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모리셔스’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Republic of Mauritius 모리셔스 공화국입니다.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섬나라로
수도는 포트루이스(Port Louis)입니다.
모리셔스의 국기는 1968년 독립과 함께 제정되었으며
위로부터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가로 4색기입니다.
빨강은 독립을 위해 흘린 애국자들의 피를
파랑은 인도양을, 노랑은 빛나는 태양을,
초록은 1년 내내 늘 푸른 국토를 나타냅니다.
또한, 4개의 띠는 국민을 이루는 인도인, 유럽인, 아프리카인, 중국인을 나타내며
다민족 국가로서의 협력을 기원하는 의미도 나타냅니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에는
유니언 잭이 들어 있는 기를 사용하였으나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현재의 기를 제정하였습니다.
모리셔스는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 남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마다가스카르섬 동쪽 750km 부근에 있습니다.
국토는 산호초로 둘러싸인 화산섬인 본도(本島)와 드리게스섬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약 2000㎢로 세계 177위이며
대한민국의 제주도와 비슷한 면적의 크기입니다.
모리셔스는 2019년 기준으로 약 130만 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156위이며, 이는 제주도 인구수의 2배 정도 수준입니다.
모리셔스의 1년 총 GDP는 2018년 기준 약 140억달러. 이는 세계 123위로
비슷한 GDP 수준의 국가로는 모잠비크, 부르키나파소 등이 있습니다.
모리셔스의 종족구성은 인도-파키스탄인이 약 70%, 크레올이 27%,
그 외 중국-모리시언 등이 있습니다.
모리셔스의 공용어는 영어이나 프랑스어도 함께 사용하고 있으며
종교는 힌두교가 약 50%, 로마 가톨릭교가 26%, 그 외 이슬람교와 기독교 등을 믿습니다.
2. 역사
아랍의 무역상들은 10세기 전후로 모리셔스를 방문하였으나
실제로 정착하지는 않았습니다.
포르투갈의 해상원정대가 1498년 희망봉 주변을 항해하는 도중에
우연히 모리셔스를 발견했는데
그때 모리셔스는 무인도였다고 합니다.
그 후로 포르투갈인이 간간히 내항하였으나 마찬가지로 정착하지는 않았습니다.
1598년 네덜란드가 점령하여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원주민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습니다.
네덜란드의 해군장교였던제이콥 코르넬리즈 반 넥 (Jacob Cornelisz van Neck)이
모리셔스 해안에 상륙하여
네덜란드의 통치가문이었던 오라녜 공작이었던 마우리츠(Maurits)의 이름을 따
모리셔스라 명명했습니다.
하지만 식민지는 실제로 번창하지 못했고
네덜란드는 1710년 이 섬을 완전히 떠나게 됩니다.
5년 후인 1715년, 프랑스 선장인 기욤 드프레스네 다살(Guillaume Dufresne d'Arsel)이 이 섬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하면서
프랑스 동인도회사의 무역기지로 삼았습니다.
1810년까지 약 100여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는 동안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노예를 수입하고
유럽으로부터의 이주도 이루어져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이렇게 수입한 노예들은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고
그때부터 설탕은 모리셔스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 후 1810년 영국이 그랜드포트 전투(Battle of Grand Port)에서
프랑스를 이기고 모리셔스를 점령하였고
1814년 파리조약에서 정식으로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지배기간 동안에는 인도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어
현재의 인종 구성에 이르게 됩니다.
이후 모리셔스는 정치와 행정제도를 개편하여
1968년 영국연방내의 입헌군주국으로 독립하였으며
초대 총리인 씨우사구 람굴람(Seewoosagur Ramgoolam)의 산업정책을 바탕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람굴람 총리는 13년동안 수상직을 맡으면서 정치적 안정을 꾀하였으나
그가 물러난 후인 1970년대부터 모리셔스의 정치는 혼란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 후로 여러 차례 정권이 바뀌는 등 혼란을 겪다가
1992년 신헌법을 제정하고 공식적으로 공화제를 선택하면서
비라사미 링가두경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습니다.
3. 정치 & 경제
모리셔스의 정치 체제는 1992년 수정된 헌법에 따라
대통령 중심제의 의회민주주의 공화국입니다.
대통령은 부통령과 함께 의회에서 선출되며, 5년 임기로 연임이 가능합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 국무총리를 지명하고
대내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대표자이지만, 실권자로서 큰 영향력은 없습니다.
2019년 현재 모리셔스의 대통령은
2018년부터 대통령권한대행인 바렌 비아프리 (Barlen Vyapoory)입니다.
모리셔스의 행정수반은 국무총리로
모리셔스의 총리는 외교, 국방, 내무장관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2019년 현재 모리셔스의 총리는
2017년부터 역임해온 프라빈드 주그노트 (Pravind Jugnauth)입니다.
의회는 단원제로 임기는 5년이며 70개의 의석으로 구성됩니다.
군대는 존재하지 않으며, 약 10,000명의 경찰조직에 의해 치안이 유지됩니다.
모리셔스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있는 나라로 분류될 정도로
상당히 정치가 안정되어 있습니다.
2017년 이코모니스트지에서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에서도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높은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모리셔스의 경제는 2018년 기준 1인당 GDP가 약 22,000달러로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적도기니, 세이셸과 함께 최고 수준입니다.
경제 산업별 구성비율은
농업이 5%, 광공업이 25%, 서비스업이 70% 정도이며
1968년 독립 이후 사탕수수 농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서비스업, 관광업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리셔스는 자원이 빈약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인근 아프리카 지역의 농산물들을 들여와 재가공한 뒤
유럽 등지로 수출하는 가공무역업을 일찍부터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잘 구성된 금융 인프라, 통신, 투자관련 법규 선진화 등을 내세워
아프리카에서도 금융산업 환경이 가장 양호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또한 모리셔스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관광산업입니다.
모리셔스는 유럽의 부유층, 고령 은퇴자들이 겨울 휴가를 보내는 곳으로
이미 유명한 관광명소이며
동해안 연안에는 고급리조트들이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최근에는 신혼여행지로 입소문을 타면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관광객들도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모리셔스는 과거 화산 폭발로 인해 생성된 섬으로 추정되며
대략 800~1,000만년 정도에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으로 58km, 동서로 47km의 작은 화산섬과
로드리게스섬, 카라조스, 아갈레가와 같은 산호초로 이루어져있는 도서국가입니다.
모리셔스 섬의 중앙부는 고원이며, 북부에 800m 남짓의 산지가 있습니다.
모리셔스는 전체적으로 아열대 해양성기후를 보이며 연중 거의 일정한 기온이 유지됩니다.
수도인 포트루이스의 경우
7월의 평균기온이 20도, 1월의 평균기온이 27도 내외로 쾌적한 날씨를 보입니다.
다만 11월부터 4월 전까지 종종 사이클론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모리셔스는 생물학적으로도 상당히 가치가 높은 곳으로
이 섬은 원래 도도새가 서식했던 유일한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모리셔스가 무인도였던 시절부터 이 섬에 서식했던 도도새는
몸무게가 무겁고 날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이 식량으로 삼기 쉬웠고
결국 유럽인들이 처음 정착한 이후 80년도 되지 않아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도도새 이외에도 모리셔스에는 멸종위기종인
황조롱이, 에코 잉꼬, 핑크비둘기와 같은 희귀한 조류들의 서식지로 유명하며
모리셔스의 바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다는 알다브라 자이언트 거북 등
더욱 더 풍부한 어류생물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인 마크 트웨인이 1897년 발표한 ‘적도를 따라서’라는 여행서에서
‘신은 모리셔스를 창조한 뒤에 천국을 만들었다’라고 했을 정도로
모리셔스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리셔스 동부지역의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인도양에서는
다이빙, 스노클링과 같은 다양한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특히 가장 유명한 풍광 중 하나인 ‘바다 속 폭포(Underwater Waterfall)’는
자연적인 침식작용이 만들어낸 그림같은 풍경으로
위성사진에서도 선명하게 보일정도라고 합니다.
또한 울창한 원시림과 국립공원에서 하이킹을 하거나
큰 규모의 식물원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만나볼 수도 있습니다.
모리셔스의 전통문화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크레올 공통체의 생기 넘치는 공연예술인 ‘세가Sega'입니다.
2014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모리셔스의 전통 세가는
크레올 민족의 전통춤입니다.
여성 무용수들은 넓게 퍼지는 긴 치마를 입고
남성들은 화려한 색상의 셔츠와 밀짚모자를 쓰고 춤을 추는데요.
골반과 허리를 크고 빠르게 움직이며, 팔과 손으로 리듬을 타는 댄서들의 춤에서
강인함과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5. 인물
모리셔스 출신에 유명한 인물로는 격투기 선수
‘라니니 쿤다소미 Ranini Cundasawmy’가 있습니다.
그녀는 모리셔스의 무에타이 챔피언이자, 프랑스 복싱인 사바트 선수입니다.
1984년 모리셔스의 보베이신(Beau Bassin)에서 태어난 그녀는
16세 때 수도 포트루이스로 옮겨 고등학교까지 마쳤으며
대학에 진학하여 계속 학업을 이어가고 싶었으나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도중에 학업을 그만두어야만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약국 보조원으로 일하면서
쿤다소미는 킥복싱을 시작했습니다.
2008년 직장에서 남편인 루이스 패트릭을 만나 결혼한 후
두 사람은 함께 프랑스 복싱인 사바테(Savate)를 배우기 시작했고
2010년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태국 종합격투기인 무에타이까지 배우게 됩니다.
2005년부터 꾸준하게 사바테 토너먼트에 출전하기 시작한 그녀는
2006년 국제 사바테 대회에서 여성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챔피언이 되고 나서도 그녀는 제대로 된 훈련시설을 찾지 못해
2010년까지는 길거리에서 격투기 훈련을 이어가는 등 고된 생활을 했습니다.
무에타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 후인 2011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BMA 여성팀을 조직하였고
여러 차례 무에타이 국제대회에 참가했습니다.
2012년 처음으로 그녀는 모리셔스에서 개최한 남녀 혼성 무에타이 대회에서
10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모리셔스 국가 무에타이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꾸준하게 자국에서 무에타이 격투기 선수로 활약하면서
2014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 사바테 격투기 대회 동메달
2016년에는 세계 킥복싱 선수권대회 은메달
2018년에는 WMF 세계 무에타이 챔피언 대회에 출전하여
48KG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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