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33회 엄마로서의 욕심

Buddhastudy 2013. 2. 1. 22:13

출처: BTN

 

자기가 만약에 나를 싫어하는데 내가 가서 너무너무 너가 사랑스럽다. 난 널 너무너무 껴안고 싶다. 뽀뽀하고 싶다. 이렇게 뽀뽀하고 가슴 만지고 그러면 자기는 그게 사랑이가? 성추행이가? 자기가 싫어할 때? 자기가 싫어하는데 그러면? 성추행이지. 그런데 나는 너무 좋아서 그랬거든. 그러면 어느 게 맞나? 나는 성추행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그랬어. 그럼 어느 게 맞느냐고? 성추행이냐? 사랑한 거냐? 내가 성추행한 거냐? 사랑한 거냐? 말귀는 알아들었어요? 그러니까 일방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그거는 성추행이지.

 

상대에 대한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이에요. 모든 성추행은 다 폭력이잖아. 그거는 내가 좋을 뿐이지 상대는 싫다는데 내가 좋아하잖아. 그런 것처럼 아이가 싫다는데 내가 아이에게 좋아하면 아이에게 그것은 속박이지. 그런데 자기는 엄마가 너를 나쁘게 하려고 그랬나? 널 사랑해서 그러지.” “나도 그래요. 당신을 사랑해서 그러는 거요. 성추행하려고 그런 게 아니고.” 으음. 그러니까 그런 얘기는 하면 안 돼요.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은 추행이에요. 괴롭힘이에요. 괴롭힘.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독재하면서도 다 누구를 위해서 한다고 그래요? 국민을 위해서 하잖아. 국민을 위해서 하고 모든 사람이 다 그건 아니야. 그래서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이다. 갓난아기 때는 아이에게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해. 그래서 엄마는 아이에게 도움을 줘야 돼. 그건 엄마의 책임과 의무에요. 그러니까 아이가 성장하면서는 아이는 따라 배우기를 해. 그래서 맹모삼천이 있잖아. 장에 가면 장사꾼 흉내 내고, 서당에 가면 공부하는 거 흉내 내듯이.

 

그래서 초등학교 다닐 때는 부모가 자식에게 모범을 보여줘야 되요. 이래라 저래라가 아니라 모범을 보여줘야 된다. 사춘기가 되면 중고등학생 때는 아이는 자기가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해야 돼요. 그때는 부모는 정을 떼고 아이를 지켜봐야 돼. 간섭하면 아이는 자립심을 잃어버려. 그거는 아이에게 해악이 된다. 이 말이오. 엄마는 사랑일지 몰라도 아이는 자기의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거요. 만약에 어린아이들이 그네를 타는데 엄마가 아이가 떨어질까 싶어 그넷줄을 잡고 있으면 아이는 평생 그네를 못 배워.

 

그러니까 아이 어릴 때는 엄마 때문에 아이가 살고, 커서는 엄마 때문에 아이를 망치는 거요. 이 세상의 성인은 엄마 말을 들은 사람이에요? 안들은 사람이에요? 부처님이 출가할 때 부모 말을 듣고 출가했어요? 안 듣고 출가했어요? 안 듣고 출가했죠? 부모 말 들었으면 부처님 됐나? 못됐나? 못됐어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호히로부미 암살하러 갈 때 부모한테 말했으면 승낙했겠나? 안 했겠나? 윤봉길 의사가 독립운동 하러 갈 때 부모한테 말했으면 승낙했겠나? 안 했겠나? 안 했겠죠.

 

부모는 이중성을 갖습니다. 부모는 오직 자식에 대해서는 안전을 중심으로 합니다. 안전하기를 바래요. 그래서 아기 때는 부모만큼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없고, 크면 부모만큼 아이에게 방해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으음. 그래서 모든 성인은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람들이오. 그러니까 여러분이 어릴 때는 부모가 자식에게 도움이지만, 크면 부모가 자식에게 최대의 장애물이다. 그래서 자연을 배워야 됩니다.

 

자연은 제비가 새끼 때는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지마는 제비가 날아가면 더 이상 어미가 새끼를 따르지도 않고 새끼가 어미를 따르지도 않습니다. 독립적인 존재가 되죠. 그런 것처럼 여러분은 갓난아기 3살 때까지는 목숨 바쳐 보살펴야 되고, 초등학교 때까지는 모범을 보여줘야 되고, 사춘기 때는 정을 떼고 지켜봐 줘야 되고, 20살이 넘으면 완전히 독립해서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대우해 줘야 된다. 거기에 어미 딱지가 붙으면 안 돼요. 그러면 아이를 망친다. 이런 얘기요.

 

그러면 자기는 지금은 벌써 아이에 대한 자기 관심은 아이를 망치는 쪽으로 벌써 이미 이전이 됐다. 이 말이오. 노력하겠다. 그러면 안 되지. 안 하겠습니다. 이래야지. 노력하겠다는 거는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얘기야.

108배 하는데 뭘 그 의미를 자꾸 따져요. 그냥 108배하면 되지. 저런 말하는 사람은 절이 얼마나 하기 싫으면 저런 걸 따질까? 그냥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굳이 말하면 사람이 번뇌를 일으켜. 괴로워. 그죠? 괴로울 때 이 괴로움의 종류를 따지면 너무너무 많아. 수백 수천수만 가지야. 그래서 이걸 뭐라고 그러냐? 84천 번뇌 망상이라 그래. 84천이라는 숫자는 아라비아숫자 84천이 아니고 인도사람의 언어의 습관이에요. 무한히 많은 이라는 뜻이야. 84천이. 아시겠습니까? 84, 이 말은 무한히 많다. 경상도 가면 왜 사람이 많이 모이면 뭐라고 그럽디까? 억수로 많이 모였더라. 이러지.

 

그때 억수라는 말은 1억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량없이 많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런 뜻인 것처럼 84천이란 인도말의 의미는 한없이 많은 이런 뜻이야. 그래서 84천 번뇌 망상이라고 하는 거는 우리의 번뇌 망상이 한없이 많다. 이런 뜻인데 이 한없이 많은 번뇌 망상이라는 것도 다 따지고 보면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게 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맞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머리로 생각하고 알음 알이 하고. 요 여섯 가지를 벗어날 수가 없다. 맞습니까?

 

아무리 번뇌망상이 많아도 결국 따지면 다 요 안에 들어간다. 그래서 눈을 한문으로 안이라 그러죠. 그래서 안이비설신의 여섯 가지고. 그 보는 대상을 눈의 대상은 색이야. 빛깔과 모양. 귀의 대상은 뭐다? 소리야.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성이라 그래. 이걸 한문으로 색성향미촉법. 이래요. 그러니까 우리 몸에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근이 있고. 그 바깥 인식대상은 여섯 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육경이라 그래. 색성향미촉법. 그래서 6x6하면 얼마에요? 36이죠.

 

그런데 우리는 지나가 버린 과거 것도 기억해서 가지고 있고. 현재에 일어나고 있고. 미래에 예측을 하지 않습니까? 그죠? 미리 걱정하는 건 예측이죠. 그러니까 거기다가 다시 3을 곱하면 얼마다? 108이지. 그러니까 108108가지라는 라는 뜻보다는 그러니까 수많은 많은 번뇌 망상을 총칭하는 언어가 뭐다? 108번뇌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네 108번뇌를 하나하나 다 없앤다. 하는 뜻에서 몇 배를 한다? 108를 한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