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에 대한 궁구는 인류에게 이성이 싹트면서 시작하였습니다.
고대의 철인들은 삼라만상이 비롯하게 된 제1원인을 탐구했고,
그것을 X로 놓고 답을 구했습니다. 물, 불, 공기, 원자, 수(數), 신(神) … 등등
수없이 많은 것을 X에 대비했지만 모두 자존의 문제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유는 자존 할 수 없다는 진리 앞에 그들은 낙심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무(無)를 X의 답으로 들고 나오기 시작합니다.
무는 충분히 자존의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 것입니다.
하지만 무는 창조의 문제에선 답을 구할 수 없습니다.
무는 그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없는 까닭입니다.
결국 고대의 철인들은 X의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X는 세월이 흐르면서 수학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수학자들은 차원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두 개의 밑변과 한 개의 높이로 이루어진 3차원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3차원의 한계를 넘어 4차원, 그리고 더 나아가 5차원에 이르면 X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제 필요한 건 X를 구하는 방정식이었습니다.
2차방정식은 페르시아 출신의 알콰리즈미가 해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나 16세기에 이르러 타르탈리아에 의해 3차방정식을 푸는 ‘근의 공식’이 만들어집니다.
3차방정식에서 X를 구하는 공식이 발표되자 수학자들의 시선은 4차방정식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인 1544년, 불세출의 수학자 페라리가 나타나 4차방정식의 해법을 풀어냅니다.
이렇게 되자 마침내 인류의 오랜 염원인 5차방정식에 수학자들의 시선이 모아지게 됩니다.
다시 몇 세기가 흘러 1832년이 되었습니다.
그해 5월 30일 갈르아라 불리는 프랑스의 한 젊은이가 허망하게 숨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21살이던 갈르아는 치정에 얽힌 결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합니다.
흔하디흔한 사건으로 넘어갔지만 훗날 그가 남긴 편지 한 통에서 역사적인 사건이 터져 나옵니다.
그건 다름 아닌 5차방정식의 문제가 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기존의 해법과 달랐습니다.
갈르아는 5차방정식이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낸 것입니다. 갈르아는 그 이유로 대칭의 문제를 들었습니다.
5차원은 대칭이 깨져 있기에 어떤 근해 공식도 만들 수 없고, 따라서 풀 수 없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수학자들은 갈르아의 증명이 옳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5차방정식을 향한 인류의 도전은 막을 내렸습니다.
어느 수학자도 이제는 5차방정식을 다루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엔 재밌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5차원 세계는 대칭이 깨져 있다는 수학적 증명입니다.
우리는 대칭으로 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생각 하나하나도 대칭에 의해 일어나고 움직입니다. 그래서 상대 세계라고 부릅니다.
갈르아의 증명을 역으로 보면
대칭을 깸으로써 5차원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수행자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불이(不二)의 절대에 도달하는 법을 수학에서 증명해 낸 것입니다.
5차방정식과 다른 방향에서 X(實存)를 탐구한 수학자가 있습니다.
게오르그 칸토르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대대로 신의 영역이라 하여 꺼리던 무리수를 연구했습니다.
칸토르는 무한집합을 체계화해 이 분야에 세계적인 권위자가 됩니다.
그런데 그가 무한 세계를 연구한 이유는 학자로서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의 평생 숙원은 신의 곁으로 다가가는 거였습니다.
믿음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자신의 발로 직접 찾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이 살고 있다는 무한 세계를 연구했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무한집합은
우리가 알고 있던 질서가 깨지면서
지극히 자유로운 세계가 됩니다.
칸토르가 무한집합에서 발견한 열쇠가 바로 ‘자유’인 것입니다.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
그것을 통하면 신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칸토르는 굳게 믿었습니다.
수학에서 5차원을 다루던 두 가지 길인
5차방정식과 무한집합에서 두 가지 열쇠가 나왔습니다.
전자는 대칭의 깨짐이고 후자는 자유입니다.
정리하면,
대칭이 깨져 자유롭게 되면 5차원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수학은 X의 답을 찾진 못했지만 그것의 속성만은 정확히 알아냈습니다.
싯다르타는 ‘있는 그대로의 자리’에서 그냥 깨달았습니다.
‘그냥 있는 상태’를 언어로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수학에서 ‘그냥 있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바로 ‘대칭이 깨져 자유롭게 된 상태’입니다.
수행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오로지 ‘생각’입니다.
‘생각’은 대칭에 의해 일어나고, 또한 대칭 때문에 얽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의 대칭을 깨고 자유롭게 되는 것은 수행의 시작과 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의 대칭을 어떻게 깰 수 있을까요?
'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덕마음공부] 세상에서 의무를 다하며 묵묵히 관조하는 삶ㅡ스토아학파 (0) | 2021.12.13 |
---|---|
[Danye Sophia] 남모르는 비법공개! 깨닫고 싶으면 비법을 따르라 (0) | 2021.12.09 |
[현덕마음공부] 난세에 행복하기 ㅡ 에피쿠로스 (0) | 2021.12.07 |
[현덕마음공부] 위기의 시대를 사는 당신에게 (0) | 2021.12.06 |
[Danye Sophia] 해인을 쥐어라! 세존의 법통은 해인이다 (0) | 2021.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