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44회) 자살기도한 자녀

Buddhastudy 2010. 12. 2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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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젊은 사람도 우울증 환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대인 관계를 기피하고 그 다음에 사람들 잘 안만날려고 하고 자학하고. 어느 순간에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고. 이것이 조금 발작이 심해지면 타인에게 굉장히 폭발적인 폭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발작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은 대부분 다 부모로부터 받습니다. 부모라는 게 엄마로부터 받는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애기를 가졌을 때 애기가 3살 이하 어릴 때 그 엄마가 부부간의 갈등이나 시댁과의 갈등이나 인생의 갈등. 즉 엄마가 처음부터 우울증 환자여서 애기를 가지면 이렇게 될 수도 있고. 본래 우울증 환자는 아니었지만 그 애기를 가지거나 키울 때 그런 거의 그런 정신적인 고통을 겪게 되면 아이의 초기 심리 상태가 이렇게 형성이 됩니다. 그러면 아이 잘못은 아니에요. 아이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 심리 자체가 그렇게 형성 되기 때문에.

 

그래서 첫째는 질문하신 분은 남편에게 참회 기도를 해야 된다. 왜 자꾸 남편에게 참회기도를 할까? 결혼하게 되면 사실은 이 사람의 그런 어떤 심리적인 불안이 자기가 부모로부터 받은 사람도 있고, 어떤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도 있고 하지만 현상적으로 나타는거는 그 대상은 대부분 남편입니다. 사실 남편이 문제는 아니에요. 남편을 대상으로 해서 현재 일어나고 있나는거요. 일부 그 중에는 시댁과의 갈등 이런 게 있지만.

 

요즘은 옛날하고 틀려서, 옛날에는 남편보다도 시댁이 더 문제였지만, 요즘은 대부분 다 둘이 살기 때문에 남편이 주 원인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요. 본인이 원인으로 삼는다는 뜻이에요. 본인이 남편을 원인으로 삼기 때문에 그 심리 현상이 아기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남자 자체가 어떠냐 이건 제가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 남자가 설령 문제였다 하더라도 애기 엄마가 그 영향을 자기가 차단시켜버리면 애기에게 아무 영향이 없거든요.

 

남편이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자기가 그런 심리적인 착각을 일으키면 애기한테 심대한 영향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남녀 문제로서의 아내의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고. 애기 엄마로서의 문제를 말하는 거다. 잘못 들으면 안 되요. 스님은 왜 자꾸 여자보고만 참회기도 하나. 이렇게 말하면 안 되요. 이것은 아이문제니까. 애기 엄마로서의 책임을 말하는 거요. 여성 남성의 문제가 아니다 이 말이오.

 

그래서 남편에게 첫째는 진실하게 참회기도를 해야 된다. 그런데 이미 사춘기가 넘었기 때문에 그 엄마가 기도하는 것은 절대적인 영향은 못 줍니다. 그러나 최대로 영향을 줄 수가 있다. 두 번째는 아이자체가 이것은 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이것은 엄마로부터 받은 거지만 이미 이제는 자기 것이 되 가지고 자기 병이 되 버렸다. 이런 얘기요. 이미 성년이 됐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정신과 상담도 하고 법문 듣고 수행하고 해서 이제는 자기 병을 자기가 치료하는 그런 역할을 해야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요.

 

그 다음에 여기 자살기도가 나왔으니까. 요즘 우리 사회도 또 자살 문제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사람이 자기 생각이 옳다. 그러니까 내 생각이 옳다 이렇게 되면 상대의 생각이 틀렸다가 되고. 상대생각이 틀렸는데 그걸 고치려고 안 고쳐지면 어때요? 미워지게 되죠. 미우면 사람들이 첫째가 고치려고 했는데 안 고쳐지면 그 다음에는 보기 싫어합니다. 보기 싫어하는 게 헤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싸우는 거는 상대를 고치려는 거고. 그 싸움이 지나쳐서 포기를 하게 되면 헤어지는 거란 말이오. 안볼려고 하는 거요. 안볼려고 하는 거는 쫓아내는 방법이 하나 있고. 자기가 가버리는 방법이 있어요. 엄마가 애를 쫓아내거나 애가 집을 스스로 나가버리거나 이게 안보는 방법이죠. 그런데 이게 쫓아내지도 못하고 자기가 나가지도 못하는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선택하는 안보는 방법이 뭐겠어요? 죽여버리는 거요. 이게 우리가 말하는 살인이란 말이오. 그게 안보는 방법이란 말이오. 화가 너무 치밀었으면 그런 식으로 나가죠.

 

반대로 자기에 대해서 현실에 있는 나하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어야 된다 하는 생각에 자기 사상을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상을 짓는 그 자기하고 이 현실에 있는 자기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이 현실이 있는 자기가 보기가 싫어요. 그래서 처음에 부끄러워. 자기한 행동에 대해서. 아이고 부끄럽다. 그래서 사람하고 안 보려 그래. 기피해. 그래서 문을 잠그고 주로 밖에 안나가려 그래요. 사람 안 만날라 그러고.

 

그것은 자기가 자기 불만, 즉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되는 그 환상의 자기가 현실의 자기를 꼴 보기 싫어하는 거요. 부정하는 거요. 이 갭이 자꾸자꾸 커지면 이 현실의 자기를 죽여버리는 거요. 그게 자살이에요. 그러니까 살인과 자살은 심리현상으로 볼 때는 동일한 겁니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어야 되 하는 거 하고 현실의 그 사람 사이에 갭이 벌어져서 없애버리는 게 살인이라면. 나는 이런 사람이라야 되 하는 거 하고 현실의 자기 사이에 갭이 벌어져서 없애 버리는 게 자살이 된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살인과 자살은 과보가 아주 큽니다. 그러면 나와 내 가족에게 끼치는 과보는 어떤 게 더 크냐? 즉 우리집안에 자살자가 있을 때, 우리집안에 살인자가 있을 때. 즉 내 남편이 자살을 했을 때, 내 남편이 누구를 죽였을 때, 실제로 심리적 타격이 어느 게 더 클까요? 자살이 훨씬 큽니다. 그래서 집안에 자살자가 있으면 그 아래까지 몇대로 영향을 줍니다. 이게.

 

그래서 이 까르마 이런 업식을 우리가 녹여야 되요. 그런 것이 옛날 식으로 하는 게 조상천도제를 지낸다. 이런 방식이 있는데. 수행차원에서 말하면 자기 속에 자기 업식속에 그런 요소들이 들어있다 이 말이오. 그것을 어떻게 치유를 해 내느냐? 이런 문제란 말이오. 이 사회적인 걸 떠나서 우리가 순수하게 마음만 얘기 한다면.

 

그래서 불자는 살인을 해서도 안되지만은 자살을 해서도 안된다. 나쁘다 좋다를 떠나서. 그리고 우리가 살인을 할 수 있는 그런 문제. 자살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나무란다고 해결이 되는 게 아니다 이 말이오. 그런 요인이 있어서 그런 인. 인은 가지고 있지만은 그런 일이 일어날 주위 환경을 좀 개선해 주면 그 요인이 일어 날 확률이 적어지죠.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정토화를 만들자 하는 거는 그런 요인이 있지만은 그런 환경을 좀 개선하자는 거고. 우리가 수행을 하자는 거는 아무리 나쁜 환경 속에서도 그런 원인자체를 없애버리면 그것이 안 일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이 세상은 인연과보인데. 우리가 자기문제로서 수행하는 거는 자기의 인을 없애는 거고. 우리가 이 세상을 정토화하는 거는 이 세상사람들에게 환경을 개선해 줌으로서 그런 원인이 있다 하더라도 당장 발현이 안되도록 우리가 하는 거다.

 

그래서 자기 문제를 위해서는 자기 정진을 해야지 세상을 탓하면 안되고. 이 만중생을 위해서는 다 너 문제다 이러면 안 된다 이 말이오. 항상 우리가 그것을 나의 문제로 받아 들여서 이 사회를 우리가 좀더 정의로운 사회, 안정된 사회로 만들어 가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이거 두 개를 말하면 뭐요? 하나가 성불이고 하나가 정토다.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펴나가는데 있어서 어떤 기준은 얼마나 고통 받는 중생들이 이 가르침을 통해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렸느냐? 이게 기준이 돼야지. 돈이 안만 들어도 그것을 해야 되고. 경제적으로 손실이 나도 내가 욕을 얻어 먹어도 그 일을 해야 된단 말이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경제적인 이익이 되고 아무리 사회적인 지위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원칙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가 세상 속에 있어도 세상에 물들지 않을 수가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세상에 오면 세상에 물들고. 물들지 마라 그러면 세상을 떠나버리고. 이것은 대승불교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송이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 오르듯이. 우리는 늘 세상 속에서 중생의 고통 속에 있지만은 나는 중생의 탐욕에 물들지 않고. 동시에 그 중생을 구제하는 이런 역할을 우리가 해 나가야 된다.

 

그런데서 세상을 미워해서 원망하고 하면 남을 죽이는 쪽으로 가게 되고. 또 반대로 자기에 대해서 과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현실에 있는 자기를 미워해서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 명을 이으려고 그렇게 발버둥살아 있음을 늘 감하하고 행복하게 여기고 때가 돼서 이 몸을 버려야 할 때는 기쁜 마음으로 버려야 된다. 그래 집착이 없이 오고 가야 우리가 해탈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