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는 무엇을 해도 그 병을 제거하는 거예요.
병이 있고 법이 있는데
법은 지혜를 닦는 게 법이고요
병은 형상에 집착하는 게 병이에요.
그래서 공양을 해도 형상에만 집착하면 그게 유루복이 되어서 병이 되는 거예요.
염불을 해도 형상에만 집착하면 그것이 병이 되고
경을 보더라도 형상에만 집착하면 그것이 병이 되어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걸 지혜를 닦는 쪽으로 돌리는 것이 그게 대승불교입니다.
그래서 전부가 다 공덕인데, 공덕을 형상공덕을 취하려고 하면 그건 병이에요.
형상공덕이 뭐냐?
뭘 하든지 그것을 있는 모양 그대로를 내가 취해서 그대로를 소모한다.
그건 아니거든요.
무슨 공덕을 닦더라도 원이차공덕_ 원컨대 이 공덕이
보급어일체하야_ 일체에 다 널리 전해져서
아등여중생이_ 나와 중생이
개공성불도_ 다 불도를 이루기를 원하옵니다.
이게 보살이 짓는 복덕을 많이 짓되, 복덕 상에 매이지 않고 지혜를 닦는 것이 보살이다.
그게 대승불교입니다.
그래서 서산스님이 선가귀감을 지으면서 뭐라고 그랬냐하면
단제기병이요_ 다만 그 병만 제거함이요
부제기법이라_ 그 법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이랬거든요.
그러니까 염불하는 법이나 기도하는 법이나 주력하는 법이나 참선하는 법이나
형상에 매이는 것은 허망한 거예요.
그래서 그건 병이에요.
이것을 지혜를 닦아서 반야보리를 이루는 쪽으로 회향을 하면 그게 전부 다 법이에요.
경을 딱 보면 문자가 허망한 건데, 문자만 자꾸 외우면 그건 병이거든요.
문자를 통해서 자성지혜를 떡~ 보면 그건 법이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를 좋은 물을 따뜻하고 깨끗한 물을 한 통을 받아서
목욕을 해서 씻었어요.
목욕 다 씻기고 나면 그 물을 버려야 하거든요.
물만 버려야 하는데, 물하고 아이하고 함께 다 버리면 안 되죠.
경을 딱~ 봤으면 경을 통해서 지혜를 얻으면 돼요.
그런데 경 잘못 보면 안된다 싶어서 경까지 다 버려버리면 지혜까지 다 버리는 게 되죠.
그래서 공덕을 짓는데, 허망한 공덕에 집착하면 안된다더라 해서
아예 짓지 않아버리면 소용이 없는 거예요.
공덕을 짓되 허망한 형상에 집착하지 않고 이걸 지혜를 닦는 쪽으로 자꾸 돌리면
그게 법이다.
그래서 언제든지 허망한 형상에 매달려서 계속 빠져들면 그건 병이니까 그건 버려야 하지만
그 공덕을 짓는 행위는 버리면 안 된다.
병만 버리면 되지 법까지 버리면 안 된다.
단제기병이요_ 다만 그 병을 버리는 거지
부제기법이라_ 그 법을 버리는 게 아니다.
그래서 기도 잘하면 많은 복이 생기는데
그 복을 그냥 내가 받아 써 버리면 없어져요. 나중 되면 없어져 버려요.
이걸 지혜를 닦는 쪽으로 돌리면 아니 그 복이 한량없다, 이 말이죠.
그게 무루복이 된다.
그래서 몇 가지 예를 들어봤는데요
그럼 다 복만 짓느냐?
복만 짓는 것도 상당한 거예요.
복도 못 짓는 사람 많아요.
그럼 복 못짓는 사람 뭐 지을까요?
죄 지어요. 죄 짓지 않으면 복 지어요.
죄 안 짓고 복 짓는 것만 해도 굉장히 대단한 거예요.
여기서 죄는 말하지 않는데, 여기서 다 말해야 돼요. 짓는 게 사실이니까.
그러면 죄를 지으면 죄의 보답이 있고요
복을 지으면 복에 보답이 있는데
죄의 보답을 죄보라고 그럽니다. 죄의 보답이라고.
복의 보답을 복보(福報)라고 그래요. 복의 보답.
죄보가 있는데 여하시 죄보냐_ 어떤 것이 죄보냐.
이건 종범이 설명을 하는 거예요, 어디 있는 게 아니고.ㅎㅎ
오왈_ 말하기를
탐학위복하니_ 죄보는 언제든지 탐심과 악행이 들어가는 게 죄에요.
탐심 없는 죄가 없고, 악행 없는 죄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탐심악행, 이걸 줄이면 탐악이거든요.
꼭 탐심이 일어나서 죄를 짓지, 탐심 없는 죄는 없습니다. 희한하죠.
죄지을 때는 반드시 탐욕이 먼저 등장하는 거예요.
그러면 뭐냐? 악을 지어요.
그럼 결과는 어떻게 되죠?
입옥을 해요. 지옥에 들어가요. 들어갈 입, 지옥 옥. 탐악입옥
득죄수고에요_ 죄를 얻어서 고를 받아요.
이와같은 것이 죄업보응이니_ 죄업의 과보로 따라오는 것이니
필연상보라_ 반드시 그러한, 틀림없는 길이다.
탐악, 이게 고통이라는 건 눈앞에 그대로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음식맛이 좋다고 너무 욕심을 내서 다른 사람도 못 먹게 내가 다 먹었다.
다른 사람도 같이 먹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 먹을 것까지 내가 다 먹었다.
그런데 탐악이거든요. 악행을 한 거거든. 다른 사람 못 먹게 굶게 만들었으니.
그럼 내 몸에 좋을까요?
너무 많이 먹으면 이 몸이 아주 괴로운 거예요.
그게 바로 죄보를 그냥 받는 거예요. 똑같은 거예요.
또 너무 안 먹으면 어떻게 되냐?
안 먹으면 또 죄보를 받죠.
몸이 약해지고, 눈이 잘 안 보여서 일을 못 하죠.
많이 먹는 것도 죄고, 적게 먹는 것도 죄고,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몸에 딱 알맞게 먹는 것, ㅎㅎ
그게 선이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과보를 받는 거에요.
여아시 복보냐_ 어떤 것이 복보냐?
시선은 상천이라_ 보시 선행을 자꾸 닦으면 천상에 올라가요. 시선을 하면.
탐악을 하면 지옥에 들어가고.
보시, 베푸는 것은 선이거든요.
탐내고 죄악을 저리는 건, 악이라는 것은 다른 이에게 고통 주는 거거든요.
탐욕으로 다른 이에게 고통 주는 것은 지옥에 가고
보시로 선업, 선행을 자꾸 닦으면 천상에 올라가요.
천상이라는 게 딴 게 아니고, 좋은데가 천상이거든요. 좋은데, 좋은 거.
그런 건 당장 나타나는 거 아니에요?
예를 들면 시장 같은데 가면 돈 주면 물건 받잖아요. 천상 간 것에요.
주니까 값을 치러주니까 물건을 산 거 아니에요.
물건 없는 거 받았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뭐든지 주면 좋아지는 거예요.
말도 좋은말을 해주면 좋은말이 돌아오니까 주면 좋아져요.
그런데 욕심내서 뺏으면 지옥가는 거에요.
시선은 상천이라_ 보시로 선행을 닦으면 시선이거든요. 보시. 착할 선.
상천을 해요. 하늘에 올라가요.
하늘에 올라간다는게 저 꼭대기 가서 헤매는 게 아니라 좋아진다, 이 소리예요, 전부 좋아져요.
시선상천을 하면 어떻게 되냐?
이건 복보가 역연이라_ 복보가 복의 보답이 아주 분명한 거다.
그런데 천복이 수승이나_ 그 천상의 복이 비록 이길 승, 좋긴 좋아요.
천상복처럼 더 좋은 게 없어요. 이건 누리기만 하는 복인데.
천상에 올라가면 받기만 해요.
비록 수승하기는 수승하고 좋기는 좋으나
수진환타라_ 다 받으면 받는 것이 끝나면 도리어 떨어져요.
시장에 가서 물건 산 것도 그렇지, 물건 쓰다보면 다 없어지거든요.
없어지면 또 사야 하잖아.
수진환타에요_ 받을 수, 다할 진. 받는 것이 다 되면 도리어 떨어져 버려요. 환타를 해요.
이게 복의 한계거든요.
그래서 보살은 그렇게 하지 않고 어떻게 하냐?
여하시 지혜오_ 보살이 중요한 건 지혜입니다. 복을 짓되 지혜로 돌리는 거예요. 그게 보살입니다.
여기서 음식을 가지고 있는데, 음식을 고대로 놔둬서 썩히는 게 아니라
그걸 먹어서 내 몸으로 만든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냥 썩히면 소용이 없잖아요.
여하시 지혜냐?_ 어떤 것이 지혜냐
소작복덕은 불응탐착이라_ 자기가 지은 복덕을 탐착을 하지 않는다, 보살은.
이게 내가 지은 복인데, 내가 써야 하고, 내가 받아야 하고, 내가 써야 한다고 탐착하지 않아요.
탐착하는 것은 어리석다.
소작복덕 불응탐착이라.
그렇게 어떻게 해야 하냐?
무주행시로_ 머묾이 없는 보시를 시행함으로
무주행시를 해요, 머묾이 없이 보시를 시행해요.
머묾이 없다는 것은 거기에 바람이 없고, 거기에 뭘 의존함이 없이 보시를 실행함으로
복해쌍전이니라_ 복과 지혜가 쌍으로 온전하게 하나니라. 복과 지혜를 두루 갖출 수 있다.
이것이 보살지혜입니다.
그런데 보살보다 더 부처님 지혜가 있어요. 대지.
여하시 대지냐?_ 어떤 것이 지혜냐?
복지지지_ 복이라든지 지지라든지
양부쌍방_ 둘을 다 잊어버려요.
복짓는다, 지혜 닦는다 그 생각까지 없애요.
그러면 저절로 이게 복과 지혜가 완전하게 되는데
저절로 완전하게 되니 그 경지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무인공산에 수류화이라_ 주인 없는 빈 산에, 주인 없는 빈산이라도 물은 흐르겠죠. 물이 흐르고, 또 꽃은 피겠죠. 꽃이 피더라.
이게 최고의 높은 지혜의 경지에요.
복지쌍방하니_ 복과 짛혜를 쌍으로 잊어버리니까
무인공산에_ 주인 없는 빈 산에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
그 대단한 지혜는요, 저 흘러가는 구름같아서 계획을 하고 목적을 세우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저절로 되는 거예요.
바다가 목적 세워서 바다가 된 게 아니라, 그냥 바다가 된 거고요.
바람이 목적 세워서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 그냥 바람 부는 거예요.
지혜라는 게 그런 겁니다.
이게 아주 대지혜라는 거예요.
억지로 하는 일이 없이 저절로 되는 지혜, 그 경지까지 지혜가 있어요.
보살지혜는 원을 세워서 복을 닦되, 복 안 닦고 지혜가 안 되거든요.
복을 닦되 그걸 다 복으로 소비하지 않고, 탐착을 하지 않고, 바라는 마음 없이 보시를 해요.
이게 무주행시.
그래서 복회를 쌍으로 온전하게 한다.
중생이 왜 지혜가 안되느냐 하면요
바라는 마음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보시를 하되, 바라는 마음을 없애야지, 그놈 놔뒀다가는 아주 그놈이 고약한 놈이거든요.
왜 괴로우냐?
모든 괴로움은 바라는 마음에서 생깁니다.
참 안타까운게 그 바라는 마음이에요.
아이 참 내, 이상한.
참 이상한 게 있어요.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20살 넘으면 저희들 알아서 살도록 놔두면 될 텐데 자꾸 바래요.
그 바라는 마음 때문에 병이 생기는 거예요.
전부 다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왜 못 내려놓는지 참 모르겠어요.
그 바라는 마음 턱~ 내려놓으면 없어요, 없어.
사람만 그래요. 사람만.
고양이나 강아지나 이런 것들 보면요, 자식한테 재산 물려주는 것도 없고요
고양이 보면 재산 한 톨도 안 돌려주더라고요.
그런데 지금까지 잘 이어져 나가더라고요.
키울 때는 정성들여 키우더라도 다 키우면 그냥 내쫓아버려요.
새끼 끼고 사는 동물이 없습니다.
인간이 영장류가 그러는데, 말로는.
자식에 대해서 집착하는 건요, 하등동물이에요. 영장류가 아니에요.
완전히 하등동물.
그게 왜 그러냐? 바라는 마음 때문에 그래요.
영장류가 아닙니다.
평생 자식을, 아이고 참, 이게 할 일이 없어서 그런 일을 하나. 보통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만날 근심·걱정을 안고 살아요.
바라는 마음 때문에 그래요.
잘못하면 심지어는 스님들도 그래요.
상좌한테 뭘 바라면 안 돼요.
그래서 나는 일찍이 바라는 마음 딱 끊어버렸어요.
오든지 말든지, 하든지 안 하든지, 끊어버리니까 마음이 편해요. 편해.
그렇다고 내가 뭐, 간섭 안한다고 저희들이 안 하나요?
간섭을 안 하면 더 신경 써서 더 바짝 차리더라고.
자꾸 가르치려 안하면 묻기도 하고
따라다니면서 가르치면 도망갑니다.
그래서 이게 취상이라는 게 전부 그런 거여요, 상에 취한다고.
취상을 하면 근심이에요.
그래서 상을 지혜닦는 쪽으로 돌리면 그것이 공덕이 되는 거죠.
상에 집착하면 복이라고 할 수 없고
복이 무고로_ 복이 자성이 없다라고 그래서 지혜 닦는 쪽으로 돌리기 때문에
복을 받음이 많으니라.
그게 오늘 법문에 핵심입니다.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요
원문을 요 원문이 몇 줄 안 돼요.
한번 읽으면 읽다 말아서 두 번만 읽고 마치겠습니다.
<금강경> 제 19장 법계통화분_ 법계를 다 교화하다.
시작~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 이시인연 득보다 부
여시 세존 차인 이시인연 득복 심다
수보리 약복덕 유실 여래불설 득복덕다
이복덕 무고 여래설 득복덕다
...
수고하셨습니다.
'스님법문 > 종범스님_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범스님]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아! 이것이 그거였구나! (깨달음의 길 43화) (0) | 2021.10.12 |
---|---|
[종범스님] '희구심' 무법가득분1 (깨달음의 길 42화) (0) | 2021.10.05 |
종범스님_ 꿈에서 깨는 순간 꿈이 없었구나 [큰 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0) | 2021.09.23 |
종범스님_ 수행정도에 따라 갖추게 되는 다섯 가지 [큰 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0) | 2021.09.13 |
종범스님_ 진실한 말로 말하노라 [큰 스님께 듣는 깨달음의 길] (0) | 2021.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