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속 코너, 전우용의 픽입니다.
제주도는 국제적인 관광지가 됐습니다.
또 근래에는 반 달 살이니, 한 달 살이니 해서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에서 힐링의 시간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평화로운 섬으로 알려져 있죠.
그러나 이 섬에서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내가 핏자국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에메랄드 빛 바다로 유명한 월정리에는 군이 주둔하고 있어서 여기에 끌려간 많은 사람들이 군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구요,
힐링 장소로 유명한 북촌리는 이틀 동안 400명이 죽어서 남자가 없다고 해서 무남촌이라고 까지 불리었습니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이상이 사망한 4.3사건
대다수가 원통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죠.
그래서 오늘의 픽은 <원과 한> 이라는 말고 좀 준비해봤습니다.
‘귀신 잡는 해병’ 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용감하고 특수임무에 능한 군대가 있죠.
이 군대가 제주 4.3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수.순천 일대에서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죠.
(* 여수, 순천사건: 1948년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 사건 진압을 거부해 일으킨 사건)
이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수륙양면에 걸쳐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부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1949년 5월에 해병대가 창건이 됩니다.
해병대 자체가 제주 4.3사건 진압과 관련이 되어 창건이 되었던 건데요, 그 1년 후에 6.25전쟁이 일어나고, 진해에 있던 해병대 본부는 급히 제주도로 본부를 옮깁니다.
그곳에서 제3기, 제4기 해병대원을 모집했죠.
전원 제주도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우리 군대가 제주도 청년들을 믿지 못했던 겁니다.
제주도 청년들 중에는 그때 부모, 친지, 친척을 잃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아니 잃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죠.
그런데도 전황이 급하다보니까 그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또 제주도 청년들 역시 빨갱이라는, 좌익이라는 의심을 면하기 위해서는 군대에 들어가서 결백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겠죠. 이 둘이 합쳐졌습니다.
하지만, 군대는 이 청년들을 그대로 믿지 못해서 혹독한 사상 검증 절차를 거치도록 했습니다.
해병대로 입대한 제주도 청년들이 인천상륙작전의 주역이 됐습니다.
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죠.
4.3의 상처가 해병대의 강력한 군기에도 영향을 안긴 셈입니다.
4.3의 발자취는 가족들의 유족들의 삶에, 가슴에, 이웃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여러 곳에까지 흔적을 남겼습니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은 피해자로 하여금 하소연 할 길을 없게 만듭니다.
하소연할 길이 없는 사람들이 국가를 원망하는 마음이 쌓일 수밖에 없겠죠.
조선 태조 때, 역적으로 몰려서 이방원에게 죽었던 정도전이 복권된 것은 조선이 망하기 직전인 1870년 대원군 때였습니다.
단종과 단종비가 복권된 것은 숙종 때 였고, 김종서가 복권된 것은 영조 때였습니다.
300년 400년 500년이 지난 일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잘못 판단해서 남에게 피해를, 개인에게 피해를 줬던 일에 대해서는
신원,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의미의 절차를 통해서
복권시켜주는 것이 우리의 문화 전통이었습니다.
(*신원: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버림)
그리고 그것이 조선왕조를 500년간 유지시켜준 비결 중 하나였을 겁니다.
흔히 원한(怨恨) 이라고 보통 우리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원은 ‘원수 갚다’는 말에서 보듯이 갚을 수 있는 억울함입니다.
반면에 한은 되돌려 줄 수 없기 때문에, 갚을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풀어야 하는 억울함입니다.
자식으로 인해서 받은 억울함
부모로 인해 받은 억울함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받은 억울함 어떻게 갚겠습니까?
국가로 인해 받은 억울함도 한에 속합니다.
옛날에는 이런 한이 쌓이면, 백성들 사이에 한이 쌓이면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역병이 돌아서 나라를 위협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한이 쌓이지 않도록,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가끔씩 대사령(大赦令)을 내려서 사면복권절차를 취하곤 했었죠.
우리나라에서 현재에도 3.1절, 광복절, 이럴 때 특별사면이 이루어지는 것은 한편으로 이런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서 특히 현대에 들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문학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한(恨)의 민족이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이 국가 권력으로 인한 폭력, 국가 폭력을 집중적으로 대규모로 당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입니다.
일제강점과 해방 후의 혼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은 국가로부터 억울하게 당하고도 거기에 항변할 수 없는 상황들을 너무 자주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속에서 한이 응축되었던 것이죠.
이제 우리는 ‘한(恨)의 민족이다’라고 하는 자기 규정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은 국가를 위해서나, 우리 자신들의 평범한 삶을 위해서나,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입니다.
제주 4.3을 국가폭력으로 규정하고, 완전한 해결을 약속한 작년도 문재인 대통령의 담화는 앞으로 우리가 정의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해야 될 일들이 무엇인지 짚어준 그런 이야기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튜브로 댓글 남겨 주시면 할 수 있는 한 대답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KTV 유튜브를 통해 매주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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