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자아의 발견: 관찰자는 개인이 아니며, 사람은 유기체와 신체가 있을 때 형성됩니다. 영구적으로 분리된 존재는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00:19].
-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의 구분: 마음과 감정은 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며, 세상은 객관적이라고 믿지만 전적으로 정신의 투영입니다 [00:49].
- 행복과 평안의 본성:
- 생명에 대한 사랑: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육신이 아닌 지각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생명 자체를 사랑해야 합니다 [02:26]. 이 생명은 모든 구분과 한계를 넘어선 전체성입니다.
- 생각 다루기: 생각과 싸우지 말고, 그저 무시하고 내버려 두십시오 [03:24]. 모든 일은 '내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고,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활용해야 합니다. 생각에 관심을 두지 않는 무관심이 해탈을 가져다줍니다.
- 사랑의 본질: 사랑은 마음의 상태라기보다는 존재의 상태입니다 [04:24]. 사랑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처럼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며, 자신의 행복을 모두와 함께 나누려는 의지입니다.
- 침묵과 미래: 침묵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찾아올 것입니다 [05:17].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현재에 침묵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 성품과 경험: 자신의 성품을 제어하려 하지 말고 내던져 버리십시오 [05:41]. 어떤 경험도 습관으로 만들지 않는 한 상처를 주지 못합니다.
- 고통과 쾌락: 자연은 즐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으며, 고통과 쾌락은 마음에 있습니다 [06:20]. 가치 기준을 바꾸고 감각기관을 평등하게 대하면 지복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만족할 줄 아는 것이 행복의 전제 조건입니다 [07:00]. 모든 욕망을 멀리하고 저절로 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풍요로운 상태이며 지복입니다.
- 무집착: 텅 비고 소외감을 느끼는 순간들은 영혼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는 의미이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것을 넘어가십시오 [07:30].
빛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어둠을 소멸하듯이
절대자도 상상을 소멸합니다.
모든 지식은 무지의 한 형태라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실재의 한 운동입니다.
관찰자는 하나의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것을 위한 하나의 토대가 있을 때
하나의 유기체, 하나의 몸이 있을 때 생겨납니다.
그 안에서 절대자가 자각으로서 반사됩니다.
영구적으로 별개인 사람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러면 일체가 분명해집니다.
그대의 안에 있는 것을 밖에 있다고 생각하고
밖에 있는 것을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과 감정은 외적인 것인데도
그대는 그것을 친숙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는 세계가 객관적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대의 정신이 투사된 것입니다.
그것이 근본적인 혼동이며
어떤 새로운 폭발도 그것을 바로잡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기억에 대해서 흥미를 잃어버리면
어떤 기억도 지속되지 않게 됩니다.
정서적인 연결이 속박을 영구화시킵니다.
그대는 늘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며
늘 행복과 평안을 구합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그 자체가
그대를 비참하게 느끼도록 만든다는 것을 모릅니까?
그 반대로 해 보십시오.
고통과 쾌락에 무관심하고
요구하지도 말고, 거부하지도 말고
그대의 모든 주의를 ‘내가 있다’가 무시간적으로 존재하는
그 수준에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곧 평안과 행복이
바로 그대의 성품 안에 있으며,
어떤 특정한 통로로 그것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번뇌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좋은 일입니다.
다만 자기가 정확히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은
육신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지각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위하고
사랑하고 노력하고, 창조하는 작용 말입니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은 그 생명이며
그것이 그대이고, 그것이 모든 것입니다.
모든 구분과 한계를 넘어선 전체성으로서의 그것을 깨달으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모든 욕망이 그 안에 합일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큰 것은 작은 것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생각들과 싸우지 마십시오.
그것들에 대해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것이 어떤 생각이든 그대로 내버려 두십시오.
생각과 싸우는 것 자체가 그것들의 생기를 줍니다.
그냥 무시해 버리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세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말입니다.
만물이 그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경험하기 위해서는 그대가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최대한 이용하십시오.
생각하는 것을 멈출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관심을 갖지만 마세요.
무관심이 해탈을 가져다줍니다.
붙들지 마십시오.
그뿐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음의 한 상태라기보다는 존재의 한 상태 아닙니까?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까?
그대는 어머니를 자기도 모르게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갈망
어머니를 사랑할 기회에 대한 갈망
그것은 사랑의 움직임 아닙니까?
사랑은 존재의 의식만큼이나 그대의 한 부분 아닙니까?
그대가 어머니의 사랑을 구한 것은
그대가 어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의지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모두 함께 나누려는 의지 말입니다.
그대가 그냥 침묵을 지키려고 애쓰기만 하면
모든 것이 올 것입니다.
일, 일을 할 힘, 올바른 동기 등이 말입니다.
그대의 미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지금 침묵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갈 것입니다.
자신의 성품을 제어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제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것은 내던져 버리십시오.
맞서 싸우거나 굴복해야 할 어떤 성품도 갖지 마십시오.
그것을 하나의 습관으로 만들지만 않는다면
어떤 경험도 그대에게 상처를 주지 못합니다.
전 우주에 대해 바로 그대가 미묘한 원인입니다.
그대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자연은 즐겁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온통 지성이고 아름다움입니다.
고통과 쾌락은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대의 가치 기준을 바꾸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변할 것입니다.
쾌락과 고통은 감각기관들의 어지러움에 불과합니다.
그것들을 평등하게 취급하십시오.
그러면 지복만 있게 됩니다.
세계는 그대가 만드는 것이니 만큼
얼마든지 그것을 행복하게 만드십시오.
만족할 줄 알아야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충족된 욕망은 더 많은 욕망을 낳습니다.
모든 욕망을 멀리하면서 저절로 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아주 결실이 풍요로운 상태이며 충만한 상태의 전제조건입니다.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지복입니다.
우리가 텅 비고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순간들은 늘 있습니다.
그런 순간들은 더 없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영혼이 계류 장치를 풀고
먼 곳으로 출항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무집착입니다.
옛 것이 끝나고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았을 때지요.
그대가 두려워하면
그 상태가 곤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 가르침을 기억하십시오.
그대가 무엇을 만나든 그것을 넘어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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