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기 오는데요
이번 정진법회 2박 3일 하면서
‘이번 정진법회 때 꼭 반드시 체험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시고
새벽 5시에 목욕 재개를 하셨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때는 조금 제가 이 냉정함을 유지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왜 그러냐 하면
저도 제 스승님이 법회 다닐 때 그런 마음으로 다녔어요.
어느 누가 그러지 않겠습니까? 어느 누가.
그래서 ‘이번에는 꼭 해결을 해야지’ 하고 이제 정신 법회를 가죠.
오늘 첫 시간인데 이런 얘기해서 좀 죄송하긴 한데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 시간 한 시간 열심히 듣습니다.
같이 법회 온 도반들하고 잡담도 안 하고
근데 이틀이 다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어요.
3일째 되는 날 이제 어쩔 수 없잖아요.
이제 3일째 되는 날 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마지막 시간에라도...’ 이러면서 기대를 하다가
법회가 다 끝났는데도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으면
스스로 굉장히 좀 심정적으로 좀 그러죠.
그런 심정을 저도 여러 해 겪어봤기 때문에
여러 해인지는 그건 좀 제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여러 해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제 냉정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얘기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을 때는 깨달음이 안 오던데요.”
제가 그랬어요.
그래서 처음에 그런 기대를 가지고 한 번 갔다가 안 되면
두 번째는 그 기대가 없는 건 아닌데
있는데 밖으로 표현을 못해요.
한 번 실패를 했기 때문에
자기 속으로만 조용히 기대를 해요.
근데 그 속으로 조용히 기대하는 이 기대까지도
다 사라져야 됩니다.
물론 우리가 공부하시는 분들이
깨닫고자 하는 어떤 뜻이나 원이 없을 수는 없죠.
없을 수는 없는데
사라지고 다 사라져야
자기도 모르게 이게 한번 이렇게 통하는 거지
기대가 있으면 그 기대가 자기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게 들어갈 곳이 없어요.
그래서 보통 그렇게 말하잖아요.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귀만 기울이시라”고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러면 깨닫겠다고 하는 이 뜻과 원은 어디에 있느냐?
지금 법회를 하고 있는데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걸로
깨닫겠다고 하는 뜻과 원은 다 지금 드러났습니다.
자기가 일부러 가지고 계시지 마세요.
또 마음으로 가지고 계시지 마시고
생각으로 가지고 계시지도 말고
그냥 다 내려놓으시고
“도가 뭡니까?”
“이겁니다”.
그러면 여기에만 귀를 그냥 기울이세요.
힘쓰지 마시고.
그러니까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뜻이 앞장설 때는
‘힘쓰지 마라’ 이 말이 기분 나빠요.
“나는 깨닫고 싶은데 왜 자꾸 힘쓰지 마라고 그래?
힘을 안 쓰면 듣지 마라는 얘기야?”
이렇게 기분이 나쁘다고.
근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힘을 쓰지 않을 때 더 잘 들린다니까 희한한 거예요.
내가 힘을 쓰고 있을 때는
그 힘 쓰는 걸로 자기를 채우고 있기 때문에 잘 안 들려요.
힘을 빼셔야 돼.
“내가 이번에는 기어이...”
뜻은 가상한데
그런 뜻 없는 것보다 있는 게 가상하죠.
그래도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는 거니까
뜻은 가상하지만, 그 뜻도 그냥 잊으십시오.
잊고 이렇게 가르치는 여기에만 귀를 기울이세요.
다 잊고
체험이니, 부처니, 도니, 깨달음이니 다 잊으세요.
마음이니 다 잊어.
그냥 다 잊으시고
그냥 여기에만 여기에만 관심을 기울이세요.
이거에만.
도가 뭡니까?
이겁니다.
부처가 뭡니까?
이겁니다.
질문도 제가 해드리잖아.
그러니까 자기는 질문도 할 필요도 없어.
질문도 제가 하고, 답도 제가 하고, 제가 다 해드리잖아.
“도가 뭡니까?”
“이겁니다.”
“부처가 뭡니까?”
“이겁니다.”
질문하는데 이 시간 낭비할까 봐서
제가 다 해드리는 거예요.
그냥 이 일이다. 그냥 이 일이다.
마음이 있습니까?
하는 게 이거고
마음이 없습니까? 하는 게 이거지
마음이 없다 하는 게 이거야
뭐 다른 일이 아니에요.
다른 일이 아니야.
그냥 이 일이야, 이 일.
그러니까 자기는 질문할 것도 없고 답할 것도 없어.
여기에 이렇게 한번
자기도 모르게 여기 한번 이렇게 몰록 통해서
이게 이게 한번 이렇게 공감이 되고 실감이 되면 돼요.
‘이겁니다.’ 하는 이게
이렇게 공감이 되고 실감이 되면 돼.
그러니까 이걸 생각으로 보면은
‘이겁니다’ 하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생각으로 바라보면은.
부처가 뭡니까?
이겁니다.
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생각으로 보면.
손 하나 들고, 책상 한 번 두드리고 이게 뭐야?
이런다니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어요.
근데 자기 스스로가 여기에 통해보면 그 생각이 사라져.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이 사라져
그냥 그냥 통해
그냥 이 일, 이렇게 그냥 통해
그냥 이 일이야.
그냥 이거야. 이거 이거 이거
그러니까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이것도 생각할 필요도 없는데
그래도 우리가 이 생각으로라도 해본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생각이 이렇게 들어온다 하면은
“아니 왜 있는데 없다는 거야?”
이게 더 낫다고
그게 차선이에요.
실은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세간에서는 그런 걸 덤빈다고 하죠. 덤빈다.
그렇게 덤비는 게 오히려 공부하는 데는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덤빈다는 말은 무슨 말이야?
도대체 왜 없다는 거야?
이해가 안 되는 거잖아, 이해가.
헤아려지지가 않는 거잖아.
그런 입장이다, 그러면은
자기도 모르게
이런 데 이렇게 좀 관심이 저절로 가죠.
저절로 갑니다.
저절로 가다가 그냥 문득
그냥 한 번 이렇게 딱 통하는 거지.
그거밖에 없어요.
공부라고 하는 건 그거밖에 없어
이렇게 한 번 이렇게 딱 통해서
이거 하나가 분명해지는
그거밖에 없어.
다른 일은 없어요. 다른 일은.
그냥 이 일일 뿐이에요, 이 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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