸어다녔다고 한다.
유인도의 마지막 해인 1967년의 조사를 보면
78세대 443명의 사람들이 살았다.
1968년 밤섬은 무인도가 됐다.
산업화와 한강 개발 때문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여의도를 개발하기 위해
여의도 주변을 제방(윤중제)으로 쌓은 것으로 설계했다.
윤중제를 쌓을 돌을 얻기 위해
밤섬 주민을 마포구 창전동으로 강제이주시키고 밤섬을 폭파했다.
1968년 2월 9일 밤섬이 폭파됐다.
암반 덩어리였던 밤섬은 하루아침에 지도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자연의 복원력이란 참 대단하다.
폭파 당시 밤섬의 중앙이 크게 파져서 윗밤섬과 아랫밤섬으로 나눠진 채
섬의 흔적만 남았는데
한강 물이 싣고 온 모래와 흙이 밤섬의 암반 위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모래섬으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시가 새로 태어난 밤섬을 최초로 측정한 해가 1996년이었다.
그때 측정된 밤섬의 크기는 4만㎡였다.
그러데 2020년 현재 밤섬의 면적은 24만㎡가 되었다.
서울광장 크기의 20배가 넘는다.
한강물을 타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토사로 인해
밤섬은 지금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전혀 뜻하지 않은 자연생태 천국을 얻게 된 서울시는
1999년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일반인들의 섬 출입을 통제했다.
이 조치로 인해 밤섬의 자연생태계는 더욱 풍성해졌고
2012년 서울 유일의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인간의 발길이 끊긴 밤섬의 자연생태계는 놀랍도록 복원되었다.
버드나무 씨앗이 한강과 바람에 실려와 싹을 틔워
섬 전체가 버드나무 숲을 이뤘다.
그 숲에 수많은 철새와 생물들이 번식했다.
최근에는 수달까지 산다고 보고되었다.
인간이 개발 욕심으로 폭파시킨 밤섬이 스스로 복원하여
서울 한강 한복판에 자연생태 천국으로 재탄생한 것,
이것이야 말로 ‘한강의 기적’아닌가.
2009년 개봉한 영화 <김씨 표류기>는
한 남자가 자살하려고 한강에 뛰어들었다가 밤섬에 표류해 살아난 후
밤섬의 자연 속에서 생존해 가는 이야기를 다뤘다.
나는 상상한다.
한강의 복원력을 상징하는 밤섬의 사례처럼
인간이 파괴한 한강 곳곳을 자연으로 복원하는 상상 말이다.
동호대교 근처 중랑천과 한강이 합수하는 곳에 있던 저자도도
모래를 퍼가서 사라졌는데
준설을 멈춘다면 저자도도 지금의 밤섬처럼 부활할 것이다.
한강백사장도 곳곳에 복원하고
인간이 파먹은 한강섬들도 다시 복원하고
이 얼마나 즐거운 상상인가.
# 한강걷기 코스: 광흥창역 – 서강대교(밤섬)- 여의도
광흥창역(6호선)에서 내려 서강대교로 진입한다.
서강대교 아래에 밤섬이 걸쳐져 있는데
거기서 밤섬을 내려다보면
밤섬의 자연을 상세히 볼 수 있다.
서강대교를 건너 여의도 한강변을 걸어가면서도
밤섬을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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