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위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회사일이 바쁘다고 카페에 잘 못 들어 왔었습니다.
고전과 철학과 명상이 현실의 삶에 어떻게 활용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하여
피터팬님께 들은 말씀, 그동안 공부한 내용과 실제 적용하면서 느낀점들을 종합해서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자료의 내용은
1. 고전, 철학, 명상 이런 것들을 실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
2. 모든 종교/철학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측면은 무엇인가?
3. 본성은 무엇이고 그것을 따라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실제 활용하는 요령위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마음관리에 대한 요약본으로 보시면 됩니다.
특히 자신이 성취한 결과를 내려 놓는 대목은 참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부족한 자료이니 많은 지적을 부탁 드립니다.
본성에 따르는 행복한 삶의 비결
1. 인간의 심리구조
○ 각 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심리구조
구분 | 심(心) | |
본체 | 작용 | |
불교 | 불성, 진여심, 참나, 바다 | 생멸심, 혼, 파도 |
기독교 | 영(靈) | 혼(魂) |
유교 | 도심, 양심, 본성 | 인심, 기질 |
일반 | 본성, 양심 | 에고(생각/감정) |
○ 본성에 대한 표현들 : 알아차리는 자, 바라보는 자, 공적영지(空寂靈智), 참나, 영(靈), 알, ○,⊙
○ 양심과 에고의 본성
- 양심 : 사랑, 정의, 예절, 지혜(仁義禮智)
- 에고 : 이익을 좋아하고, 인정받고 싶음
2. 어떻게 본성을 인식할 것인가?
○ 생멸하는 의식(생각과 감정)을 넘어 텅 비었지만 항상 알아차리는 자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을 내려 놓아야 함. 그 자리는 생각을 넘어 항상 존재감만 성성함
○ 내려 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른다’이다. 어떤 방법이든지 상관은 없음.
○ 에고가 떠들어도 상관 없음. 에고를 조용하게 하려 하지 말고 오직 본성을 인식해야 함. 오직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그 자리를 인식하며 모든 생각과 행동을 하면 됨.
3. 솔성(率性, 본성을 따름)을 하는 요령(天命之爲性, 率性之爲道 중용1장)
○ 모든 생각과 행동을 할 때, 바라보는 그 자리를 인식하면서 행해야 함
○ 양심(본성)의 뜻에 부합되면 확답의 느낌이 들면서 행복하고 시원한 감정을 느낌. 확답만 잡아가면 밝아짐.
○ 인심(에고)에 집착해서 행동할 때는 왠지 찜찜한 느낌이 듬
○ 매사에 ‘모른다’는 소크라테스의 마음으로 이 순간 가장 올바른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해야 함. 사람의 지식/체험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화/회의 등이 중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오직 중(中), 최선을 잡아야 함(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允執厥中)
○ 일을 성취하면 에고는 순간 우쭐해 짐. 이 순간,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以無所得故)'를 떠올리며 회향(回向)을 함. ‘하느님 덕분에’, ‘참나 덕분에’하고 바로 내려 놓음. 그러면 행복감이 흐름.
○ 왜 나는 명상을 하면 잘 되는데 삶에서는 잘 안 되지라는 생각이 떠오르면 내외를 분별하고 있는 상태임. 에고보다 참나에 집중만 해주면 해결 됨.
○ 생각을 없애려고 해서는 안 됨. 에고는 생각하는 것이 주된 기능. 다만 그 생각이 본성에 비추어 올바르기만 하면 그대로 도道임.
○ 주기적 생각 초기화로 마음을 자주 텅 비워야 함. 자기만의 키워드나 행동을 통해 가능.(하느님, 주인공, 모른다, 걷기, 마라톤, 취미생활 등등)
○ 억지로 착하려고 해서는 안 됨.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사랑/정의/예절/지혜가 나와야 함(노자)
○ 자신의 행동을 영화처럼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멋지면 ‘도道’이고, 짜치면 놓친 것임.
○ 놓쳤다고 자책하지 말고, 오직 이순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면 됨
4. 대승과 소승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 소승 : 지(止, 생각을 멈추고 공空에 머무름)에만 집착을 하는 것
○ 대승 : 지(止) 와 관(觀, 성찰)을 모두 활용하여 내외의 분별 없이, 순간 순간 중(中)을 잡으며 본성의 뜻에 따라 모두의 이익(인,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것
○ 수행자의 마음속에 나는 남보다 철학을 알고, 종교를 알고, 예술을 안다는 생각이 있다면 대승이 아님. 오직 모르는 마음으로 본성의 뜻에 따라 사랑(仁→人+=)을 행할 뿐
5. 본성에 따라 살아갈 때 나오는 말
○ 운문선사 – ‘날마다 좋은 날’ (日日是好日)
○ 바울 – 범사에 감사한다
6. 무위(無爲)에 대하여
○ 무위(無爲)란 열심히 노력하고 성취하고 그 성취한 결과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임
○ 무위는 그냥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님
○ 노자 2장 - 성인은 함이 없음을 바탕으로 일을 처리하며, 드러내지 않고 행하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을 만들면서도 말하지 않고, 성장시키면서도 소유하지 않는다. 행동하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공(功, Mission)을 완성시키면서도 거기에 안주 하지 않으니, 대저 오직 안주하지 않음에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 바가바드 기타 - 수행보다는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낫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보다는 명상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러나 명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진심으로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버리는 것에 의해 마음의 평화가 얻어지기 때문이다.
○ 금강경 - 수보리님,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불제자들이 도달하는 최고의 계제)의 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수보리님이 답하였습니다.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실로 법이 없음을 깨달은 이를 아라한이라 이름 하기 때문입니다. /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나는 아라한의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면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7. 결어
○ “마음이 가난한 자 하늘나라가 그의 것이다”는 일어난 파도만 나라는 집착(我相)을 내려놓고, 자신이 원래 바다라는 것을 아는 것. 온 우주가 ‘나’이니 ‘대아大我’임
○ 생겨나지도 죽지도 않는 영원한 생명인 그 자리를 인식할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함
○ 성현의 경전은 같은 곳을 관람한 여행기. 또는 매뉴얼. 그 자리를 느끼지 않고는 교조화된 단어에 묶일 수 밖에 없음. 체험과 개념이 함께 필요함
○ 텅빈 본성은 누구나 똑같이 가진 것이기에 마음을 닦는 다는 것은 결국 에고의 수준을 올리는 것일 뿐(志學-而立-不惑-耳順-從心). 에고를 너무 누르면 터질 우려가 있음. 에고를 달래며 이해시켜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 끝이 없는 길로 우리는 영원히 배우는 사람(學人)일 따름.
○ 본성은 행복(常樂我淨) 그 자체 이기에 진정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항상 범사에 감사할 따름
○ 내가 있는 곳이 속세든 산속이든 어디든 주인공(양심)으로 깨어 있으면(隨處作主) 내가 서있는 그곳이 어디든 행복할 뿐(立處皆眞)
첨 부 : 관련문헌 1부. 끝.
본성을 따르는 것에 대한 고전 참조문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본성은 서로 가까우나,
습관은 차이가 난다.
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
[논어 양화편]
심체는 하늘이 명한 본성으로서 원래 선도 없고 악도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습관화된 마음(習心)이 있어서 의념에 선악이 있음을 보게 된다.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 이것은 바로 그 성체(性體)를 회복하는 공부이다. 만약 (의념에) 원래 선악이 없다면 공부 또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전덕홍)
[왕양명의 전습록, 정인재.한정길 역, 청계, 2007. 807p]
“양지(良知), 양능(良能)”은 원래 상실할 수가 없다. 옛날에 습관화된 마음이 아직 제거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마음을 보존하기를 익숙하게 해야 한다. 익숙히 하는 것이 오래되면 옛날의 습관을 떨쳐버릴 수 있다. 이 이치는 지극히 간단하나, 오로지 그것을 능히 지킬 수 없을까 걱정일 뿐이다. 이미 그것을 체득하여 즐거울 수 있다면 또한 지킬 수 없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명도의 식인편(識仁編), 윤홍식 역]
외적인 행동을 하기에 앞서 잠깐이라도 이 내적 시선으로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행동을 하는 중간 중간에도 또 행동을 끝마칠 때에도 그래야 한다. 이런 습관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을 때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 그 습관은 힘들게 얻어지지만, 일단 얻고 나면 모든 것이 즐겁게 이루어질 것이다.
[하느님의 현존연습, 니콜라 에르망, 최애리 역, 가톨릭출판사]
사람에게는 주재하는 하나의 마음이 있으니, 항상 불러서 일깨워야 한다.
다만 자주 마음을 일깨울 뿐이니, 오래 되면 저절로 익숙해진다.
[주자어류, 주자, 윤홍식 역]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무식한 사람이 나에게 물으면, 마음을 텅텅빈 것 같게 하고, 나는 그 두 끝을 두들기는 것을 다할 뿐이다."
[논어 자한편]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법문이 비록 여러 문이 있으나 지(止)와 관(觀) 두 문을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능히 일체 법을 융섭하기 때문이다. <범망경보살계본사기>139
[원효어록, 이영일 편, 불교춘추사,1999.]
일심(一心)의 法을 의지하여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첫째는 있는 그대로의 마음의 문(心眞如門)이요,
둘째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의 문(心生滅門, 생각/감정)이라. 이 두 가지 문이 모든 법을 담고 있으니 이 두 문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까닭이라. 참마음(心眞如)은 곧 하나의 본성이 만법을 다 담고 있어 진리의 본체가 되는 것으로, 본성은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대승기신론]
'윤홍식 > 윤홍식_깨어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홍식_[깨어있음_3단훈련] 3_2 깨어 있음과 사단 확충 (0) | 2013.03.10 |
---|---|
윤홍식_[깨어있음_3단훈련] 3_1 깨어 있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사단의 실천이 필요하다 (0) | 2013.03.10 |
윤홍식_[깨어있음_2단훈련] 2_6 에고 힘 빼기 (0) | 2013.03.03 |
윤홍식_[깨어있음_2단훈련] 2_5 힘 빼고 흐르기 (0) | 2013.03.03 |
윤홍식_[깨어있음_2단훈련] 2_4 평상심이 도다 (0) | 2013.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