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나탐 Natam] 가정과 사회, 집단이 겪는 사건·사고·재난·전쟁 - 왜 일어나는 걸까?

Buddhastudy 2022. 12. 5. 20:00

 

 

가정과 사회, 집단이 겪는 사건·사고·재난·전쟁 - 왜 일어나는 걸까?

집단 카르마와 현실의 관계 | 함께 겪는 아픔을 극복하려면 | 인과 법칙, 카르마 법칙, 우연은 없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개인적으로 겪게 되는 일들뿐만 아니라

집단의 소속되어 함께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가족과 사회 국가와 인류 등

집단이 경험하게 되는 질병, 범죄, 사고, 재난, 재해, 전쟁 등은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간접적으로 소식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충격으로 다가와 정신적 고통을 일으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우리가 품고 있는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마음과 현실 관계를 이해하게 되면

집단이 겪는 문제에 대해 개인으로서 올바른 대처나 극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현실이 어떤 원리로 창조되는 것인지를 모르고 있으면

두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마냥 허우적대고

다음에도 또 같은 고통을 반복하게 되지만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알아차리게 되면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상처를 금방 치유하고 같은 고통을 반복하지 않게 됩니다.

 

개인의 치유와 극복은

곧 집단의 치유와 극복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시간에는 집단이 겪게 되는 두려운 현실은

왜 일어나게 되는 것인지

집단 무의식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고

개인으로서 집단이 겪는 아픔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면 좋은지 알아보겠습니다.

 

 

 

+++ 우연은 없다, 모든 것은 필연일 뿐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우연은 없습니다.

랜덤하게 괜히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이 노하셔서 전생에 죄를 지어서도 아닙니다.

현실에 나타나는 모든 일은

정확한 인과 법칙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일어납니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에 따라서 결과가 나타납니다.

공을 심기 때문에 콩이 나고

팥을 심기 때문에 팥이납니다.

어떤 현상에는 반드시 그 현상이 창조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습니다.

즉 결과를 보면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식물의 열매로 콩이 자란다면

우리는 굳이 땅을 파 보지 않아도

당연히 땅속에 콩을 심어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요.

 

카르마 법칙을 이해하게 되면

과거나 현재 현상을 통해서 미래에 일어날 현상에 대해서도

예측하고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콩을 심은 자리에는 당연히 콩이 날 예정임을 알 수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사건 사고 등이 일어나는 바탕에는

분명히 표면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상황을 하나 예를 들어볼게요.

 

A라는 사람이 산에서 담배꽁초를 제대로 끄지 않아서

산불이 났다고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원인을

단순하게 외부에서 찾곤 합니다.

산불이 발생한 바탕에는 담배꽁초를 버린 A에게 잘못이 있고

그날따라 날씨도 건조했고 바람도 불고 낙엽이 쌓여 있어서 불이 붙기 쉬웠다.

 

물리적으로는 분명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물리법칙과 사회 규범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제가 이번 시간에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 물질세계에 보여지는 것에 한정된 표면적인 원인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인 원인 너머, 보이는 것 너머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세계와 물질 현상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 현실이 나타나는 원리

 

현실의 원리가 뭔가요?

우리가 마음에 품는 것은 그대로 현실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콩을 맛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면

콩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감각을 가진 몸이 나타나고

몸에 감각을 통해서

콩을 인식하게 되면서

콩이 존재하는 현실이 나타납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이 현실은 VR 장비를 끼고 보게 되는 가상현실과 그 원리가 굉장히 비슷해요.

현실을 개임 세상에 비유하자면

마음을 내는 것은 곧 컴퓨터로 게임을 프로그래밍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에고의 감각을 통해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은

게임 세상에 나타난 아바타를 통해서

현실을 보고 만지고 돌아다니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컴퓨터에 코드를 입력하면 게임 세상이 나타나듯이

우리 마음에 입력하는 것은 물질 현실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마음이 비면

컴퓨터에 입력되는 데이터가 없으니

게임 현실 역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VR 장비를 쓰고 보고 있어야만 아바타와 게임 세상이 나타나고

장치를 보지 않으면 아바타와 게임 세상은 없듯이

관찰자로 관찰이 일어날 때에만 현실이 나타나고

관찰이 없으면 현실도 없습니다.

 

 

++++ 개인 무의식과 집단 무의식

그럼 다수가 겪게 되는 현실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나랑은 아무 관련 없는 저 뉴스 속에 범죄 사건도

내가 창조하는 것인지

여러 사람이 겪게 되는 질병이나 전쟁 재해 소식도

내가 창조하는 것인지 궁금하죠?

 

여러분이 어떤 사건을 직접적으로 접하든, 간접적으로 접하든

그게 여러분이 보는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면

그 사건은 당연히 여러분의 마음으로부터 창조됩니다.

 

특히 카르마 소멸단계에 접어들면

현실은 내 무의식의 저장되어 있던 감정을 느껴 해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으로 창조되기 때문에

내 안에 있던 감정을 트리거 시키는 사건을

직접적으로 겪게 되든, 간접적으로 소식을 접하든

내 현실로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고

수많은 사람이 물질 차원이라는 같은 시공간에 접속하여 현실을 경험하죠.

개인은 집단 무의식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품은 마음은

무의식 차원의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이 연결된 마음들이 함께 작용하여

다수가 함께 겪게 되는 어떤 사건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개인 무의식을 나뭇잎

전체 무의식을 나무 전체로 비유하면

나뭇잎 한 장만 보면 개별적인 것 같지만

사실 나뭇잎은 나무 전체에게서 나왔고

곧 모든 나뭇잎은 하나로 연결된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건을 뉴스로 접했는데

그 사건은 나랑 관련이 없다고

저건 내 마음으로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야라고 하는 것은

나뭇잎이 나는 나무로부터 나오지 않았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산불 사건을 다시 예로 들어볼게요.

이 세상에 총 10명의 사람만 존재한다고 해볼게요.

만약에 A라는 사람 한 명이 산불을 낸 주범이고

같은 날 3명이 산에 머물러 있다가 산불 사건에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다면

4명이 붙들고 있는 마음이 함께 작용하여 산불사건이 창조됩니다.

그리고 다른 세 명이 산불을 진화하고 피해자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마찬가지로 이 세 명이 붙들고 있던 마음 역시

산불 사건을 창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3명은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산불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 놀라게 된다면

이 세 명의 마음 역시 함께 작용하여 산불 사건이 창조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한 사람이 잘못해서 산불이 나는 것 같지만

사실 무의식 차원에서는

10명의 사람이 품은 마음에너지가 함께 쓰이면서

결과적으로 산불사건이 탄생하게 됩니다.

 

만약에 옆 동네에 사는 강아지는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지나간다면

강아지의 현실에는 산불 사건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강아지의 마음은 이 사건을 창조하는데 영향이 없습니다.

 

이때 우리가 현실을 인식할 때는

나뭇잎 개체로서 현실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현실은 1개의 객관적인 현실이 아니고

10명의 사람이 각자 경험하는 10개의 주관적인 현실이 나타납니다.

게임으로 치면

데이터 센터는 단 하나인데 모니터는 10대라서

10개의 게임 현실 나타나는 것과 같아요.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구는 맛있네, 누구는 맛없네

다른 평가를 하듯이

같이 겪는 사건에 대해서 각자의 업보에 따라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인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A 안에 죄책감이 억눌려 있었다면

죄책감을 느껴야 했기 때문에 산불 사건이 나타나는 것이고

B 안에 분노가 억눌려 있었다면

남을 탓하며 분노해야 했기 때문에 산불 사건이 나타나는 것이고

C 안에 슬픔이 억눌려 있었다면

슬픔을 느껴야 했기 때문에 산불 사건이 나타나게 됩니다.

 

ABC가 붙든 마음 에너지가 함께 작용하여

각자가 억눌렀던 감정을 트리거 시키는

하나의 공통된 사건이 나타나게 됩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

각자 업보에 따른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나뭇잎은 나뭇가지와 연결되어 있죠.

마찬가지로 개인의 무의식은

과거 전생과 부모 조상이 붙들고 있던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현 에고로 태어나기 이전에

전생과 조상으로서의 삶을 통해

무의식에 두려운 감정들을 저장하게 되는데

그렇게 저장한 감정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듯 물려받아서

현 에고를 탄생시킵니다.

 

예를 들어 조상이 전쟁을 겪으며 서로를 버리고 버림받는 아픔을 억누르는 경우

그 조상 밑에 태어난 후손은

그 감정을 고스란히 다운로드 받기에

조상의 억누른 아픔을 느껴야 하는

갈등이나 전쟁 사건을 후손 세대에서 다시 겪게 되면서

감정은 비로소 해소됩니다.

 

물풍선에 물을 채울 때는 별일이 없지만

한계치를 넘어서면 풍선이 갑자기 팡 터지면서 많은 양의 물이 한 번에 쏟아지듯이

카르마를 쌓는 시기에는 현실에 별일이 없지만

감정을 무의식에 억압할 때로 억압해서 한계를 넘어서 버리면

결국 감정은

물풍선이 터지듯이

표면의식 차원으로 모든 양이 한 번에 팡 터져 나와야 하기 때문에

현실에는 여러 사람의 감정을 동시다발적으로 팡 터트리는

전쟁 재해 사고 재난 등의 큰 사건이 나타나게 됩니다.

 

감정을 해소해야 하는 시기에 접어든 사람들은

무의식에 억눌린 감정을 느껴야 하는 현실을

집단적으로 함께 창조하여 겪게 되는 것인데요

집단이 창조하는 현실을 몇 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 볼게요.

 

예를 들어서 어떤 가수의 노래에 사람들이 열광하게 된다면

그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작용했기에

그런 가수와 노래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영화를 보고 울고 웃게 된다면

그 영화를 보고 그런 감정을 느껴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작용했기에

그런 영화가 탄생하게 됩니다.

 

스포츠 경기에 우리 팀이 져서 분노하고 실망하게 된다면

이 역시도 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만들어내는 결과입니다.

 

누군가가 범죄를 저질러서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분노하게 된다면

그 역시도 그런 두려움을 느껴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작용하여

범죄가 탄생됩니다.

 

아까 산불 사건을 다시 예로 들어서

사건의 표면적인 원인만 보면

A가 사건의 주범이니 A 잘못이 맞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A는 왜 하필 그날 그 장소에 가서 불씨를 남긴 것일까요?

그리고 피해자들은 왜 하필 그날 그 장소에 머물러 있던 것일까요?

 

보이지 않는 무식 차원에서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냐면

A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바탕에는

10명이 붙든 마음이 함께 시나리오를 써서

A가 그런 행동을 하게 하고

마찬가지로 10명이 붙은 마음이 함께 시나리오를 써서

사람들이 마침 그날 산에 올라가도록 만듭니다.

 

개인 아바타들은

프로그래밍 된 대로 움직입니다.

에고는 여러분의 무의식에 의해서 지배받고 조종받을 뿐입니다.

 

에고의 몸, 행동, , 생각, 감정

이 모든 것은 관찰 대상에 속하는 것으로

이미 출력되어 나타나는 결과물입니다.

 

내가 이 몸 자체이고

내가 자발적으로 생각 말 행동을 하고

내 의지대로 결정을 하고

나에게 느껴지는 이 감정이나이 느껴지는 감각이

고스란히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 분명히 내가 내 의지로 말하고 행동하는 거고

그 사람들이 본인 의지로 산에 올라간 거지

인간은 그렇게 착각하도록 디자인이 됐습니다.

?

그래야 이 인생 게임이 실감이 나거든요.

내가 진짜이 개인 캐릭터 인간 아바타고

내가 직접 왔다 갔다 하면서 게임을 하고 있다고 믿어야

게임이 실감나고 재밌겠죠.

 

게임 캐릭터는 프로그래밍 된 대로 행동하고

게임 현실은 자동 출력 플레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게임을 할 맛이 나겠습니까?

 

에고는 내 의지대로 무엇인가를 한다고 착각할 뿐이지

사실 에고가 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사건이 내 의지대로 또는 저 사람 의지대로 굴어서 나타난 결과라고 믿는다면

이는 게임 속에 게임 아바타가

내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거야

저 몬스터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거야라고 믿는 것과 똑같습니다.

 

만약에 아바타 A

게임상 전쟁을 주도하게 된다면

그 사건을 관찰 대상으로 보게 되는 모든 사람이 함께 품고 있는 마음으로부터

개인 시나리오가 쓰여지는 것이고

아바타 A는 집단 무의식에 의해 조정을 받아서

자유의지 없이 시나리오에 쓰여진 대로

꼭두각시처럼 전쟁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아서 대사를 읊게 됩니다.

 

 

++++ 왜 현실에 두려운 일들이 일어날까?

 

, 그럼 우리는 왜 굳이 두려운 사건들을 창조하게 될까요?

하루가 멀다고 세상에 별의별 사건 사고들이 많이 일어나죠.

현실에 마음의 품은게 나타난다?

이상하죠.

분명 사고를 원하지 않았는데 사고가 나타나고

범죄를 원하지 않았는데 범죄가 나타나고

질병을 원하지 않았는데 질병이 나타나고

전쟁을 원하지 않았는데 전쟁이 나타나고

아니 앞뒤가 안 맞지 않나?

대체 왜 그런 걸까요?

 

왜 현실에 두려운 일들이 일어나는지 이해가 안가고 황당하다면

잠시 인생 게임에 접속해 있는 동안 개인 아바타 역에 푹 빠져 있느라

그 현실을 경험하기를 원했다는 것을 잠시 망각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것만 현실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당연히 여러분이 인간이기 이전에 프로그래밍을 그렇게 했으니까

게임 내용이 그렇게 나타나는 거예요.

 

현실로 나타나는 것들 중에

우리가 경험하기를 원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집단이 겪게 되는 사건도

그 사건을 집단이 함께 경험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단 우리가 왜 인간으로 태어나서 현실을 체험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잠깐 짚고 넘어갈게요.

 

현실은 우리가 어떤 것을 체험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내면서

나타납니다.

여기서 인류가 공통적으로 체험하고자 했던 것에는

크게는 인간 너머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우치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로서 연결된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 후자, 사랑을 위주로 설명을 해 볼게요.

현실을 창조하는 과정에 크게는

생각과 감정이 필요합니다.

 

정신체로 사랑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근데 생각만으로는 사랑이 체험되지 않습니다.

사랑 그게 뭐지?

이런 상태에요.

그래서 감정체로 사랑을 인식하고 싶다는 욕구를 냅니다.

이때 사랑을 인식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랑이 아닌 것을 인식하고 싶다는 마음과도 같습니다.

 

두 가지가 똑같은 상태예요.

사랑이 아닌 것을 인식해야만

사랑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될 것이 아닙니까.

사랑이 아닌 것을 인식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다면

사랑이 체험되는 현실 역시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체험은 상대적인 상태가 있을 때만 가능해지게 됩니다.

즉 우리가 사랑을 체험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되면서

이 인간 세상을 프로그래밍할 때

인류가 진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사랑이 아닌 것을 체험하도록 시나리오를 짜게 됩니다.

 

시나리오 내용을 예를 들면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와 인간에기 이전 본래의 나가 무엇인지 망각하는 내용

하나였던 것은 둘로 찢어지도록

나누어진 둘은 차별이 생기도록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하고, 멀리하고, 증오하도록 하는 내용

서로를 버리고 버린 받음으로써 아픔, 죄책감, 고립감, 외로움 등을 느껴야 하는 내용 등을

경험하도록 진화되어 온 것인데

이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세부 사항을 어떻게 프로그래밍해야 했을까요?

 

이 부분은 제가 다른 영상에서 다룰 내용이라서

이번에는 간단하게만 집고 넘어갈게요

예를 들면 사람을 해치는 자는 죄인이고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서

사람들 마음에 사람을 해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을 심어줍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현실로 나타나죠.

살리는 것만 옳은 것이고

해치는 것은 나쁜 것이 되는 순간

해치는 쪽에 두려움 에너지가 작용하여

현실에는 해치고 해침을 당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살인을 나쁘다고 보면 현실에 살인이 창조되고

전쟁을 나쁘다고 보면 현실에 전쟁이 창조되는

단순한 원리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상대가 미워지거나 공격하고 싶은 감정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데

해치는 것은 잘못됐다는 관념을 갖게 되면

해치고 싶은 감정이 일어날 때 이를 무의식 속에 억누르고 반대로 선한 사람인 척을

하게 됩니다.

 

집단이 커지고 종교나 사회제도가 강화되면 될수록

수많은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는 것만 추구하고

해치고 싶다는 감정을 억누르게 되면서

집단 무의식에는

해치고 싶다는 감정이 어마어마하게 쌓이게 됩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수천만명 수억명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분법적인 관념을 강하게 갖고

한쪽 감정만 계속 억누르는 경우

당연히 무의식에는

더 강한 마음 에너지가 모아집니다.

 

결국 카르마 해소 시기에 접어들면

물풍선 물이 꽉 차면 그 억눌렀던 마음이 터져 나와야 하기 때문에

후손 세대에서 다수가 해를 가고 다수가 해를 당하는 장면이 나타나게 되고

이때 업보에 따라서 누군가는 가해자의 마음

누군가는 피해자의 마음을 느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랑이 아닌 것을 인식해야만 사랑 인식하죠.

우리가 두려운 감정을 경험하게 될 때

사랑이 아닌 것을 인식하게 되고

감정이 터져 나와서 해소가 되면

두려움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게 되면서

두렵지 않은 것은 사랑에 대한 체험이 일어납니다.

 

해치고 해침을 당하는 장면을 통해서

집단적으로 감정을 해소하게 되면

감정은 풀려서 사라지기 때문에

더 이상 해치는 것과는 관련된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되면서

현실에는 너와 나는 남이니

서로를 밀어내고 해치게 되는 장면과는 반대 상태인

서로를 아끼고 보호하고 보살피고 돕고 함께 하고 사랑하는 장면이 나타나서

비로소 너와 나는 본래 하나구나

이 자체가 모두 사랑이구나 하고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이번 영상을 정리하면

집단이 겪는 사건은

그 사건을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경험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이 품고 있는 감정에 의해서 나타납니다

 

집단이 품은 감정을 해소하라고

현실에는 두려운 사건들이 나타나게 되는 거예요.

어떤 사건에 대해 당연히 표면이식 차원에서는

누군가의 잘못이나 책임이 있는 것이 맞지만

무의식 차원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

더 근본적으로 파고들면

애초에 우리가 인간의 삶을 선택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자 그런 두려운 사건들을 삶 곳곳에 세팅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 집단적 아픔의 치유를 위한 개인의 역할

집단의 겪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그저 느끼는 것입니다.

 

감정을 해소하라고 나타나는 일이기에

감정을 그대로 느끼면 되는 것입니다.

 

집단적으로 감정은 이미 쌓일 대로 쌓여서

물풍선이 안 터질 수는 없어요.

터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니

풍선이 터질 것을 받아들이고

풍선이 터지면 나오는 물을 막으려 하지 말고 그저 흘려보내는 거예요.

 

누군가는 슬퍼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분노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할 수도 있죠.

또는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감정을 풀기에 벅차서

집단이 겪는 문제에 대해 영향을 받기 싫을 수도 있고

감정을 피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열이 받으면 열 받는다

미안하면 미안하다

신경 쓰기 싫으면 신경 쓰기 싫다

어떤 마음이 들든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 마음을 그대로 느껴주면 되는 것입니다.

 

집단이 겪는 공통된 사건에 대해서

개인이 무슨 마음을 느끼든

그대로 느껴주게 될 때 집단이 함께 붙들고 있던 감정이 풀려나면서

집단의 겪는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고 제자리를 찾아가게 됩니다

 

현재 지구는

카르마 소멸의 시기에 들어와 있어서

현재 전세계적으로 감정을 토해내야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하고 있어요

 

그 중에 특히 한국은

감정 해소 단계를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서 겪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국은 조상 대대로 서로를 버리고 버림받는 무의식이 굉장히 강한 나라기 때문에

집단이 고통을 겪게 되는 여러 가지 혼란스러운 일들이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아픔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큰 사랑으로 승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체험 역시 크게 일어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집단이 감정적인 고통을 겪게 되다 보니까

옆에서 고통을 덜어주고

사회에 도움을 주는 역할들 역시 많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런 영상을 보시는 우리 여러분들이

각자 위치에서 그런 역할이 되어 주실 분들이죠.

 

사회에 빛이 되어 주시는 우리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럼 다음에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