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가장 고귀한 공화국
산마리노 (Serenissima Repubblica de San Marino) 라는 국명을 가진 나라,
약칭 산마리노는
이탈리아에 둘러싸인 나라로 수도는 산마리노입니다.
산마리노의 국기는 1862년에 공식 제정되었으며
2011년 수정을 거쳐 현재의 디자인으로 확정되었습니다.
하양과 하늘색의 가로띠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왕관이 포함된 국장이 그려져 있습니다.
국장의 방패에는 티타노산의 세 봉우리에 서 있는 3개의 흰색 탑과
자유를 뜻하는 ‘리베르타스(LIBERTAS)' 글귀가 새겨진 두루마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흰색은 평화를 상징하고 있으며
하늘색은 티타노산을 덮은 하늘과
푸른 아드리아 해 그리고 자유를 상징합니다.
산마리노는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한 공화국으로
국경이 모두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국입니다.
산마리노의 국토면적은 약 61km²로 서울의 약 1/10 크기이며
바티칸시국, 모나코, 나우루, 투발루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작은 초극소 국가입니다.
2020년 기준 약 34,000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196위
서울 강남 압구정동의 인구보다 조금 많은 수입니다.
산마리노의 1년 총 GDP는 2019년 기준 약 16억 달러로
세계 174위이나, 1인당 GDP는 4만 7천 달러로 세계 15위 수준입니다.
산마리노의 공용어는 이탈리아어이며
주민의 대부분은 산마리노인, 이탈리아인이 약 14%,
그리고 소수의 루마니아인이 있습니다.
종교는 인구의 90%가량이 로마가톨릭을 믿고 있습니다.
2. 역사
서기 301년 9월 3일,
석공이었던 성 마리누스(Sanctus Marinus)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기독교 박해를 피해 티타노산 근처에 독자적인 소규모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크로아티아 지방 출신인 마리누스는
당시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하자
험준한 산 근처에 작은 신앙공동체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산마리노의 시작으로 추정됩니다.
그 후로 인근의 키에사누오바( hiesanuova)와 파에타노,
피오렌티노와 같은 지역들을 병합하여 영토를 확장하여
현재의 국경과 비슷한 크기로 발전했습니다.
13세기부터 인접 지역의 잦은 침입을 받게 되자
산마리노는 몬테펠트로가와 로마 교황청의 보호령이 되었습니다.
1503년에는 이탈리아의 보르자에 의해 6개월 동안 점령되기도 하였으나
곧바로 다시 독립을 되찾았습니다.
교황령의 보호를 받는 동안 주권을 유지하면서
티타토산을 중심으로 조금씩 영토를 확장해 나간 산마리노는
1631년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인준을 받아 공식적으로 독립국가가 되었습니다.
여러 차례 주변국들에 의해 정복될 위기에 처했으나
독립을 유지해온 산마리노는
1815년 빈 회의에서도 독립국으로서의 국제적 승인을 받았습니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통일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산마리노는 이탈리아 통일영웅으로 불리는 주세페 가리발디와
그의 아내 아니타를 비롯한 전쟁피해자들에게
피할 곳을 제공하기도 했는데요.
이 덕분에 후에 산마리노는 이탈리아에 병합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23년 이탈리아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자
지리적으로 인접한 산마리노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22년 결성된 산마리노 파시스트당(PFS)은
이듬해인 1923년 4월에 첫 집정관인 줄리아노 고치를 배출했고
1926년부터 1943년까지 17년간 산마리노 파시스트당이 유일한 합법정당이 되어
다른 정당의 활동을 금지하고 산마리노를 통치했습니다.
1943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실각하자
산마리노의 파시스트 정권은 실각하였고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인해 국내 정치상황도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게 됩니다.
산마리노는 1992년 UN에 가입하였으며
2002년부터는 독자적인 화폐 대신에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유럽연합의 회원국은 아닙니다.
3. 정치 & 경제
1600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산마리노는
임기 5년의 60명으로 구성된 입법부인 대평의회가 존재하며
대평의회가 임명하는 11명의 국가회의(Congresso di Stato)와
2명의 집정관이 행정업무를 담당합니다.
집정관은 6개월마다 대평의회 의원 중에서 2명을 선출하며
매년 4월 1일과 10월 1일에 취임합니다.
집정관은 다른 나라의 총리와는 달리
6개월이라는 짧은 임기 동안
행정 수반과 국가원수의 역할을 겸임합니다.
이러한 집정관 제도는 고대 로마공화정 시대부터 이어져 온 형태로
산마리노에서는 1243년에 처음으로 시행하였으며
현대에서 유일하게 집정관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산마리노에는 외교권은 있지만 관세권은 없습니다.
국방 역시 이탈리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산마리노에는 군대가 없으며
2006년부터는 자발적으로 조직된 의회 호위대 등 군사조직이 존재합니다.
산마리노는 산 중에 위치한 인구 3만여 명의 작은 국가로
북쪽 지역의 세라발레를 중심으로
제조업이 약간 발전하긴 하였으나, 주요 산업은 농업과 관광업입니다.
또한, 중세의 고성 등 관광지 개발이 잘 되어 있어
국내총생산의 50% 이상이 관광수입이며
연간 400만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산마리노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관광산업의 주요 소득원은 옛날 동전과 우표 판매금입니다.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경제에서도 이탈리아에 큰 영향을 받고 있으며
화폐를 공유하기 때문에 유로화를 사용합니다.
또한, 산마리노의 국민 중 상당수가
이탈리아 각지에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이사항으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구보다 등록된 자동차 보유 대수가 더 많은 나라입니다.
인구가 워낙 적은 데 비해 1인당 국내총생산은
대한민국보다 많은 4만 7천 달러를 기록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산마리노는 서울의 약 1/10 정도 크기인 61㎢의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바티칸, 모나코에 이어 3번째로 작은 국가입니다.
아드리아 해에서 10km 떨어진 내륙국으로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 주, 마르게 주 및 몬테펠트로 주와 서로 접하며
대체로 사각형 모양입니다.
국토 중앙에 최고봉인 티타노 산(749m)이 솟아 있으며
전체적으로 산이 많은 지형입니다.
산마리노의 기후는 전형적인 온대성 기후로
연평균기온은 16도 내외, 겨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6도 수준입니다.
강수량은 여름보다 겨울에 더 많은 편이나
연평균 강수량이 500~800 사이로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이자, 가장 오래된 공화국인 산마리노는
자유 도시국가의 상징으로 알려졌습니다.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역사지구와 티타노 산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티타노산에 위치한 역사유적으로는
중세시절 건축된 요새의 탑과 성벽, 수도원 등이 대표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18세기의 티타노 극장과
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운 교회당 및 푸블리코 궁전도 유명합니다.
이 건물들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거주하며,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국가 내에 공항과 철도가 없기 때문에
산마리노에 가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와 연결된 도로를 이용하거나,
혹은 리미니 국제공항에서 운행하는 헬리콥터나 케이블카를 타야 합니다.
연간 4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산마리노는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마을 내에서는 자동차가 금지되어 있어
도시를 관광하기 위해서는 걸어 다녀야 합니다.
산마리노에서는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입니다.
FIFA 회원국임은 물론 유럽축구연맹 UEFA 회원국이기도 합니다.
1990년 스위스와 치른 유로 예선 경기에서
0:4로 대패한 것이 국제무대에서의 첫 기록이었고
그 후로도 국제대회에서는 거의 승리가 없었습니다.
2004년 4월, 홈구장에서 열린 리히텐슈타인과의 친선경기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14년 만에 국제경기에서 첫 승을 거두었으나
2006년 유로 예선에서 독일에 0:13으로 대패를 당하며
유로 예선 최다 실점 패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인기 면에서는 축구가 압도적이지만
실력으로 따지면 야구 실력이 더 좋은 편입니다.
산마리노는 이탈리아 최상위야구리그(IBL)에 참여하는 프로야구팀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4차례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유럽의 리그우승팀들이 모여 겨루는 유로피언 컵대회에서도 3차례 우승을 거머쥔 전력이 있습니다.
산마리노에서는 정부 재정의 1/3가량이 우표판매수익금에서 나옵니다.
관광홍보용으로 만들기 시작한 우표가 인기를 끌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우체국은 매일같이 우표를 사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고 합니다.
특히 우표발행과 관련하여 1978년 바티칸과의 갈등이 유명한데요.
산마리노가 이탈리아 조각가인 파치니의 작품을 인쇄한 우표를 발행하려 하자
교황청이 즉각 반발한 것입니다.
교황청은 만약 산마리노가 우표발행을 강행한다면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밝혀
결국 산마리노 정부가 우표발행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2019년,
산마리노와 바티칸시국은 비용절감을 위해 양측의 우정 당국 합병을 추진하여
2020년부터는 양국의 통합된 우표발행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5. 인물
산마리노 출신의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은
그랑프리 오토바이 로드 레이싱
월드챔피언인 마누엘 (Manuel Poggiali)입니다.
그는 2001년 125cc 월드챔피언
2003년 250cc 월드챔피언으로
지금까지 총 12회 레이스 승리,
11번의 폴 포지션, 35번의 포디움 피니쉬를 기록했습니다.
1983년 산마리노의 보르고 마조레에서 태어난 그는
1994년부터 미니바이크로 본격적인 레이싱을 시작했습니다.
1998년에는 처음으로 그랑프리에 출전하였고
125cc 부문 이탈리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1999년. 125cc 월드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였으며
2003년에는 250cc로 종목을 바꾸어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매우 가까웠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2004년에는 전체 9위라는 부진한 성적에 그쳤고
2005년에는 다시 125cc로 복귀하였으나
이어진 슬럼프로 인해 계속 부진한 성적을 거듭하던 마누엘은
2008년 프로레이싱선수에서 은퇴하였습니다.
2019년부터는 그레시니 레이싱에서 라이더 코치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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