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달리니 각성을 위한 영혼 깨우기 수련]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영혼의 소망을 무시하고 에고의 소망을 따를 때, 우리는 삶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영혼이 이 삶의 체험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소망은 오직 영혼만이 알고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영혼 깨우기 수련법의 첫째는
‘영혼의 소리에 주파수 맞추기’라고 지난 영상에서 말씀 드렸구요.
영혼의 소리에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서는
선택의 순간에
‘생각’보다 ‘느낌’을
‘계산’보다 ‘직관’을 따르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어서 다음 내용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둘째는 ‘영적 이해도 높이기’입니다.
영성에 관한 책이나 영상을 꾸준히 보고 들으며
영적 이해도를 높이셔야 해요.
우리의 뇌는 익숙하지 않은 지식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회로가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뇌세포가 낯선 지식을 받아들이고
뇌의 회로를 연결하며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해서는 반복이 필요한데요.
이것은 마치 미지의 숲속에 만들어지는 오솔길과 같습니다.
무수한 반복을 통해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가는 거죠.
우리가 이해하고 알아야 할 영적 지식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몸이 아니라 의식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모든 곳 모든 때에 존재한다.’
‘시간과 공간은 없다.’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나고, 모든 것은 이미 완결되었다.’
‘모든 것은 하나다.’
‘모든 가능태는 이미 펼쳐져 있다.’
‘에고는 허상이다.’
‘세상은 환영이다.’
먼저 이러한 지식들이
우리의 현재의식에 의해 이해되고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현재의식이 진실이라 이해하고 믿게 된 것들만
잠재의식에 전달되기 때문인데요
영적지식들에 대한 이해와 앎이
잠재의식을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에 완전히 스며들 만큼 깊어져야 합니다.
세포에 완전히 스며들 만큼이라는 것은 비유하자면
옷감을 이루는 천 한 올 한 올이 완전히 물드는 것과 같은데요
옷 표면에 흙이 살짝 묻었을 때는 툭툭 털거나 세탁하면 지워지죠.
영적지식이 잠재의식을 이루는 세포에 완전히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에요.
세탁을 해도 지워지지 않을 만큼
옷감의 한 올 한 올에 완전히 스며든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모든 순간이
명상이 될 만큼 진리를 갈구하고 탐구하는 마음이 커져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영적 질문들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하구요
질문을 품은 상태로 잠자리에 들고
질문을 품은 상태로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잠결에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는 순간에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계속하여 질문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진리에 대한 열망과 갈망이 깊어져야 합니다.
가슴 속에서 질문이 익고 익어 스스로 답을 드러낼 때까지
화두처럼 품는 건데요
이것은 마치 어미닭이 달걀을 품는 것과 비슷합니다.
달걀과 병아리는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에요.
일정한 기간과 일정한 온도라는 알맞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달걀이 부화하여 병아리로 깨어나는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
영적 질문이 스며들고 물들만큼
질문이 깊어지면 답이 스스로 드러납니다.
질문과 답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 익어 답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이때에야 우리는 진실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지혜별숲] 채널에서는
진리탐구에 도움이 될 다양한 책들을 소개해드리고 있고요
생각감정을 비롯하여 영적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이런저런 영상들을 올려드리고 있는데요
이 영적지식들이 잠재의식에 스며들고
세포 하나하나를 변형시킬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들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흘려듣지 마시고 되새김질을 하듯이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참된 의미를 파악해가며
깊게 이해해 보셨으면 좋겠구요
다양한 비유들에 담긴 영적진리를 탐구함으로써
영적안목을 더더욱 키워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신에 대한 온전한 순복’입니다.
삶에 대한 온전한 순복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사하고 온전히 허용하기입니다.
종교를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상관없습니다.
삶이 곧 신입니다.
나의 삶에 주어진 예기치 않은 모든 고통과 절망까지도
온전히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한데요
‘나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의 성장’을 위해 ‘나의 초자아’가 설계해 놓은 것들이에요.
사랑과 미움, 탄생과 죽음, 만남과 이별, 건강과 질병, 풍요와 빈곤, 성공과 실패…
그것이 무엇이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의 체험과 성장’을 위해 ‘나의 초자아’가 설정해 놓은 것들입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허용한다는 것은요.
어떤 일이 일어나든
“Yes, okey." "그래, 좋아. 환영해.”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물론 그중에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고통스러운 상황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과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마시고 중심을 잡아 보세요.
이 체험을 통해 내가 배우고 깨우쳐야 할 영적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해 보시구요.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체험들을 영적성장의 디딤돌로 삼아 보세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질병이나 가난이나 파직이나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일 수도 있구요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심리적 갈등이나 상처일 수도 있는데요
그것이 무엇이든 거부하지 마시고 허용하고 환영해 보세요.
이 체험들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할 것을 충분히 배우고 성장하면
이러한 체험들은 더 이상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체험들은 신에게로 향하는 하나의 길일뿐이에요.
이 길을 따라 터널들을 잘 통과하고 나면
우리는 신의 집에 도달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의 참나를 대면하게 될 것이고
진리의 세계를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이 신비의 세계로 통하는 문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넷째, ‘영적 이해를 체화하기’입니다.
실천하지 않는 앎은 완전한 앎이 아니에요.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을 통해 영적 이해를
온 몸과 마음으로 연습하고 체화하기입니다.
청소를 하며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올 때
에고와 참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해봅니다.
‘누가 하기 싫어하지?
아, 참나가 아니라 에고가 싫어하는구나.’
설거지를 하면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
시간의 허상을 알아차려 봅니다.
‘누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아,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데, 허상인 에고가 허상인 시간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누군가의 행동이 거슬려서 짜증이 날 때
분별심의 허상을 알아차려 봅니다.
‘저 행동이 왜 싫지?
아, 내 안에 이런 분별심이 있었구나.’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올 때
육체와 물질의 허상을 알아차려 봅니다.
‘무엇을 왜 두려워하고 있지?
아, 육체를 참나라고 믿고, 육체와 물질의 안전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할 수 없다는 좌절감과 패배감이 밀려올 때
모든 가능태가 펼쳐져 있음을 기억해 봅니다.
‘왜 할 수 없지?
모든 가능태가 펼쳐져 있다는 걸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절대로 용서하기 힘든 누군가가 떠오를 때
에고의 허상을 인식해 봅니다.
‘참나는 상처받을 수 없고 에고는 실존하지 않는 허상인데
나는 내가 상처받았다고 생각했구나.’
매 순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한계 많은 에고로 존재할지
평화롭고 지복스럽고 한계 없는 참나로 존재할지….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늘 고통스러운 에고로 존재함을 선택합니다.
왜 그럴까요?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참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참나로 존재할 수 있음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매순간 고통받으면서도
기꺼이 에고로 존재함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참나로 존재할 수 있음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에고로 존재함을 포기한다면
자신이 소멸되리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마치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
꼭 부여잡고 있는 아이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와 함께 있으면서도
마치 부모의 손을 놓치면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있기 때문인데요
아이는 다른 선택지를 알지 못하기에
고통과 불행 속에 살고 있어도
그 손을 포기하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붙잡는 것입니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여
그보다 더 따뜻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고 좋은 세계가 있음을 알기만 한다면
그 손을 놓기가 좀 더 쉬워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앎과 이해가 깊어져
진실로 참나의 세계를 알게 되면요
우리는 더 이상 에고로 존재함을 고집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을 명상으로 승화할 수 있구요
자신과의 관계에서 혹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몸과 마음에 올라오는 모든 불편함을
진리탐구의 기회로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쿤달리니 에너지를 깨울 것입니다.
[쿤달리니 각성을 위한 영혼 깨우기 수련] 핵심 내용 한 번 더 정리해 볼게요.
첫째,
‘생각’보다 ‘느낌’, ‘계산’보다
‘직관’을 따름으로써
영혼의 소리에 주파수 맞추기
둘째,
영성에 관한 책이나 영상을 꾸준히 보고 들음으로써
영적 이해도 높이기
셋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온전히 감사하고 허용함으로써
신에 대한 온전한 순복
넷째,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을 통해
영적 이해를 체화하기
이렇게 ‘영혼을 깨우는 수련’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쿤달리니 에너지의 각성과 깨달음을 위해서 몸과 마음과 영혼을 깨우는 수련을 할 때
셋 중 어디에서 시작하든 좋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서 시작하시면 됩니다.
육체적 수련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호흡과 기체조, 요가, 달리기 등으로 시작하시면 되구요.
심리적 수련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생각감정을 고요히 하고 분별심을 내려놓는 마음공부에서 출발하시면 됩니다.
영적 수련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영성에 관한 다양한 책들과 영상을 보고 들으며 진리탐구에서 시작하시면 됩니다.
이때 몸과 마음과 영혼의 수련이
반드시 같은 비율로 집중되고 완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자신의 끌림과 성향에 따라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있고, 더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가지를 완전히 제외시킬 수는 없습니다.
저의 경우는
몸수련보다 마음수련과 영혼수련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몸수련을 완전히 제외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결국 몸과 마음과 영혼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건데요
먼저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시고
각자 자신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수련을 이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영상 여기에서 마무리하고요.
다음 영상에서는 [쿤달리니 각성을 위한 핵심 차크라 이해하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채널 [지혜별숲] 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현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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