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전우용 사담

전우용의 픽 1화 - 진상과 퇴짜 그리고 대동법

Buddhastudy 2019. 4. 19. 19:39


사담 속 코너 전우용의 픽입니다.

오늘 첫 번째 말씀드릴 내용은

우리가 흔히 쓰면서도 그 유래와 본래 뜻에 대해서 잘 모르는 단어,

진상과 퇴짜에 관한 말입니다.

 

흔히 진상 그러면 우리가 쓸데없이 까다롭게 구는 고객한테 많이 쓰죠.

그 사람 진상 고객이다.’ 이런 말이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데요,

 

원래 진상이라고 하는 것은 잘 아시다시피 공물 중에서

왕궁에 들어가는 특별한 공물을 진상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진상이라는 개념으로 변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진상품을 검수하는 관리가 너무 까다롭게 따졌기 때문에 그런 말이 붙었다고 하는 거고요,

또 하나는 이름은 진상품인데 그 명색이 실질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에 붙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조선 초기에 공물징수법을 제정할 때, 지역별로 특산물을 지정해서 그걸 납부하게 했습니다.

현물로 납부하게 했죠.

이 현물들은 전부 대부분이 한강 수로를 통해 들어와서 한강 변에 하역하게 됩니다.

 

하역이 된 물건들을 그냥 창고에 넣을 수 없기 때문에 이걸 倉直(창직)이라고 합니다.

창고를 담당하는 관리가 일일이 검수를 해서 합격품과 불합격품을 골라냅니다.

 

창지기는 손에 2종류의 종이를 들고 물건을 검사합니다.

봐서 물건이 합격품이면, 창고 안에 들이라는 뜻에서 들()자가 적힌 종이를 거기에 붙여줍니다.

창고 안에 인부들이 집어넣는 것이죠.

 

근데 불합격품은 도로 가져가라’ ‘물려라이런 뜻의 물릴 退()자가 적힌 종이를 붙여줍니다.

우리가 요즘도 간혹 써요.

소개팅 장소나 이런 곳에서 상대방에게 퇴짜 맞았다. ’

또는 누구에게 퇴짜 넣었다.’ 이런 말을 쓰죠.

퇴짜 놓다는 말이 여기에서 생겼습니다.

 

공물이 창지기에 의해서 퇴짜 맞았을 때 도로 가져가라고 하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을 때 그때 쓰는 말이죠.

 

근데 어지간하면 들()자가 붙어야 될 물건인데 퇴짜가 붙는 경우가 있어요.

물건을 집고 지방 향리가 창지기에게 항의합니다.

이게 왜 퇴짜 감이냐? 물건이 멀쩡하지 않으냐?”

 

그럴 때 창지기가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건 일반 공물이 아니다.

왕실에 들어갈 진상품이기 때문에 특별히 까다롭게 검수해야 한다.”

이래서 진상이란 말에 특별히까다롭게 굴다.’ 이런 뜻이 생겼다는 설이 하나고요.

 

또 하나는 진상품 그러면 최상품 물건일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산삼을 배정받은 지역에서 어떤 심마니가 200년 묵은 산삼을 찾았다고 치죠.

덥석 왕에게 진상을 하면 될까요? 안 될까요?

왕은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 물건을 받으면,

아니, 작년에는 30년 묵은 거 밖에 안 보냈는데

올해 300년 묵은 게 있는데 안 보냈네.”

 

전임 지방관이 혼쭐이 납니다.

그건 뭐 전임자가 혼쭐이 나든말든 후임자야 관계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당장 내년에도 300년 묵은 산삼을 찾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없어서 진상품에는 사실 최상품이 아니라 중간정도 되는 물건을 보내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래서 명색은 최상품이나 실제로는 중간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는 뜻에서

사람에게도 그런 뜻의 말을 붙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 진상품 또 퇴짜와 관련된 이런 이야기는

조선 초기에 공물을 현물로 징수할 때,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죠.

 

그런데 지금도 우리가 그런 현상을 겪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도 기후가 변하거나

또는 어떤 지역에서 특산물을 구하기 위해서 남획 또는 남벌을 하거나 이래서

본래 특산물이던 것이 특산물이 아닌 것으로 바뀌는 경우가 생깁니다.

 

우리가 몇 년 전만 해도, 몇 십 년 전만 해도

사과하면 대구였는데 지금은 아닌 것처럼.

 

이런 현상이 벌어지면 막상 배정된 공물을, 배정된 진상품을 구하지 못하는 지방이 생깁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다른 지방에서 구입해서 다른 물건과 교환해서 필요한 진상품을 만들어내야 되겠죠.

 

이 과정에서 지방 수령들이 백성들에게 과거보다 더 많은 액수의 쌀이나 포를 걷고, 그걸로 상인을 동원해서 필요한 물건을 사서 상납시키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이걸 방납이라고 그랬어요.

 

근데 이 방납 과정에서는 지방관과 일부 상인들만이 혜택을 보고, 백성은 손해를 보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선 정부가 그동안의 공물징수법을 전면적으로 바꿔서

현물이 아니라 쌀로 또 나중에는 포목이나 돈으로 내게 하고,

그것을 공인이라 불리는 조달 상인들에게 나눠줘서

현물로 사게 하는 이런 제도를 시행합니다.

대동법이라고 하는 법이죠.

 

조선시대에는 이런 재정 운용법이 사실은 경제 정책의 핵심이었어요.

그래서 이 대동법이 시행된 결과

상업이 발달하고, 교환이 활발해지고,

상업자본이 축적되었다고 하는 것은

교과에서 기초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 대동법이 16세기 말에 처음 시범 출시되어서

17세기에 확대되면서 전국적으로 시행되기까지 거의 100년이 걸렸습니다.

 

역사의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없지만,

만약 당시 조선 정부가 조금 더 과감하고 신속하게 대동법을 전면실시했더라면

어쩌면 조선사회는 경제적으로 좀 더 다른 조건에서 개항을 맞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세상이 변하면, 하다못해 기후가 변해도, 작은 풍토가 변해도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가 새로운 활력을 찾아서 발전한다는 것을

이 대동법 실시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는 거죠.

 

우리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였을 때,

외국 차관에 의존해서 그래서 경제를 일으켜야 했을 때,

그 때 채택했던 수출주도형 재벌중심 경제성장 정책을 반세기 넘게 시행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조건이 달라졌고, 우리 앞에 놓인 세계정세가 달라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까지의 성장정책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 어찌보면,

관행적으로 또 우리가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편하고 당연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조건에서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은

대체로 낭떠러지로 향하는 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앞에 낭떠러지가 놓여있다는 것을 알면서

이제까지 걸어왔다는 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길을 계속 걸어간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모르는 미래, 우리가 걷지 않았던 길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마는

그 두려움을 극복할 때에만이 좀 더 안정적인

그리고 좀 덜 밝은 미래를 향한 그런 길을 갈 수 있다고는 것

그것이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이 아닐까 합니다.

 

관성에 의지하는 것보다는

희망을 찾는 것이 바른 태도라고 봅니다.

이상 전유용의 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