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무위복승분불 제11_ 무위의 복이 수승하다.
내용을 보시면요,
수보리야 여항하중소유사수하야_ 수보리야, 저 항하(갠지스강) 가운데 있는바 모래 수와 같이
항하라는 것은 갠지스강, 인도의 갱지스강입니다.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 숫자와 같이.
갠지스강에 모래 숫자가 많겠죠. 한량없이 많겠죠.
여시사등항하가_ 이와 같은 모래 수와 같은 항하가
그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숫자와 같은 항하가 있다, 갠지승강이 있다, 이 말이죠.
어의운하오_ 그렇다면 네 생각에 어떻겠느냐?
이게 말이 잘 이해가 안되는데요
인도에 긴 강이 있잖아요. 거기에는 한량없는 모래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한량없는 모래 수와 같은 갠지스강이 있다, 이런 소리예요.
시제항하사_ 이 모든 항하의 모래가
그 갠지스강의 숫자만으로도 한량이 없는데, 그 전체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숫자,
이 모든 항하의 모래가, 이런 뜻이거든요.
영위다부아_ 편안할 영, 어찌 영, 어떠하냐. 많겠느냐? 이런 뜻이에요.
이게 아주 엄청난 비유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유에요.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숫자만큼의 갠지스강이 있고
그 전체 갠지승강에 있는 모래알 숫자,
그럼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루 말할 수 없겠죠.
이와같은 모래가 이 모든 항하의 모래가
영위다부아_ 많겠느냐?
수보리언 하되_ 심이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단제항하도_ 다만 저 갠지스강만으로도
하나의 갠지스강의 모래알 숫자니까 엄청나게 많겠죠.
다만 그 항하만이라도
상다무수어든_ 오히려 많아서 숫자로 셀 수도 없는데
항하기사이리까_ 어찌 하물며 그 모래이겠습니까?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숫자만큼 갠지스강이 있다하더라도
그 갠지스강을 헤아릴 수 없을텐데,
그 전체 갠지스강의 모래알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거죠.
어찌 하물며 그 모래이겠습니까.
수보리야 아금에_ 수보리야, 내가 지금에
실언으로 고여하노라_ 진실로 말로 너에게 말하노라.
약유선남자선녀인이니_ 만약에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이칠보로_ 세상에서 가장 좋은 물건으로서
만이소항하사수삼천대천세계하야_ 만= 채운다, 이소= 이러한 장소, 어떤 장소냐?
항하사수와 같은_ 아까 얘기했던 전체 갠지스강의 모래 알 수와 같은
항하의 모래 수에 삼천대천세계를 채워서
삼천대천세계가 있는데요, 소천세계가 천 개가 중천세계이고, 중천세계 천 개가 대천세계인데, 이걸 그냥 삼천대천세계라고 그래요.
소천 중천 대천.
대천세계라고만 해도 되는데, 소천 중천 대천이 있다고 그래서 삼천세계라 하고
이걸 더 확실하게 기억시키기 위해서 삼천대천 세계 이럽니다.
그러면 삼천대천 세계가 얼마가 있느냐?
갠지스강에 한없는 모래알이 있는데, 그 모래알 숫자만큼의 또 갠지스강이 있어요.
그 전체 갠지스강의 모래알 숫자만큼의 삼천대천세계가 있어요.
그러면 그 삼천대천 세계의 금은이 거기에 칠보로 가득히 채워요.
이용 보시한다면_ 그것으로서 보시에 쓴다면,
이루 말할 수가 없죠. 보시도 보시도 그런 보시가 어디 있습니까.
득복이 다부아_ 복을 얻음이 많겠느냐?
수보리언하되 심다니다_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불고수보리하사되_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약선남자선녀인이_ 어떤 선남자 선녀인이
어차경중에_ 이 경 가운데서
내지수지사구게등하야_ 내지, 마지막에 전부가 아니고 전 부분이다. 사구게등만이라도 받아 간직해서
위타인설하면_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해설하고 선설하면
이차복덕이_ 이 복덕이
승전복덕이니라_ 앞의 복덕보다 나으니라.
이게 무위복승분입니다.
그럼 무위복이라든지, 차복덕, 전복덕 이런데
차복덕이라고 하는 것은 금강경을 수지독송해서 위인 해설한 복덕이고요
전복덕이라고 하면 그 한량없이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채워서 보시한 복덕이 그게 전복덕입니다. 앞에 복덕.
여기까지가 금강경 무위복승분 제11입니다.
지난번에요, 의법출생분 제8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로 보시를 하면
이 사람이 얼마나 복덕을 많이 얻겠느냐? 이렇게 얘기를 했고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중에 사구게 등만이라도 수지독송해서 위타인설하면
그 복이 더 낫다. 이랬거든요.
무위복승분 말하기 전에, 의법출생분에서는
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보시하는 것보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위인해설한 복이 더 많다. 이랬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한 삼천대천세계가 아니라
또 하나의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의 숫자와 같은 삼천대천세계가 아니라
그 갠지스강의 모래알 숫자와 같은 갠지스강이 있는데
그 전체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숫자와 같은 삼천대천세계가 있다.
거기에 꽉 채운 칠보를 보시한 복이라 하더라도
금강경을 수지하고 독송하고 해설하고 서사하는 이게 4종 수행인데요,
수지, 독송, 해설, 서사_ 쓰는 것.
그 공덕보다 못하다, 이렇게 된 거예요.
앞에도 그런 보시복과 지경복_ 경을 수지하는 복.
보시복_ 칠보를 보시한 복이다.
칠보를 보시한 복보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위인해설하고 서사한 지경복이 더 높다
이렇게 말을 했는데
여기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와서
하나의 삼천세계에 가득한 칠보가 문제가 아니고
한량없이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귀한 칠보를 꽉 채운 양을 보시하더라도
경을 수행한 복하고는 비교할 수 없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게 뭔 소리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무엇으로도, 또 이 세상에 있는 아무리 많은 것으로도
금강경을 수행하는 공덕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 소리예요.
이 세상에 무엇으로도, 아무리 좋은 거로도,
아무리 좋은 그런 질적인 것이라도, 또 아무리 많은 것으로도,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아무리 많은 것이라도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해설하고 서사하는 그런 금강경 수행공덕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다.
결론은 그거예요.
아무리 좋은 걸 갖다 놔도 금강경 수행을 따라갈 수 없고
아무리 많은 걸 갖다 놔도 금강경 수행을 따라갈 수 없다.
결론 그건데, 왜 그러냐하는 거예요. 왜 그러냐?
말씀들 하기를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꿈에 아무리 많은 걸 구하고 얻었다 하더라도 꿈 깬 다음에 한순간만큼도 못하다.
그래서 꿈 깬 다음에 일어나는 공덕은
꿈속에서 아무리 많은 걸 받아도 아무리 좋은 걸 받아도 꿈 깼을 때 받는 거 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금강경 사구게 만이라 하죠.
꿈 깼을 때 조금 받는 것만도 못하다.
꿈속에서 아무리 많은 걸 받았다 하더라도, 이런 얘기죠.
그러니까 꿈속에서 부자도 되어보고, 출세도 해보고, 꿈속에서 온갖 걸 다 해봤다 하더라도 꿈 깨고 나서 물 한잔 마시는 것만도 못하다. 이 얘기입니다.
왜 그러냐?
질이 달라요.
같이 비교해서 논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에요.
꿈은 억만년을 꿔도 꿈이거든요.
꿈하고 꿈 깬 내용하고는 같이 비교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아무리 좋은 거라도, 아무리 많은 거라도,
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반야수행은 비교가 안 된다.
반야 수행이 명상 수행인데 명상 수행은 뭐냐?
나를 찾는 수행이거든요.
명상이라는 건 나 찾는 운동이에요. 나 찾는 실천이에요.
생각을 고요히 한다고도 할 수 있고, 생각을 깊게 한다고도 할 수 있고
또 생각을 맑힌다고도 할 수 있고
여러 가지인데, 상 자가 들어가요.
그럼 그 상이 무슨 상이냐? 무슨 생각이냐?
나를 찾는 마음의 노력이거든요.
이 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나를 찾는 그 노력은 비교할 수가 없다.
이 얘기입니다.
이것을 금강경 야부 야, 단련할 야, 아비 부, 야 부.
옥편에 보면 사람을 일컬을 때는 남자를 칭하는 글자가 되는데
거기서는 보라고 해요. 보.
그래서 금강경에 야부송이 있다.
아버지다할 때는 부, 남자다할 때는 보.
야보송이 있다.
그 야보송에서는 이 세상의 물질하고 반야의 공덕이 왜 다른가를 언급하고 있는데
비류를 했습니니다.
진유라도 불환금이라, 참 진, 놋쇠 유. 참 놋쇠라 하더라도 금하고는 바꿀 수 없다. 불환금이라.
놋쇠가 아무리 많아도 금 못 따라가죠.
그렇게 법문을 해 놨어요.
이 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아무리 많은 것으로도
반야의 세계하고는 맞바꿀 수 없다.
그래서 이 반야를 닦는 공부야말로, 반야를 실천하는 수련이야말로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겁니다.
그 반야명상을 자꾸 닦아야 해요. 반야명상.
또 야부송에서 송를 달기를
...
입해산사도비력(入海算沙徒費力)_
바다에 들어가서 모래 숫자를 하나하나 세면 끝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건 헛되게 힘만 허비할 뿐이다.
이게 유루공덕을 얘기하는 거예요. 주고받고, 주고받고,
끊임없이 주고받아야 그저 세월만 가고 힘만 들 뿐이다.
윤회 고를 면하지 못한다.
구구미면주홍진(區區未免走紅塵)
구구해도 애를 써도 구구하게 설명한다, 구구하게 애쓴다 이런 말이 있거든요.
그걸 구구라고 그래요. 일산구할 때 구입니다.
두 글자 쓰면 애쓴다 소리예요. 구구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그 구구하게 주고받고 그저 부자되고 가난하게 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구구해도
미면주홍진- 이 티끌속에 왔다갔다하는 일을 면할 수 없다.
그게 물질세계입니다.
주면 받고 받으면 주고, 또 오고 가고,
그게 티끌 속에서 왔다갔다 하는 일이에요.
쟁여운출가진보(爭如運出家珍寶)
쟁여_ 다툴 쟁, 같을 여, 어찌 같겠는가.
운출_ 끌어낸다. 운전할 운, 날 출, 뭘 끌어내느냐?
가진보_ 자기 집에 보배, 진, 보배보, 보배를 끌어내는 것만 어찌 같으리요.
바다에 들어가서 모래 위에 숫자 쓰는 것처럼
물질을 주고받고 하는 것이 자기 보배를 꺼내서 쓰는 것만 어쩌 같으리오.
자기 보배는 이게 뭐냐? 반야거든요.
반야를 깨치는 거다, 이 말이죠.
그 반야를 깨치면 어떻게 되느냐?
고목생화별시춘(枯木生花別是春)
고목에 생화를 해요. 마른 나무에 꽃이 펴요.
그렇게 되면 어찌 되느냐?
별시춘이다_ 특별한 봄이다.
고목에 꽃이 피어야먄 특별한 봄이니라.
반야를 터득하고 반야를 증득한, 체험해서 얻었다 이 말이죠.
반야체험 그 세계를 고목생화 별시춘이라고
고목의 생화라 그러면 살아 있는 꽃이 아니고요, 꽃이 났다 이래서 꽃이 핀 걸 말해요.
이게 한문에서 골탕먹는 거예요.
요즘 생화 그러면 조화가 아니고 산 꽃이다이런 거 아니에요.
여기서 생화는 그게 아니고, 고목_ 마른 나무, 옛날 나무가 아니고 마를 고, 빼빼마른 나무에 꽃이 환하게 피었다.
그건 별시춘이요_ 특별한 봄이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거죠.
그게 깨달음입니다.
고복생화하니 별시춘이라, 특별한 봄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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