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목스님_유나방송

정목스님_나무아래 앉아서 제10회

Buddhastudy 2014. 9. 28. 18:54

" altHtml=""> 출처: 불교TV

 

 

 

자신이 강물 위를 표류하는

나뭇조각처럼 살고 있는지

 

바람이 부는 대로

어디든지 마른 낙엽처럼 살고 있는지

 

아니면 한 개체로서

분명한 삶의 방향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자신의 삶이

자신의 손 안에 있는지

 

아니면 감정이 당신을

이리저리 바람처럼

끌고 다니는지

 

자신의 삶에 관해

잘 관찰하고 숙고해보라.

 

안녕하세요. 정목입니다. 감정이 일어나는 대로 습관처럼 반응하고 살아가는 것은 바람이 부는 대로 나뒹구는 낙엽과 같고, 물위를 표류하는 나무 조각과 같은 삶일 뿐이다. 참으로 절묘한 비유입니다. 깨어있는 의식으로 내가 선택한 목적지라야 욕망의 불길을 끌 수도 있을 것이고, 타는 듯 한 갈증을 삭히는 니르바나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몇 백 년에 지어진 이 짧은 사랑의 곡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그리고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사랑의 기쁨은 잠깐이고 사랑의 슬픔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이어지리라.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랑이 문제인 거 같습니다. 사랑으로 인해서 그토록 고통 받으면서 우린 또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게 인생이죠? 어떠세요? 고통 받으면서도 사랑을 갈망하는데 사랑이 변질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여러분은 사랑이 변질되는 이유에 대해서 한번 고민하고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우리 왜? 상대방에게나 자기 자신에게 지금의 그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 되기를 원하잖아요. 저는 그런 게 사랑을 변질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처음 만났을 때는 그 사람의 모습이 막~ 최상인거에요. 그런데 좀 사귀다보니까 그 사람의 단점도 보이고, 험도 보이고, 그렇게 허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만 그 사람 모습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여성을 봤을 때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하고 상냥하고, 그런 여성이었으면 좋겠다. 또 남자를 봤을 때 좀 담대하고 그리고 그릇, 통이 크고 뭔가 남자가 잘생기고 늠름하고 그러면 좋겠다든지요.

 

자녀들에게는 좀 더 능력 있고 모범적이고 말 잘 듣고 착실한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든지. 이렇게 우리는 존재를 놓고 그 사람의 지금 모습이 아닌 내가 원하는 어떤 형식에 조각 작품이기를 바라는 거예요. 내가 만든 조각 작품이기를 바라지만, 실제 살아보면 우리가 사람이라는 게 내가 뜻하는 대로 원하는 데로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일화가 있더라고요. 일본에서는 정원을 만들 땐 정원의 한쪽 귀퉁이에 민들레를 몇 송이 심는데요. 그러니까 손질해주지 않아도 아무렇게나 자기혼자 피고 지는 그 민들레가 몇 송이 한쪽 구석에 있음으로서 그 정원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거죠.

 

이란에서는 아주 문양이 아름다운 양탄자가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그 문양이 아름답게 짜진 그 양탄자를 짜다가 어느 위치쯤에 굵은 실 올을 하나 특~ 뽑는 가 봐요. 어떤 식으로든지 흠을 하나 남긴답니다. 이걸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그런데요. 그런데 그 흠하나가 오히려 그 양탄자의 가치를 더 높여주고, 자기가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오히려 자부심을 갖게 해 주고 그런다고 그래요. 또 인디언들의 경우는 목걸이를 만들 때 구슬이 좀 망가진 거 있잖아요. 그 망가진 구슬 하나를 꼭 넣어서 목걸이를 만든답니다. 그걸 영혼의 구슬이라고 그런데요.

 

왜 우린 이렇게 완벽한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어디 엔가에 빈 구석을 하나 만들어 놓고, 거기에 더 열광하고, 거기에 더 가치를 두고, 그것이 더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게 될까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구슬이 하나도 흠이 없어요. 양탄자 흠이 없어요. 정원? 반듯해요. 이렇게 완벽한 것은 사실 집중도 안 되고 관심도 안가요. 그것처럼 우리 인간에게도 사람마다 다 단점이 있고 흠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흠이나 단점은 나쁜 게 아니거든요. 그곳에 더 주위 집중해서 관심을 가짐으로서 그 부분을 더욱더 정진하고 노력하게 되는 거죠. 이미 우리가 다 완벽하다면 뭣 때문에 정진하고 뭣 때문에 노력하겠습니까?

 

여러분 이 가을에 혹시 사랑에 빠진 분이 계신가요? 방금 들으신 노래처럼 사랑의 기쁨은 잠깐이고, 사랑의 슬픔은 평생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면서도 사랑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온전한 사랑, 온전한 사랑을 체험할 때까지, 우리는 또 사랑하고 상처받고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겠지요? 완전한 사랑, 그것은 결함까지도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수용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그 사랑은 완전한 것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세상 저 높이, 아주 높이, 하늘에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작은 별, 나는 네가 너무 궁금해. , 이런 노래이지요. 반짝반짝 작은 별, 자주 하늘을 좀 올려다보시는지요. 올 가을은 하늘바라보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특히 가을에서 겨울로 갈 때, 하늘이 쨍하고 깨질 듯이 청명해지잖아요. 그럴 때 하늘을 좀 자주 올려다보십시오. 그리고 좀 속이 답답하고, 뭔가 자꾸 작은 생각에 몰입이 될 때, 작은 생각에 함몰되어져서 다른 것을 두루 볼 수 없을 때, 하늘을 이렇게 자주 올려다보세요.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고, “, 내 존재가 이렇게 먼지처럼 작은 것에 불과한 게 아니구나.” 그런 걸 깨달을 수 있을 거예요.

 

바랑속의 책 한권, 오늘도 꺼내보겠습니다. 가을에 책읽기 좋은 계절인데 요즘 어떤 책을 가까이 하고 계시는지요. 사람마다 관심이 가는 분야가 다 다를 거예요. 어떤 사람은 건강에 관심이 있다면 의학서적을 볼 수도 있겠고, 또 돈벌이에 관심이 있다면 아무래도 경제, 또는 뭐 재테크에 대한 거, 부동산에 대한 거, 이런 거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죠? 불자들의 경우는 불교를 만난 이후 책을 보는 패턴도 많이 바뀌는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경전이나 조사스님들의 어록이나, 불교의 관련된 어떤 것들을 가까이함으로서 마음의 큰 양식을 가지는 분들이 많죠. 그 불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불교의 깊이 있는 책들을 듣고, 보고하면서 다른 것에 대한 관심사는 뚝뚝 떨어져 나가는 거 같습니다.

 

세속적인 것들에 매달리다보면 그걸 통해서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겠지만, 그걸 통해서 크게 얻은 게 없는 경우가 있는 거죠. 오늘은 바랑속의 책, 무엇을 꺼낼까? 만지작 만지작 고민하다가 고른 책입니다. 달라이라마 & 빅터 첸 용서이죠? 여기서 한편 읽어드리겠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분노와 미움,

적대적인 감정을 가진 채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해도

그는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죽은 사람을 상대로

싸움과 살인을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인간존재는 모두 유한하며

결국 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죽는가?

병으로 사망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어쨌든 우리가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사라질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해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 나간다면

나 자신의 평화만 깨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를 용서한다면

내 마음은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상처 입힌 누군가가 있기에

우리는 용서를 베풀 기회를 얻는다.

 

용서는 가장 큰 마음의 수행이다.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 해방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선물인 것이다.

 

..

 

내가 과연 다른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모두 사과일 뿐이에요. 다른 뭔가를 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은 우리들의 모습인 걸요. , 이런 노랫말이 담긴 거라 그래요. 가사 좀 불교적이기도 하죠? 용서. 모든 걸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세상의 평화를 더하는 일이기도 한데, 그렇게 되는 날, 아마도 이 사바세계는 그 자체가 그대로 정토가 되겠지요?

 

..

 

정말 시간이 빨리 흐르네요. 내 마음의 성소 발원문 올리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고귀한 발원, 공양 올리겠습니다.

 

모든 중생들을 위해

지금까지 무수한 붓다들께서 세상에 출현하셨지만,

붓다들이 제 곁에 있다 해도

제 눈이 어둡고 어리석어 아직도 부처님들의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비록 오늘은 건강하고 먹을 것도 있고 큰 어려움이 없다 해도

삶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이 몸은 이 생에서 잠시 빌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선업을 지을 수 있는 인연과 기도할 수 있는 인연을 만났을 때에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부터 이 몸을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나룻배로 여기고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 저는 이렇게 발원합니다.

 

몸과 마음 정신 어디에 함께 있건, 우리의 모든 고통이

불성의 밝고 투명한 빛 속에 녹아들게 하소서

전생에서 얻었던 모든 기쁨과 지혜들은 소중히 간직하고

전생에서 느꼈던 모든 슬픔과 두려움, 질병과 부정적인 생각들은

불성의 밝은 빛 속에 치유되게 하소서.

 

이번 생에서 얻었던 모든 기쁨과 지혜들은 소중히 간직하고

슬픔과 두려움, 질병과 부정적인 생각들은

불성의 밝은 빛 속에 치유되게 하소서

 

제가 무엇을 하든지 결코 남들에게 해가 되지 말고

누구든지 저를 만날 때마다 좋은 이익 얻게 되소서.

 

사람들이 저에게 화를 내든 칭찬을 하든

그것이 곧 그들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원인이 되고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저를 비난하며 해치거나 모욕을 주더라도

그것이 악업이 되어 고통 받지 않기 바라며

오히려 그로 인해 깨달음 얻으소서.

 

전 생애를 통해 나와 인연 지은 모든 존재들에게

부족했던 지난날을 용서바랍니다.

 

부족했던 지난 날 용서 바라는 한주 되셨으면 합니다. 저는 다음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당신과 내 안의 신성한 빛, 거룩한 불성에 경배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