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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모잠비크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8. 25. 19:45

 

 

1. 소개

모잠비크로 알려진 국가의 정식 명칭은

Republic of Mozambique 모잠비크공화국입니다.

아프리카대륙 남동부에 위치하며, 수도는 마푸투(Maputo)입니다.

 

모잠비크의 국기는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했을 당시

독립투쟁 집단이었던 모잠비크 해방 전선의 기를 그대로 사용하다가

1983년 국기의 디자인을 일부 수정하여 제정하였습니다.

 

위로부터 초록, 하양, 검정, 하양, 노랑 가로줄 무늬에

왼쪽에는 빨간 삼각형이 있고,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초록은 농업과 삼림을

검정은 흑인 및 범아프리카주의를

노랑은 광물자원과 나라의 광명을 상징합니다.

빨강은 모잠비크 독립투사의 독립정신을 상징하며

삼각형 안의 문장은 모잠비크의 표어인 교육, 생산, 투쟁을 문장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모잠비크는 아프리카 대륙 남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인도,

북쪽으로는 탄자니아

북서쪽으로는 말라위, 잠비아

남서쪽으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스와티니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약 80로 세계 34위이며

10인 대한민국 면적의 약 8배 크기입니다.

 

모잠비크는 2019년 기준으로 약 30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47위이며

이는 서울시 인구수의 3배 수준입니다.

 

모잠비크의 1년 총 GDP2018년 기준 약 144억달러

이는 세계 121위로

비슷한 GDP 수준의 국가로는 부르키나파소, 모리셔스 등이 있습니다.

 

모잠비크의 종족구성은

마쿠아롬웨족이 40%, 반투계 부족이 다수이며

백인이 약 10% 정도 됩니다.

 

모잠비크의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지만 반투어와 스와힐리어도 함께 사용하며

종교는 로마가톨릭이 약 30%, 이슬람교가 18%, 그 외 다양한 종교가 있습니다.

 

 

2. 역사

현재의 모잠비크 지역에 호모사피엔스가 정착한 것은 최소 10만년전으로 추정되며

2000년전에 반투계 흑인들이 철제기구를 가지고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반투인들은 이 지역에서 중동, 인도를 잇는 무역업을 발전시켰고

아랍계 상인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아랍상인들은 7~8세기에 노예무역과 농산물을 교역하기 위해 이 지역으로 진출했습니다.

모잠비크라는 이름도 아랍상인인 무사 빈 비키 (Mussa Bin Bique)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1498년 포르투갈의 항해사였던 바스코 다 가마가 이 지역에 상륙하면서,

본격적으로 포르투갈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15~16세기 포르투갈은 모잠비크, 앙골라 지역을 통치하면서

향료를 수입하기 위한 중계점으로 삼았습니다.

그 뒤로 영국과 네덜란드 등이 침입을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했고,

19세기 말에는 포르투갈의 특허회사가 내륙부까지 넓게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1911년 한때 자치식민지가 되었으나

1926년 포르투갈의 쿠데타 이후 직할식민지로 바뀌었고

1951년에는 포르투갈의 해외령이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60년대

아프리카 국가들은 일제히 독립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이 영향으로 모잠비크에서도

1964년 사회주의 성향의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이 결성되어 독립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포르투갈은 모잠비크의 독립을 저지하려 했으나

그 당시 중국, 쿠바, 소련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지원을 받았던 모잠비크는

19756, 포르투갈로부터 완벽한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독립초기 모잠비크는 독립전쟁을 주도했던 해방 전선이 일당제를 취하고

그 지도자였던 사모라 마셸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모잠비크 내의 반공 흑인 세력들은 로디지아와 남아공의 지원을 받아

민족저항운동(RENAMO) 단체를 조직하여

모잠비크 정권을 상대로 무장투쟁을 시작했고

1986년 마셸 대통령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자 모잠비크의 내전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1990, 정부는 반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사회주의노선을 전격적으로 포기했습니다.

같은 해 복수정당제와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하였고

국명도 모잠비크 인민공화국에서 모잠비크공화국으로 변경했습니다.

 

199410, 독립 이후에 최초로 다당제 자유선거를 실시하였으며

그 후로 모잠비크는 아프리카의 민주화 및 시장경제개혁의 시범국가로 부상중입니다.

 

 

3. 정치& 경제

모잠비크는 199011월에 채택한 신헌법에 따라

대통령중심제의 공화국입니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은 직접선거로 선출되고 연임이 가능하며

현재 모잠비크의 대통령은 2015년부터 역임중인 필리프 뉴시(Filipe Nyusi)입니다.

 

모잠비크의 의회는 단원제로 임기 5년의 의원 250명으로 구성됩니다.

독립이후 모잠비크해방전선의 일당제가 유지되어 오다가

현재는 민족저항운동을 이끌었던 당이 합세하여

모잠비크해방전선(FRELIMO), 모잠비크민족저항운동(RENAMO) 이 양분하고 있습니다.

 

현재 모잠비크의 국무총리는

카를루스 아구스티뉴(Carlos Agostinho)

2015년부터 총리직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비동맹주의를 내세우고 있고

독립 이후에는 소련, 동독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가 돈독했으나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면서 현재는 친서방외교를 전개하고 있고

1995년에는 남아공의 주선으로

영국의 통치를 받지 않았던 국가로는 처음으로 영연방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모잠비크의 GDP 산업별 구성은

농업이 25%, 광공업이 30%, 서비스업이 45% 정도입니다.

인구의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업국으로

농수산물 수출이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합니다.

 

모잠비크 북부지역에서는 옥수수, 해바라기, 땅콩 등을 재배하며

기타지역에서는 차, 면화, 사탕수수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또한 모잠비크에는 새우, 바닷가재를 비롯한 풍부한 수산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양식산업도 발전하여 굴, 홍합, 진주양식업도 활발한 편입니다.

 

석탄은 가장 중요한 천연광물자원으로

현재 6억톤이상이 매장되어 있으며

철광석을 비롯하여 특히 탄탈라이트는 세계 4위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한 중부지방을 흐르는 잠베지강에는

아프리카 최대의 수력전기 발전을 목적으로 지어진 카리바 댐과 발전단지가 있습니다.

 

2010년 로부마 만에서 180톤 규모의 천연가스가 발견되어

생산이 본격화되는 2020년대에는

모잠비크는 카타르에 이어 세계 2위의 천연가스 생산국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4. 자연환경& 문화

모잠비크는 동아프리카대지구대 남단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토 중앙을 흐르는 잠베지강을 기준으로

남부 해안의 모잠비크평야와 북부의 고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남북으로 1,770km의 길쭉한 모양의 모잠비크는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동방으로의 창구 역할을 해오며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모잠비크와 마다가스카르 사이에 있는 해협은

모잠비크 해협으로 불리며

아프리카 남부에서는 사막화 위험도가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모잠비크의 대부분 지역은 사바나기후로

4월에서 10월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기

11월부터 3월까지는 우기로 나뉩니다.

습한 북서쪽 고지대에는 야자수, 흑단나무와 같은 열대성 식물들이 빽빽한 열대림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잠베지강 삼각주 지대의 해안지역에서는 코코스 야자와 맹그로브 나무가 매우 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륙 저지대에서는 사바나 식물들이 드문드문 자랄 뿐 매우 건조합니다.

 

모잠비크는 식민지와 내전 등 아픈 역사를 겪었음에도

예술의 전통이 매우 풍부하며, 조각과 회화가 발달했습니다.

 

모잠비크 북부지역에 정착해 사는 마꼰드 사람들의 조각 작품들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세련된 예술형태 중 하나로 손꼽히며

1950년대 이래로 재능있는 화가들도 많이 배출했는데요

특히 화가 말란가타나(Malangatana)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예술가로 국제적인 전시회를 치른 걸로 유명합니다.

 

또한 곳곳에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공항 근처에 95m에 달하는 벽에

혁명에 얽힌 이야기와 이미지를 그린 벽화가 가장 유명합니다.

 

육지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있는 모잠비크 섬은

아름다운 힌두교 사원과 모스크장식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인도로 가는 항로에 있던 포르투갈의 교역 중심지 역할을 해온 모잠비크 섬은

현재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는데요.

포르투갈, 인도, 아랍의 영향이 모두 혼재된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1910년 완공된 마푸토 중앙역은

에펠이 설계했다고 하여 유명세를 탔으나

실제로는 허버트 베이커(Herbert Baker)1905년에 설계한 기차역입니다.

 

마푸토 중앙역은 포르투갈 식민지 때 만든 건축물답게 커다란 시계가 있는 전형적인 유럽식 건물인데요.

2009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 TOP 7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5. 인물

모잠비크 출신의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에우제비우(Eusebio)입니다.

흑표범(The Black Panther)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포르투갈의 유명한 축구선수로

1965년 아프리카 출신 축구선수로서는 첫 발롱도르 수상자이자

1966년 피파월드컵에 출전하여 포르투갈의 4강 진출을 이끈 공격수였습니다.

 

1942년 에우제비우는

그 당시 포르투갈령이었던 모잠비크의 수도인 마푸투에서

포르투갈 출신 아버지와 모잠비크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파상풍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던 에우제비우는

모잠비크 유소년 클럽에서 축구를 처음 시작했고

그러던 중 브라질의 축구팀 감독이었던 조세 바우에르의 눈에 우연히 띄었고

바우에르는 그를 포르투갈의 명문 축구팀이었던 SL벤피카에 소개시켜줬습니다.

 

그렇게 에우제비우는 곧바로 벤피카 소속 선수가 되었으며

데뷔 시즌에만 31경기에 출전해 29골을 몰아넣으며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에우제비우는 20살의 나이에 팀의 주전공격수 자리를 차지했고

데뷔하자마자 유러피언컵 대회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에우제비우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의 국가대표로 참가하였는데

사실 포르투갈의 첫 월드컵 진출이기도 했습니다.

에우제비우는 쟁쟁한 상대팀들을 모두 꺾고

포르투갈을 월드컵 4강까지 올려놓았습니다.

 

비록 잉글랜드에 밀려 아쉽게 월드컵 성적은 3위에 그쳤으나

에우제비우는 9골을 넣으며 대회득점왕을 수상했습니다.

1

00m11초만에 주파할 정도로 빠른 스피드를 가졌던 그는

뛰어난 돌파 능력과 볼 컨트롤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15년 동안 벤피카에 있으면서

7번의 득점왕, 11번의 리그 우승을 하였으며

1975년부터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1979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14년 심장마비로 7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포르투갈 정부는 이날을 고인을 기리는 뜻에서 조기를 내걸고

4일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