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지혜별숲] 참된 명상은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다. [낭독48회]

Buddhastudy 2023. 11. 9. 19:36

 

 

아디야샨티의 [참된 명상] 함께 하겠습니다.

 

저자인 아디야샨티는 서구 영성계의 차세대 지도자로 각광받고 있는데요.

이 책을 통해 그는 진정한 명상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명상인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내용은

우리가 마음의 통제와 조작을 놓아버릴 때에만

[참된 명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에요.

내용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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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명상을 하기 위해 앉으면 제일 먼저

좋아, 어떻게 해야 마음을 통제하지?”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내가 조작이라 부르는 것이다.

조작이라는 단어는 어감이 센 단어이지만,

나는 여러분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일부러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명상을 하기 위해 앉아서

좋아, 어떻게 내 마음을 통제할까? 어떻게 하면 평화로워질까?

어떻게 하면 고요해질까?”라고 스스로 물을 때,

마음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통제해서 기분이 좋아질까?”라고 묻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주목하도록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통제하는 기법을 이용하여

마음을 통제하고 몸과 마음을 진정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잠시 동안 기분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평화롭거나 평온한 상태를 얻기 위해 마음을 통제한다면

그것은 누군가를 조용하게 만들기 위해

테이프로 그의 입을 틀어막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을 조용하게 만든다 해도

그것은 매우 조작적인 방법을 통한 것이다.

 

테이프로 그 사람의 입을 막아 조용하게 만든다고 해서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입에서 테이프를 떼어 내자마자 그들은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렇잖은가?

그들은 할 말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명상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명상 상태에 들어가서 몸과 마음을 어느 정도 통제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기분이 아주아주 좋다.

그 경험은 심오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뒤 명상을 멈추자마자, 방석이나 의자에서 일어나자마자,

마음은 다시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우리는 통제를 통해 일종의 명상적인 고요함을 경험하지만,

우리가 통제를 포기하자마자

마음은 고요함에서 벗어나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이전의 방식 그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명상 수행자들은 이런 딜레마에 너무나 익숙하다.

우리가 명상을 하고 있을 때는 어떤 평화로운 상태를 얻을 수도 있지만,

명상을 멈추면 평화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서 자취를 감춘다.

 

참된 명상이란

어떠한 기법에 숙달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명상이다.

 

다른 모든 것은 실제로는 일종의 정신 집중이다.

명상과 정신 집중은 별개의 것이다.

정신 집중은 훈련이다.

정신 집중은 사실 우리의 경험을 감독하거나 이끌거나 통제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명상은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며,

우리의 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의도를 포기하는 것이다.

통제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에게 실로 엄청난 일이다.

 

그저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경우

우리의 전체 심리 구조, 우리의 전체 심리적 자아,

우리의 에고는 거의 전부가 통제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마음 즉 에고에게 통제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혁명적인 발상이다.

통제를 포기할 때는, 단 한 순간만 포기하더라도

어떤 감추어져 있던 두려움과 망설임이 일어난다.

 

마음은 말한다.

통제를 포기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쩌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명상하기 위해 앉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우리가 어떤 기법이나 훈련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통제를 포기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참된 명상에서 내가 제안하는 바는

직접 실제로 보라는 것이며,

하나의 탐구 방법으로서 명상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참된 명상은 사실 새로운 기법이 아니다.

그것은 통제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기 시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자기의 몸에서, 자기의 마음에서, 자기의 권위에 근거하여, 자기의 경험에 근거하여-스스로 탐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당신이 경험하는 것을 달리 변화시키려는 노력 없이

정확히 있는 그대로 내버려둘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참된 명상은 기법이 아니며, 실제로는 하나의 탐구 수단이다.

우리가 통제와 조작을 실제로 포기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참된 명상의 두 번째 측면은 명상적인 자기탐구이다.

명상적인 자기탐구란 명상 상태에 있는 마음에 질문을, 강력하고 중요한 영적 질문을

제기하는 수행이다.

 

이때 우리는 그냥 아무 낡은 질문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가치 있는 질문들

조건화된 단층들을 꿰뚫고 우리의 근원적인 본성에 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질문들을 한다.

 

우리가 물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질문은 그저

나는 무엇인가? 명상하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경험을 통제하려 애쓰는 에고를 계속해서 약화시킨다.

이 질문은

누가 경험을 통제하고 있는가? 누가 명상을 하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명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명상하는 자를 넘어서는 것

즉 에고 또는 마음을 초월하는 것이다.

 

명상하는 자가 통제하고 있는 한,

마음 또는 에고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참된 명상에서는 명상하는 자를 포기하는 수행을 한다.

 

이 명상에서는 맨 처음부터 통제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도록 권유한다.

 

이러한 수행은 명상하는 자를 해방시켜 준다.

만일 명상하는 자가 무언가를 한다면

그것은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며

무언가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명상하는 자에 대해 말할 때,

명상하는 자란 통제하고 있는 자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명상하는 자는 애쓰는 자이며, 조작하는 자, 열심히 노력하는 자이다.

거의 모든 형태의 명상에서 명상하는 자는 매우 분주하게 뭔가를 한다.

 

마음은 끊임없이 무언가 할 일을, 무언가 숙달해야 할 일을 마련한다.

그리고 마음은 무언가 할 일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만 마음이 계속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인 깨어남-우리의 진정한 본성으로의 깨어남-이라는 측면에 상응하는 형태의 명상을 위해서는

명상하는 자, 통제하는 자, 조작하는 자를 넘어서야만 한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다양한 전통들은 명상을 하나의 기법으로서 가르친다.

 

우리는 호흡에 집중하거나 신체의 여러 부위에 집중하는 것과 같은

갖가지 통제 방법을 배운다.

 

선의 전통에서는 흔히 배꼽 바로 아랫부분에 집중한다.

대개 우리는 등을 곧게 펴고 특정한 자세로 앉아서

특정한 방식으로 숨 쉬는 법을 배운다.

 

이러한 기법과 훈련들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왔으며

나는 그것들이 아무런 가치와 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나름의 가치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법들을 포기하기 시작할 때,

이런 집중을 포기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존재의 자연스러운 상태에 다가갈 수 있다.

 

이러한 수행 기법들은

우리 의식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보지 못하게 가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수련회를 시작할 때면 나는 말하기를,

참석자들이 저마다 다른 명상 기법이나 집중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얘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호흡에 주의를 기울인다.

어떤 사람들은 만트라를 암송한다.

어떤 사람들은 깊은 호흡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시각화 훈련을 한다.

 

나는 참여한 사람들에게 명상 수업 처음에는

이러한 기법들을 수행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이러한 수행 기법들은 마음을 현재로 데려오는 데 아주 적합한 방법들이다.

 

그런 기법들은 정신적 에너지와 활동적인 마음의 원천들을 끌어모아서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가득 차게 한다.

그렇지만 나는 또한 명상을 하는 동안

어느 특정한 기간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명상 기법을 놓아 버리는 시간도 함께 갖자고 제안한다.

 

만약 내가 호흡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면,

호흡에 기울이는 주의를 포기했을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시험해 보는 것이다.

 

내가 자주 목격한 사실은,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이런 오래된 전통들과 기법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표 자체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나긴 세월동안

계속 호흡만을 지켜보며,

결국 호흡을 지켜보는 데만 통달하게 된다.

 

그러나 영성이란 결코 호흡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다.

영성이란 분리의 꿈에서 하나임의 진실로 깨어나는 것이다.

 

영성이란 그런 것이지만

우리가 기법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이러한 사실을 잊어버릴 수 있다.

 

 

고맙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채널 [지혜별숲] 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평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