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485회 어머니, 감사합니다.

Buddhastudy 2013. 7. 15. 22:14
출처 YouTube

 

우리가 어떤 사건,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어머니가 시킨 심부름을 가다가.  기름을 사오라.” 하는 그런 심부름을 갔다 오다가 넘어져서 기름을 쏟아버렸어. 그러니까 어떤 아이는 엄마, 넘어져서 기름 반이나 쏟아버렸어.” 이런 아이도 있고, 또 어떤 아이는 엄마, 넘어져서 기름을 쏟았는데 그래도 절반이 남았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요. 똑같이 절반의 기름이 남았는데, 잃어버린 절반 때문에 우는 사람도 있고, 남은 절반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이오. 똑같은 절반인데 어느 쪽을 보느냐? 이런 얘기요.

 

또 우리 성가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어떤 노파가 딸이 둘 있는데, 시집을 보냈는데, 딸 하나는 짚신장수한테 시집을 가고, 딸 하는 나막신 장수한테 시집을 갔다. 짚신은 맑을 때 신고, 나막신은 비올 때 신는단 말이오. 그런데 비만 오면 짚신장수한테 시집간 딸을 생각하면서 운다는 거요.오늘 장사 안 될 거라고. 날만 맑으면 이젠 나막신 장수한테 시집간 딸을 생각하며 운다는 거요. 장사 안 될 거라고. 그러니까 비가와도 울고 맑아도 우는 거요.

 

그래서 이렇게 스님께 상담을 하니까. 그 스님이 하는 말이 비 오는 날은 나막신장수한테 시집간 딸을 생각하고, 맑은 날은 짚신장수한테 시집간 딸을 생각하라.” 그랬다는 거요. 그러니까 비 오는 날은 나막신 생각하니까 웃을 일이고, 맑은 날은 짚신 생각하니까 웃을 일이고. 그러니까 똑같은 일인데도 이렇게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본인이 질문한 것을 가지고 보면 어머니가 나를 지우려고 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부모가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이렇게 섭섭할 수가 있는데,

 

어머니가 나를 지우려고 하다가. 즉 애들이 넷이나 되니까 지우려고 하다가 안 지웠다. 이렇게 한번 보면 어떨까? 지우려고 했는데, 지울 수밖에 없었는데, 딸이 셋이나 되니까 하나 지워야 되겠지? 보통 생각하면, 그지? 그래서 지우려고 했는데, 병원까지 갔는데, 차마 그래도 내 자식인데 안지우고 돌아왔다 이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자기 자식이 여러 가지 형편을 보면 지워야 되는데, 그래도 내 자식인데 라는 그 사랑과 애정 때문에 안지우고 돌아왔다. 그래서 어머니가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어머니니까 안지우고 돌아왔지, 딴 사람 같았으면 어떻겠어요? 지웠을 거 아니오.

 

그런데 내 어머니니까 그래도 안지우고 돌아온 거요. 이렇게 지우려고 했다는 관점을 볼 거냐? 안지우고 돌아왔다는 거를 볼 거냐? 그런데 왜 지우려고 했다는 것만 자꾸 보느냐 이거야? 지웠으면 자기 이 세상에 없었을 거 아니야? 그지? 문제는 어쨌든 결과적으로 지웠다? 안 지웠다?안 지웠다. 그러니까 어머니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생활형편이 어려운데, 저를 낳을 조건이 안됐는데도, 이렇게 낳아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성질 같았으면 확 가서 지워버렸을지도 몰라. 그래도 아이고 이렇게 감사합니다.” 이게 첫째 관점이오.

 

그래서 어머니께 감사하다. 안 지워진 거에 감사하다는 거고. 두 번째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여러 가지 장애가 있잖아. 그죠? 그 장애를 뛰어넘고 여기 온단 말이오. 그런데 장애라는 것은 못 뛰어넘고 그게 주저앉으면 그것이 큰 인생의 불행이지만, 장애를 뛰어넘어버리면 그 장애란 어때요? 나를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거란 말이오. 그런데 나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벌써 죽을 위험을 한번 넘겼지? 그지? 그러니까 오래 살겠어? 안 살겠어? 오래 살겠지? 뱃속에서 벌써 장애를 뛰어넘었단 말이오. 그러니까 액땜을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뱃속에 있을 때 아주 어릴 때부터 이미 죽을 고비를 넘겼어. 그러기 때문에 나는 오래 살 거야. 그래서 건강한 거요. 아니오. 정말이오. 보통 이렇게 지워버리려다가 막내 낳았는데, 대부분 그런 애가 잘못돼요? 잘돼요? 잘 되요. 이게 죽을 고비를 벌써 넘기고 온갖 액땜을 하고 나왔기 때문에 그래요. 질문하는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내 주위에도 그런 몇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다 괜찮아요. 다 지워버리려고 하다가 그냥 어떤 사람은 약까지 먹었는데도 안 죽고 낳았는데, 그 집에서 제일 효자고 예를 들면 제일 잘되고, 제일 건강하고 이래요. 그러니까 좋은 점이에요. 그게. 으흠.

 

한번 벌써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사선을 뚫고 나왔잖아. 그렇게. ~ 나는 한번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딴 사람보다는 내가 벌써 그 만큼 강인하다. 이거야. 그래서 이렇게 당당한 거요. 그러니까 겁을 내서 두려워하는 거는 그 죽이려고 했을 때 생긴 심리현상이 남아서 그렇고. 거꾸로 당당한 거는 그것을 넘었기 때문에 또 당당한 거요. 이중성을 가지고 있어.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죽을 고비에 처해서 그걸 뛰어넘기 전에 죽을 고비에 처했을 때 생긴 두려움이 남아있기 때문에 항상 매사에 망설이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마음은 그런 데도 마음은 당당한 거는 그걸 넘었기 때문에 그래. 그 고비를 넘겨서 나왔기 때문에 당당한 거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딴 사람보다 더 망설이는 게 있고, 일단 하게 되면 딴 사람보다 더 당당하게 열심히 하는 거요. 그래서 그 앞으로는 이제 그런 마음이 들 때 아파트에 사람이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첫 마음이 일어날 때 만나도 괜찮아.” 이렇게. 저절로는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마음이 일어날 때 나는 그것을 뛰어넘은 마음을 내요. 뭐라고? “만나도 괜찮아.” 이렇게. 어떤 일이든지. .

 

두려움이 일어나는 거는 그 뱃속에 있을 때 무의식으로 생긴 거란 말이오. 그걸 내가 지금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러나 나는 실제로 그것을 극복하고 이 세상에 나왔잖아. 그러니까 항상 만나지 말았으면 할 때 마음으로 만나도 괜찮아.” 안했으면 할 때 , 할 거야.” 늘 거기에 대해서 한마음을 더 내서 나가면 문제가 없어요. 두 가지. 하나는 안지우고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어머니에 대한 인사. 그다음에 두 번째는 나는 이미 가장 어릴 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나는 강인하고 건강하다.” 이런 마음을 내도록. “어머니 감사합니다. 나를 이 세상에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그렇게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