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지혜별숲] 사랑의 진동수는 공포의 진동수에 대항한다. [낭독40회]

Buddhastudy 2023. 10. 12. 19:26

 

 

 

알렉산더 로이드의 [러브코드] 함께 하겠습니다.

러브코드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심리 상담사인

알렉산더 로이드가 개발한 프로그램인데요.

과학과 고대의 지혜, 그리고 효과가 증명된 치료 기법에 뿌리를 두고 있구요.

25년 이상의 임상 경험을 기반으로 만든 획기적인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의지력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힘을 이용하는

자기계발 프로그램과는 다른 방식의 프로그램이에요.

근원적인 스트레스를 해결함으로써

우리의 무의식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기법들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내용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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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통해 모든 것이 에너지라는 사실을 입증했다면

사랑 역시 에너지라는 것도 동일하게 입증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사랑 역시 진동수로 작용한다.

 

사실, 사랑과 빛은 동전의 양면이다.

두 가지 다 긍정적인 치유의 진동수를 가지고 있다.

빛은 이 에너지 진동수가 보다 신체적으로 발현된 데 비해

사랑은 보다 정신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어둠과 공포는 전혀 다른 진동수로 존재하며

이 역시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어둠은 에너지 진동수가 보다 신체적으로 발현된 데 비해

공포는 보다 정신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MRI 기계가 당신의 몸을 촬영하는 것이

사진을 찍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MRI는 기계가 기록하는 에너지 진동수를 기반으로 사진을 만들어 낸다.

MRIR공명을 의미하고 진동수를 뜻하기도 한다.

MRI 기계는 건강한 간세포 진동수와

건강하지 못한 간세포 진동수 같은 수백 개의 에너지 진동수로

프로그램 되어 있다.

MRI는 신체를 정밀 촬영해서

건강하지 못한 간세포의 진동수를 찾아내면

검은 점들로 이루어진 사진을 만들어낸다.

당신의 간에서 어둠의 진동수를 잡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200명 이상의 의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정신과 신체, 그리고 치유 체계가 완벽하게 잘 작동하고 있다면

보통의 일상 상황에서 당신은 병에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내가 들은 대답은 아니오였다.

보통의 일상 상황에서

신체 면역 체계와 정신 및 영적 치유 체계가 완벽하게 잘 작동하고 있다면

당신은 절대 그 어떤 병에도 걸릴 수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의 치유 체계에 관한 두 가지 사항이다.

첫째, 우리의 치유 체계는

신체적 자아만이 아니라 온전한 자아,

즉 신체적이고 정신적이면서 영적인 자아를 다스린다.

당신의 치유 체계에는

분노와 슬픔, 공포, 불안, 걱정 대신에

사랑과 기쁨, 평화, 인내를 느끼도록 돕는 비신체적인 측면들이 있다.

 

둘째, 우리가 부정적인 증상들(고통, 공포, 질병, 분노 등)을 경험하는 이유는

부정적인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캐롤라인 리프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인체에 부정적인 효과들을 만들어내는

신체적, 정서적, 혹은 영적 기제가 없다.

건강과 생명력, 면역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들을 생산해 내는 기제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 몸의 기제는 하나같이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건강과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 작용한다.

질병이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믿는 것은

마치 고장 난 자동차를 영업소에 가져가서 이렇게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이 자동차를 고장 나게 만들었어요?”

 

물론, 영업소 직원은 당황한 얼굴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특정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고장이 난 겁니다.

실은 고객님께서 주행거리가 4만 마일이 되도록 오일을 교환하지 않으셨네요!”

 

우리 몸의 작동 원리도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 삶에 부정적인 일이 발생하는 것은

언제나 긍정적인 체계의 기능 부전 때문이다.

 

앞에서 한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해 보자.

정신과 신체가 원래 정해진 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당신의 몸은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당신은 공포와 불안, 걱정, 슬픔, 분노를 비롯해

여타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치유 체계가 올바로 작동하지 못하는 원인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공포다.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공포가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하면

당신의 뇌는 기억 장치에서 시상하부로 공포 진동수 혹은 공포 신호를 보내고

이로인해 스트레스 스위치가 켜진다.

 

만약 시상하부가 공포 신호를 받지 못하면

스트레스 스위치는 켜지지 않는다.

(스트레스 반응의 다른 이름이 공포 반응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러한 반응들은 인간 생존 본능의 일부분으로

생명을 보존하도록 도와준다.

 

2장에서 논의했듯이 우리의 스트레스 반응은

지금 당장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할 때에만 일어나도록 정해져 있다.

여기서 말하는 스트레스

건강한 스트레스, 혹은 운동을 할 때 신체를 적절히 자극하는 스트레스가 아니다.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는 유스트레스eustress(좋은 스트레스)’라고 종종 불리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이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하루에 10, 15, 아니 20번 가량 투쟁-도피 반응을 보인다.

스트레스가 우리의 생활이 되는 수준이다.

 

힐링 코드와 다른 방법을 이용해

3년 동안 심박변이 테스트를 실시하면서

나는 피험자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스트레스를 느끼십니까?”

 

그런데 심각한 임상 생리적 스트레스를 느끼면서

테스트에 임한 피험자들의 90퍼센트 이상이

아니오,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스트레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대단히 예외적이어야 할 상태가 일반적인 상태가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느끼며 살고 있으면서도 심지어 그것을 깨닫지도 못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파괴적인 느낌은 모두 공포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공포와 전혀 관계없는 부정적인 감정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자.

 

두려워하는 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으면 우리는 분노를 느낀다.

두려워하는 것이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믿으면 우리는 걱정과 불안을 느낀다.

두려워하는 것이 이미 벌어졌고

그 일을 되돌리지 못한다고 믿으며

자신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을 때 우리는 슬픔과 우울함을 느낀다.

그리고 절망과 무기력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어떤 일이 옳지도 공정하지도 않고, 바로잡힐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같아 두려울 때,

우리는 무자비한 기분이 든다.

누군가가 우리를 사랑하거나 받아들여주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거나

그들이 우리를 이미 거절해 버렸을 때

우리는 거부당한 기분이 강력하게 든다.

그리고 반드시 받아들여지기를 너무도 간절히 바란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더 들 수 있다.

살아가면서 겪는 내면의 거의 모든 부정적 경험은

공포를 느끼고 거짓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

 

어둠이란 언제나 빛의 부재이듯이

모든 공포는 사랑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공포 기반의 사고나 감정, 기억은

우리의 생명이 일촉즉발의 위험에 놓인 상황이 아닐 때에도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공포를 기반으로 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치유 체계를 약화시키거나 완전히 꺼버린다.

 

그 말은 우리가 질병에 걸리기 쉬워질 뿐 아니라

그 상황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앞으로 병에 걸리는 것이 사실상 보장된다는 뜻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약화시키거나 없애고

성취와 성공을 약화하거나 없애며

삶의 만족을 낮추거나 없애버리고 있다.

 

분명, 우리는 공포 속에서 살면서 치유 체계가 꺼지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면 공포의 해독제는 무엇일까?

해독제는 사랑이다.

 

저명한 의학박사 버니 시겔은 저서 <사랑, 의학, 그리고 기적>에서

사랑의 힘으로 의학적 기적이 계속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물리학이 필요해진다.

 

사랑의 진동수는 공포의 진동수에 직접적으로 대항한다.

사랑과 빛, 치유의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마디 하자면

고대 히브리어로 치유

문자 그대로 빛에 눈이 멀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결국 우리의 신체 증상을 포함해서

공포를 기반으로 한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힘이었다.

 

공포 기반의 것과 반대로

사랑을 기반으로 한 사고, 믿음, 그리고 기억은

짧은 시일 안에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감시킨다.

 

공포의 반대는 사랑이다.

사랑이 존재한다면, 지금 당장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이상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과 공포가 반대라는 개념이 새롭게 들릴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의 반대가 평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이다.

평화는 사랑의 직접적인 표현이고 사랑에서 유래되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이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비슷하게, 만약 사랑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환경에서도 평화를 누릴 것이다.

또한 사랑의 반대가 공포가 아니라 이기심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당신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위와 마찬가지로, 이기심은 공포의 직접적인 표현이고 공포에서 유래된다.

만약 공포가 없다면 이기심도 없다.

물론 어린아이는 예외지만 말이다.

 

만약 성인이 공포를 제거하고 나면

그 사람은 자연히 친절하고 포용적이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할 것이다.

이는 어두운 방에 불을 켜는 것과도 같다.

어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사랑은 기쁨, 평화, 인내, 수용, 믿음 등의 모든 미덕이 흘러나오는 감정 상태다.

하지만 공포는 모든 신체적, 비신체적 기능 부전과 응답 억제, 실패, 해악이 흘러나오는 마음 상태다.

 

공포는 사랑하는 상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어둠이 빛으로 가득한 환경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사랑은 치유하고

공포는 죽이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진실로 생사의 문제다.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관계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모든 면에서 그러하다.

 

고맙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채널 [지혜별숲] 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평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