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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_[깨어있음_3단훈련] 3_1 깨어 있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사단의 실천이 필요하다

Buddhastudy 2013. 3. 10. 19:15

출처 : 홍익학당

 

오늘 날이 좋네요. 날이 깨어있는 상태 같습니다. 혼탁하다가 한번 거쳐서 맑아져야 됩니다. . 우리 자주 나누는 말씀 같은데요. 아까도 조금 제가 얘기 드렸던 같은데. 우리가 깨어남을 얻고 알아차림을 얻어서 참나 상태로 계속 있더라도 참나 삼매가요. 참나에 대한 집중이 아주 깊을 때는 죄지을 생각도 나겠지만, 깨어있다 하더라도요. 참나가 우리 마음을 지배하는 정도가 50%정도 아래 정도가 되면요. 에고가 하자는 데로 갑니다. 나는 깨어있다고 생각하지만 에고를 막아요. 죄를 저지르는 알아차리고 있어요. 50% 이상이 되면은 죄지을 마음이 사라집니다. 여기서 뭐가 문제가 되느냐? 이걸 실험을 통해서 있습니다.

 

저도 실험을 통해서 연구한 거고요. 깨어났다는 분들이 이상한 짓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물어보면 모르고 인격적으로도 결함이 많습니다. 그걸 자기는 깨어있기 때문에 본인이 자각하기 힘들어져 버린 겁니다. 자기는 참나 상태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기한테 문제가 있다는 받아 들여요. 그렇게 얘기하는 네가 문제다라고 한다거나 이건 도인이 원래 그런 거다. 자긴 깨어 있는 같거든요. 그런 문제가 생기나 자꾸 분석해 보니까. 본인이 깨어있다고 하는 것도 맞는 얘기고. 그런데 우리가 에고가 분명히 무지와 아집으로 에고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맞는 얘기고.

 

그래서 제가 분석해보고 실험해 결과로는 참나가 50% 이상 강해지기 전에는 에고 장악은 여기 됩니다. 알아차릴 수는 있지만 에고를 장악할 정도는 못됩니다. 그런데 50% 이상 참나 상태 깨어있음이 강해지면 에고가 변해요. 신비가 바로 우리 참나가 전지전능하다는 이유입니다. 참나한테 우리가 전적으로 맡기기만 하면 참나는요. 인의예지. 사랑정의예절지혜를 절로 드러내요. 그냥 하는 거지 우리가 만드는 아니에요. 우리가 사랑의 예로 드는 측은지심이 불쌍하다 하는 우리 에고가 불쌍하다고 억지로 노력하는 아닙니다. 참나가 불쌍하다라고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거죠. 나와 남을 둘로 보지말라라는 기본 가르침에서 움직이는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남의 아픔에 같이 공감하라. 수호지심. 남하고 둘로 보지 않기 때문에 남이 당한 부당한 일이라도 내가 가슴 아파하고 바로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협객도 아닌데 내가 잠이 옵니다. 지금 성폭행 이런 시끄럽죠. 그런 때마다 가슴이 한번 이렇게 가슴속에서 피눈물이 나지 않으신가요? 이게 참나가 작용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참나한테 50%이상 힘을 실어줬더니 그게 전적으로 드러나 버려서 우리 에고를 바꿔 버립니다. 가만히 있게 만들고. 양심에 어긋난 짓을 하면 찜찜하게, 지독하게 찜찜하게 만들고 양심에 맞는 짓을 하면 너무나 자명하고 밝고 희열이 느껴지는 마음을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이게 사단을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는 뭐냐 하면 사단은 우리가 하는 아닙니다. 참나가 하는 거고요. 참나한테 우리가 힘을 실어줬을 믿고 맡겼을 깨어났을 참나는 우리 에고를 갖다가 경영합니다. 이게 제일 본질이 아닌데요. 에고는 사단분석을 해야 되고 우리는 사단 노트를 제가 쓰시라고 하느냐? 우리 참나가 50% 이상 드러나 있지 않죠. 번째. 그러니까 내가 깨어있다고 하지만 내가 에고의 놀음에 빠져있는데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걸 알아차리라고 써보시라고 하십니다. 내가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나와 남을 배려한 말인가라고 한번만 물어봐 주시면 에고가 은밀하게 작동하는 에고가 깜짝 놀랍니다. 정체가 드러나니까요.

 

은밀하게 마음속에서 내가 깨어있는 같지만 50% 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내려가요. 깨어있으면 인간인 이상 게이지가 내려가게 있습니다. 수시로 다시 알아차리심을 통해서 깨어있음이 안에서 활성화 돼서 작용하게 계속 깨어있음의 강도를 높여 주셔야 되요. 이런 얘기를 하느냐? 깨어있으면 끝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이런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깨어있음이 공부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얘기 듣고 저게 제대로 깨어나서 그렇지. 이런 하시는 분명히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분 속에 작동하는 에고를 본다는 겁니다. 본인이.

 

지적이나 하고 싶을까요? 깨어난 사람이? 이상한 쌍욕하면서 지적하고 싶을까요? 지적하는 것도 무례한 거에요. 인의예지에 맞는 짓을 하고 있는데 몰라요. 그분들마저도 사단분석을 해보시면요. 내가 지금 자명한가? 찜찜한가? 양심대로 하나? 욕심대로 하나? 하고 한번 돌아보시면 깜짝 놀랄만한 에고의 작용이 안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걸 알아차리시는 첫째고요. 번째는 내가 50% 이상 깨어있다. 그래서 나는 사단에 맞게 살고 있다. 그런데도 분석을 해야 되나?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요. 에고가 이해를 해야 되요. 에고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일시적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할까요? 참나는 원래 깨어나서 번도 어두워진 적이 없습니다. 참나 깨어나려고 수행하는 아닙니다. 에고가 깨어나려고 수행하는 겁니다.

 

참나가 우리 안에서 광명하다는 에고가 알려고 수행한 거기 때문에 수행이라는 에고를 성숙시키는 과정입니다. 이걸 정확히 아셔야 되요. 에고가 하나라도 알아야 이상한 덜합니다. 에고가 좋은 습관을 들여야만 좋은 재료를 갖추고 남들한테도 좋고 사회에도 좋고 자기한테도 좋은 짓을 합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들여요. 참나는 본래 태초부터 유능한 요리사였어요. 전지전능한. 그런데 요리가 지금 우리 삶에서 구현된 보면 이만큼 밖에 되지? 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첫째는 참나한테 힘을 실어 첫째고 번째는 힘을 실어줬는데 모양이냐? 에고가 가진 너무 없어서 그래요.

 

보시고 좋은 습관도 들이시고 하셔야지. 아무리 요리사가 요리 능력이 뛰어나도 재료가 상추랑 깻잎 주고 요리해보라 그러면 기가 막히게 맛있는 상추를 요리할지언정 남이 상추죠. 저거 뜯어먹고 하는 거야? 무슨 말이냐 하면 에고가 하나라도 참나를 이해해야 됩니다. 에고가 참나를 이해하는 과정이 사단분석이에요. 참나는 남을 도우라고 하냔 말입니다. 이걸 에고가 이해 하면은 계속 거부감이 생겨서 참나의 작용이 에고를 통해서 100% 드러나지 못합니다. 에고가 이해해 줘야 되요. 이해하는 불교에서 에고가 가진 가지 업장이 있습니다.

 

번뇌장 소지장. 소지장은 지적인 장이에요. 알아야 되는데 몰라서 생긴 장이에요. 무지라고 제가 부릅니다. 번뇌장. 아집 때문에 생긴 온갖 번뇌들을 번뇌의 장이라 그래요. 그래서 가지는 얘기 하하면 무지와 아집이 에고가 버려야 번뇌의 전부입니다. 모든 무지와 아집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나를 괴롭히는 성격들을 한번 분석해보십시오.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가족 중에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을 분석해보면 에고에 무지와 아집이 있습니다. 잘났다. 내가 최고다. 나를 위해서 살겠다는 그거 하나랑, 무지. 고정관념에 절어있습니다.

 

참나를 깨달은 분이 이게 사라질까요? 아까 말씀 드렸던 이유 때문이에요. 참나가 50% 이상 빛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 마음속에서. 은근한 깨어있음 가지고도 자기가 깨어났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에고를 알아차릴 정도로 깨어있지는 않아요. 깨어있음에서 오는 초연함과 고요함과 활홀감을 누릴 정도는 깨어있는데, 에고가 이상한 하고 있다는 정도는 깨어있지 못하다 그러면 그게 50% 아래라는 겁니다. 황홀하기는 하고 즐겁기는 한데 남한테는 민폐를 깨쳐요. 이런 모순적인 상태를 깨려면 에고가 이해를 해야 됩니다. 참나가 안에서 50% 이상 강하게 드러나야 되고. 번째. 번째는 에고가 모든 상황을 이해야 됩니다. 그래서 사단분석을 해야 됩니다.

 

내가 남이 힘들 안도와 잘못인지 정확히 에고가 이해를 못하면 에고는 짓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담배가 몸에 좋다. 그래도 여러분이 만약에요. 담배 연기가 우리 안에 들어가서 순간순간 몸의 혈관과 폐나 모든 장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낱낱이 있다면 아마 피고 싶은 마음 드실 겁니다. 그런데 우린 피워요. ? 우린 모르니까. 그렇죠. 알고 싶지도 않고 모르죠. 우리 몸에서 시시각각 무슨 짓을 일으키는지. 에고가 모르면 짓을 해요. 하고 하는데 막는 힘이 약합니다. 습관을 바꾸시고 싶으시면요. 번째로 개념을 바꾸셔야 되요. 좋은지 나쁜지 분명히 정하시고 나쁘고 뭐에 나쁜지를 정확히 아시지 않으시면 우린 그걸 합니다.

 

에고는 그렇게 굴러가게 있어요. 그래서 에고의 조건을 아신다면 사단분석이 필요하다는 아실 겁니다. 사단은 내가 하는 아닙니다. 참나가 하는 건데 참나가 안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를 낱낱이 분석해서 알아내고 에고가 그거에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낱낱이 분석해서 알아내실 사단이 강하게 드러나고 우리가 사단이 참나가 사단을 하는 우리가 도와줄 수가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지원해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런 실존적인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단합니다. 참나 깨치고 참나 대로만 사시라. 말이 답입니다. 이게 다인데 우리는 에고 차원에서 이런 분석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가?

 

참나대로 사는데 에고가 동안 우리가 지은 습관과 업장이 어마어마하게 강하게 막고 있는데 우리가 모릅니다. 그것을 조금씩 조금씩 빨리 내려놓기 위한 하나씩 이렇게 나날이 발전해 가야 되잖아요. 나날이 발전해 간다는 애기는 에고가 무지가 지혜로 바뀌고 아집이 자비로 바뀝니다. 그렇겠죠. 반대말이니까. 나를 놓게 되고 고정관념을 빨리빨리 버리면서 사물을 있은 그대로 읽어내게 되면요. 이렇게 참나가 사단을 작동하면요. 어마어마한 일을 있는 에고가 됩니다. 이렇게 같이 공부하시라고 저는 권해드리고 싶고요. 그래서 사단분석을 저희가 권합니다. 이거 하시고 깨어있음만 하시면요. 이런 소승적인 수행도 됩니다.

 

한참 깨어 있다가 너무 좋은 거에요. 그런데 사실 남의 사정을 사실은 보고 싶지는 않거든요. 이것도 에고데 에고고 생각을 못해요. 깨어있으니까 남들하곤 다르고 깨어있는 내가 깨어있으려면 산으로 가자. 정글로 가자. 남들 없는 곳으로 가자. 계속 이렇게 가는. 모든 곳에 은밀하게 에고가 작동한다는 아시겠습니까? 남은 됐고 나나 편하자 라는 에고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소승이 이기적이라고 먹냐 하면 수행을 해서도 아니고, 깨어있음을 몰라서도 아닌데. 은밀하게 작동하는 에고에 대해서 방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승사상들은 에고 아니냐? 라고 지적하는 겁니다. 그거 아집 아니냐? 일종의 변종 아니냐? 아집에.

 

세상에서 욕심 것도 아집이지만 나도 편하게 쉬겠다는 것도 아집이거든요. 아집 떼어 좋고 참나가 산으로 가자고 하더냐? 라고 한번 물어보십시오. 간단합니다. 내가 소승수행을 계속 하고 있어요. 소승인지도 몰라요. 깨어있고 깨어있음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곳을 떠나야겠다. 인간을 멀리해야겠다. 이게 너무 당연한 얘기 같은데. 그냥 인간이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나를 시끄럽게 하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지금 사람을 피해서 깨어있음을 누리고 싶은 나의 어떤 에고, 깨어있음을 즐기는 에고가 작동하는 아니냐? 라고 한번 물어보시면요. 사단분석을 해보시면 놀라운 진실이 나옵니다. 안에서.

 

~ 내가 이렇게 계속해서 나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구나. 하는, 그거 한번 내려놓으시고 나면요 그게 산이건 들이건 시장통이건 어디건 참나는 조금도 무거워 하지 않는다 라는 있습니다. 신은 우주를 굴리는데 조금도 무거워하지 않으시는데 나는 지금 가족 명도 이렇게 무거울까? 그럼 에고가 무거워하지 참나가 무거워하지 않는다는 아신다면 전혀 다른 답이 나오겠죠. 그래서 사단분석을 해보시면 깨어있음이 강하게 우리의 에고를 통해서 그러면 드러나게 되면 에고는 성숙한 에고가 되고 깨달은 에고가 됩니다. 참나와 함께 작동할 때는 에고는 이미 에고가 아니에요. 참나의 놀라운 그런 도구가 됩니다. 그런 즐기시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