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342회 엄마 역할 /수행방법

Buddhastudy 2013. 2. 15. 21:51

출처: BTN

  

모르면 말 안 해주면 되잖아. 왜 해주려고 그래? 반복이 되도 가만 놔두면 되지. 아니 자기가 그게 애가 자꾸 그래서 자기가 피해 본다면 자기가 안 사귈 거고, 자기가 그 정도 패해 입어도 친구는 사귀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니 사귈 거니까. 엄마가 답이 없으면 가만있으면 되지. 없는 답을 뭣 때문에 찾아. 에이~ 그런 생각 하면 안 돼. 애가 뭐~ 초등학교 애가 무슨 그렇게 벌써 남을 못살게 굴려고 머리를 굴리겠어. 그렇게 너무.

 

애들 말은 그렇게 들을 게 못 돼. 어른이 애들 말 듣고. 애가 그냥 하는 소리지. . 그러니까 걔가 진짜 그러면 친구로 안 할 텐데, 말은 그렇고 또 친구 하잖아. 그러고 다시는 안보나? 그러고 또 친구 하나? 그러니까. 그러니까 애들 얘기는 들을 게 없어. 아이고. 그래. 아이고, 세상이 내 뜻대로 되나? 안되나? 그래. 놔 놓으면 되지. 싸울 때도 있고, 욕 얻어먹을 때도 있고, 친하게 지낼 때도 있고. 애들이니까. 그냥 애가 와서 불평해도 아이고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아이고, 괜찮다.” 이렇게 엄마가 그렇게 말해줘야지.

 

항의하면 아이고 미안 합니데이. 아이고, 죄송해요. 아이고, 죄송해요.” 이렇게 얘기해버리면 끝이지. 뭐 그렇게 다리가 부러졌거나 큰일 생긴 거 아직 아니잖아. 그래. 또 그래 될 수도 있어. 아무 걱정하지 마. 아이고. 그러니까 엄마가 떡~ 마음 태평이 되가지고, 애가 와서 징징 짜고 쟤 때문에 못 살겠다 해도 아이고, 그래. 그랬나? 아이고, 네가 힘들었구나. 그래그래 괜찮다. 내 맛있는 거 해 줄 테니 이거 먹고 조금 있다 가서 놀아라.” 그러면.

 

애들이라는 건 싸우고 들어와서도 또 조금 있다가 씩~ 하고 눈물 닦고 나가 같이 놀고. 그게 애들이에요. 놔두세요. 그럼 애들 하는 소리 그걸 다. 하기야 애들 말도 독하게 하면 어른이 마음 상해요? 안 상해요? 그러지마는 애들 말은 애들 말일뿐이지. 애들이 무슨. 애들이 그렇게 다 머리가 잘 돌아가면 어른이지 그게 애에요? 어리석으니까 애라고 그러는데. 나랏말쌈이. 뭐요? 세종대왕 훈민정음 할 때 뭐라고 돼 있어. 어린 백성이. 이런 말 있잖아. 그때 어린을 뭐라고 해석한다고 그랬어요? 어리석은. 어리다는 말은 어리석다는 말이에요. 어리석으니까 어린애지. 그러니까 그런 건 따질 필요 없어. 그냥 두세요.

 

엄마들 보면 재미있어. 5살짜리 애하고 막 싸워.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이러면서, 7살짜리하고 싸우고 초등학생이 친구끼리 싸운 걸 그걸 갖고 가서 엄마끼리 싸우고. 하여튼 재미있는 사람들이야. 애들이라는 건 싸우면서 큰다. 이런 말 있잖아. 그러니까 그런 거는 그냥 특별히 무슨 버릇. 중학교 들어가서 남을 해치고 못되게 하고 이런 게 아니면 그냥 애들끼리 저그끼리 투닥투닥하는 거는 그냥 덮어 둬야 돼.

 

 

 

 

Q2.

으음. 하여튼 좀 허전하네. 허전하니까 종교를 와도 염불했다가 참선했다가 뭐했다가 자꾸 그러는데. 그렇게 자기 허전함의 얘기지. 그러니까 오히려 그렇게 눈물이 나고 하면 절을 좀 많이 해보세요. 절을 많이 하면, 처음에는 절을 하다 보면 그냥 눈물이 나는데, 나중에 가만 왜 눈물 흘리나 보면 가슴에 약간 억울한 게 있을 거요. 그러면 더 절을 해보면 , 내가 좀 잘못했구나.’ 이렇게 처음에는 억울한 눈물이 흐르고. 그다음에 참회의 눈물이 흐르면 그러면 눈물이 약간 줄어들고. 멎어요.

 

눈물은 항상 있지만 사람이라는 게. 눈물이 있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눈물이 있다는 건 비심이 있으니까. 그런데 원망의 눈물은 좋은 거 아니거든요. 가슴에 상처가 있으니까. 자기가 이제 조금 더 깊이 자기를 들여다보면 언제 생긴 상처인지는 모르지.

 

그런 건 따질 필요는 없어요. 왜냐하면, 수행이라는 건 까르마, 자기 업을 극복하는 거거든요.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담배 피우는 습관을 끊고, 화내는 사람이 화내는 거를 멈추고. 습관을 극복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습관을 극복하려면 저항을 받잖아. 습관의 저항을 받잖아. 그죠? 그럼 안 맞는 거 같지. 누구나 다. 참선하면 참선이 안 맞는 거 같고, 절을 하면 절이 안 맞는 거 갖고 그러지. 안 맞는 거 같은 게 아니에요. 그건 저항이 오는 거니까. 그걸 이겨내야 그다음에 수행이 되는 거지. 내가 절하니 나는 쉽더라. 이러면 수행이 아니에요. 참선하니 쉽더라. 이렇게 쉬운 걸 따라가는 건 수행이 아니야. 수행이라는 건 까르마, 업의 저항을 극복하는 거기 때문에.

 

집중된다고 수행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산만한 가운데도 번뇌 망상이 있는 가운데도 화두를 들면 화두를 참구하려고 애를 쓰는 거고. 명상하면 호흡에 집중하는 거고. 염불하면 염불에 집중하는 거지. 하면 조용하고 편안하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면 우리가 염불할 때 늘 고요한 장소만 찾는다. 이런 거 하고 똑같죠. 공부라는 거는 시끄러운 속에도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게 공부지. 어디 조용한데 가서 앉아있는 게 공부가 아니에요. 공부를 기본적인 관점을 잘못 잡고 있는 거요.

 

여러분이 명상한다고 떡~ 앉아있으면 머릿속에서 망상이 더 생겨요? 덜 생겨요? 염불한다고 정근한다고 절하고 있으면 더 생겨? 덜 생겨? 더 생겨요. 더 생기는 게 그게 수행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게 정상이에요. 더 생기는 게 정상이다. 이 말이오. 그러나 그런 망상 가운데에 염불을 하면 염불에 집중하는 노력이 수행이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염불 딱 하면 아무 생각도 없이 염불만 딱 되고. 그런 생각 하면 안 돼요. 그 망상이 있는 가운데 거기에 내가 끄달리지 않는 게 공부다. 이 말이에요. 그건 연습이 좀 필요해.

 

피아노 처음 치면 처음 치자마자 잘 쳐요? 처음엔 틀려요? 틀리는 게 정상이에요. 자전거 타려면 자전거 처음에 넘어지는 게 정상이에요. 그러니까 안 넘어지는 게 정상이 아니고 넘어지는 게 정상이에요. 넘어지고 넘어지고 넘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에 타지는 거요. 그런 게 수행이다. 이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