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목스님_유나방송

정목스님_나무아래 앉아서 제9회

Buddhastudy 2014. 9. 21. 20:03

"> 출처: 불교TV

 

 

 

뒤주에 담기는 쌀의 높이가

삶의 높이였다.

 

어린 내 키만 한 뒤주의 크기가

우리 집 살림의 크기였다.

 

거기 채워 넣던

쌀아, 보리야, 밀아.

내 몸무게를 재던 척도

집을 사던 단위

물가를 따지던 기준.

 

대학을 보내던 스무 살짜리 눈물...

내 몸은 저울이 되고

추가 달리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정목입니다. 가난했던 날을 추억해보는 고운기 시인의 마음의 눈금이라는 시로 문을 열었습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미국인들이 40년 동안 사용했던 양이 그 옛날 전 지구의 사람들이 4천년동안 썼던 물자의 양과 같았다라는 통계가 있었다 그래요. 어느새 뒤주크기 만 한던 우리의 살림살이가, 막대한 소비의 물결에 휩쓸려서 쓰고 버리는 것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사람의 마음은 텅 빈 뒤주 속처럼 그렇게 갈수록 궁핍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저울에 올리고 추라도 달아보았으면 합니다. 마음 살림살이를 한번쯤 돌아보고 또 살림살이를 점검해 보아야 할 11월이 시작되었습니다.

 

..

 

마지막의 프릇 소리를 휙~ 하면서 마치는 소리가 매력적이죠? 특징이 있죠. 영혼을 새롭게 충전하는 큰 강의 이름이라 그래요. 유바라는 것이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도시에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굉장히 불빛이 밝잖아요. 제가 지금 방송하고 있는 이 스튜디어 안에만 해도 사실 인공의 조명이 굉장히 많습니다. 자연의 채광은 전혀 없죠. 그래서 인디언들은 도시인들에게 그런 말을 해요. 도시에 사는 너희들은 빛이 너무 밝다. 너무 강렬하다는 거죠. 밤하늘의 그 찬란한 밤의 별빛이 너희들은 겁이 나느냐? 그리고 너희들의 음악소리를 들어보면 지나치게 소란하고 소리가 너무 크다. 너희들은 바람이 속삭이는 그런 소리가 두려우냐?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마치 선사께서 제자에게 수행자에게 네 마음자리가 어떠하냐? ”라고 질문하는 것처럼 말이죠. “네 마음이 너무 바깥경계에 나가있는 거 아니냐? 그러니 내면으로 데리고 오렴.” 이렇게 묻는 거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인디언들의 플릇연주를 듣고 있다보면 선불교하고 굉장히 맞닿아있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깊고 웅숭깊고 그러면서 내면을 비추여주고 조명하는 그런 분위기의 음악들이라서 수용하는 것도 있고, 또 받아들이는 그런 음이라고 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합니다만 아마 BTN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이 시간에 들려드리는 음악들, 한곡한곡 들으면서 다 아름답다 말씀 많이 하시는데, 특히 아메리카 인디언들이나 캘틱 음악들, 이런게 정서적으로 또 영혼적으로 우리에게 와 닿는 게 굉장히 있을 것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문득 이런 일화가 하나 떠오르네요. 실제로 콜롬비아에서 있었던 일화인데요, 인디언들이 나무를 하나 베는 거예요. 나무를 베는 데 그 자르는 도구자체가 좀 형편없었겠죠. 그런데 유럽에서 이주해온 백인들이 보니까 참 답답한 거예요. 이게. 그냥 좋은 그 도끼로 툭 자르면 될 일을, 오늘도 자르고, 내일도 자르고, 모래도 자르고, 나무 한 둥치를 얻기 위해서 이틀 3일씩 걸리는 걸 보면서 그 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 선물을 줍니다. 단번에 잘라지는 도끼하나를 선물을 해요. 그리고 이제 한 1년쯤 지났어요. 이제 이 사람들이 이 도구를 가지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다음해에 가봤다고 그래요.

 

갔더니 반색을 하면서 잘 왔다고 햐~ 얼싸 춤을 추면서 당신들 덕택에 이 도구를 사용하는 바람에 우리에게는 더 많은 휴식시간이 생겼다. 그게 말할 수 없이 고맙다. 이러는 거예요. 백인들 입장에서 볼 때는 좀, 무슨 말인가 오히려 깜짝 놀랐죠. 그렇게 좋은 도끼를 주면 그냥 매일 나무를 잘라서 1년 치라도 수북이 쌓아놓고 말이에요. 비축해두는 거죠. 그리고 또 남아도는 것이 있다면 다른 부족에게 물물교환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걸 전혀 하지 않고 그 도끼로 필요한 만큼만 잘라서 쓰는 거예요. 그래서 남는 시간은 오히려 가족을 돌보거나 신에게 기도하는 시간을 바친 거죠.

 

그걸 보고 백인들은 더욱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놀라워할 일도 아닌 거죠.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이 우리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본성이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모자랄까봐, 결핍감 때문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사실 현대 사회는 우울증, 불면증 이런 신경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자적으로 아무리 풍요로워줬지만, 마음은 궁핍해지고, 그래서 신경정신과는 갈수록 늘어나고, 상담 받는 사람들은 많지만,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경우는 오히려 그들은 물자는 풍족하지 않아요. 꼭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거죠. 자연에서 채취할 때도 내가 오늘 꼭 필요한 양만 채취를 해요.

 

그러다보니까 그들에게는 정신병이라는 자체가 있을 수 없고, 병원도 필요로 하지 않겠죠. 어떻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제 자신이나, 또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이나, 무엇인가가 모자랄까봐 미래를 걱정하느라고 오늘 이 순간을 허덕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급하고 빨리 달려가느라 지금 내게 이 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벌써 45년이 되었지만 45년의 세월 뒤에 또 이렇게 후대의 누군가가 그녀를 추모하며 추억하며 좀 다른 풍으로 노래를 부르는 멋. 이게 또 음악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싶어요. 깜깜한 어둠이 내린다 해도 내 삶의 그 어떤 고통이 온다 해도 내 곁에 그대 한 사람만 있다면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의 찬가. 언제 들어도 멋진 노래이지요?

 

나무아래 앉아서 이 시간 정말 BTN의 많은 시청자 여러분께서 아껴주고 사랑하고 열렬하게 응원해주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듣고 또 듣고 하신다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 걸 보니까, 아마도 이제 중독성의 걸린 분들이 많지 않을까, 그런데 세상에는요, 중독증세에 거릴 수 있는 종류가 참 많은데, 좋은 중독증세가 있어요.

 

기도의 중독되는 것 좋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해요라고 하는 말 하는 거 중독되는 거 좋습니다. 또 누군가에게 미소와 웃음을 보내주는 것 중독되는 거 좋죠. 기왕이면 이런 중독 좀 많이 걸렸으면 좋겠어요. BTN에서 보내드리는 나무아래 앉아서도 더 많은 분들이 중독에 걸려서 실제 여러분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저나 또, BTN관계자들은 더 이상 바랄 게 없이 감사한 일이죠. 이 시간 코너 중에 자기가 좋아하는 그런 코너가 있는 거 같아요. 시청자분들이 볼 때. 그런데 특히 바랑속의 책 한 권. 스님들도 좋아하시더라고요. 생각이 나는데, 얼마 전에 대구에 계시는 대구 대원사라는 곳에 현정스님이 우리 문중스님이신데, 전화가 왔어요.

 

봐라봐라. 정목스님아. 바랑 속에 책 한 권 있제. 서산대사의 해탈시도 엄청 좋더라. 그런데 어머니하고 나무. 그거 뭐제? ~~ 내용 좋더라. 그것 좀 나한테 보내 줄 수 있나? 내가 그거 법문할 때 신도들한테 일러줄란다. 그래서 프린트를 해서 보내드렸는데, 그렇게 그냥 듣고 스쳐지나 가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의 내용을 새기고, 내가 좋은 걸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하고, 그 마음들이 느껴져서 더욱 더 이 시간에 잘 만들어야 겠다. 이 프로그램을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 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바랑속의 책 한권. 이 봉희님의 내 마음을 만지다. 라는 책에서 슬퍼하는 것을 허락하기. 함께 읽어볼게요.

 

누구나 가슴속에 쓸어도 쓸어도 치워지지 않는

굳어버린 덩어리 하나쯤 떠안고 살아갑니다.

 

이미 죽은 색깔을 하고 있는 과거의 덩어리지만,

없다고 외면하고 잊었다고 눈감아도

문만 열면 꼭 발끝에 차이는 돌부리처럼

가슴 안에 남아있습니다.

 

상처는 그 깊이와 크기마다 새살이 나는데도

그 굳은 딱지가 풀어지는데도 각기 다른 시간이 걸립니다.

 

그 덩어리가 무엇이든 간에

쏟아지는 장맛비에 응어리가 풀려 떠내려가듯

그렇게 기다려야 하는데,

우리는 상처의 딱지가 채 굳기도 전에

그리고 상처에서 새살이 돋기도 전에

이내 그 딱지를 뜯어버리고 싶어 합니다.

 

없던 일처럼 억지로 잊으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굳은 아픔과 기억을 용감하게 끌어안고

조금씩 녹여내야 합니다.

 

그 아픔을 녹여내는 장맛비는

고통 속에 갇힌 나를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는

스스로에 대한 따뜻한 연민과 사랑의 눈물일지 모릅니다.

 

슬픔은 곧 치유의 감정입니다.

브레드쇼는 만일 슬퍼하는 것을 허락받는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치유된다고 말합니다.

 

고통의 분출과 표현은

그것이 분노의 외침이든 장맛비 같은 통곡이든

부끄러운 것도 나약함의 표시도 아닙니다.

 

눈물이 죽은이를 살려내거나

과거를 되돌려 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함께 죽어있는 나를 녹이는 일입니다.

 

가슴 한 구석에 돌부리처럼 남아있는 단단한 덩어리와

그 속에 갇혀 혼자 두려워하고 있는

과거의 나를 보듬으며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장맛비 같은 눈물로 흠뻑 다독여 녹여주십시오.

 

- 슬퍼하는 것을 허락하기/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

 

..

 

내 마음의 성소, 이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으로 참 좋다는 분들이 계셨지요. 그래요 하루에 한번쯤 우리가 자신을 위한 또는 세상을 향한 기도나 발원문을 올리는 시간, 꼭 계획에 들어 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직업을 가졌건 무슨 일을 하시건, 하루에 한번쯤은 조용히 자신 앞에 마주앉아 기도할 수 있는 시간, 불자라면 발원을 올릴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내 마음의 성소라는 코너를 통해 발원문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10가지 착한 일에 대해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함께 공양 올려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존재는 열 가지 선을 이루기도 하고 악을 이루기도 한다

 

그들 중 셋은

몸에 의존하며, 넷은 입에 의존하며, 셋은 생각에 의존한다.

 

몸에 의존하는 악의 세 가지는

죽이는 것, 훔치는 것 남의 순결을 빼앗은 것이다.

 

입에 의존하는 네 가지는

남을 비방하는 것, 거칠게 악담하는 것,

거짓말 하는 것, 아첨하는 것이다

 

생각에 의존하는 세 가지는

욕망에 의한 질투, 분노, 어리석음이다.

 

이 모든 것은 성스러운 길에 어긋나는 것이니

그것들을 악한 일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면

곧 열 가지 착한 일이 될 것이다.

 

열 가지 착한 일이란,

1. 산 생명을 보살피고 보호하는 자비심

2. 가진 것을 나누고 베푸는 것

3. 청정하게 사는 삶

4. 다른 사람들과 돌아가신 분들에게 내 선행의 공덕을 돌리는 것

5. 자신의 좋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참여시키는 것

6. 다른 이의 훌륭한 선행을 같이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

7. 칭찬받을 만한 사람을 칭찬하는 것

8. 좋은 법문을 다른 이에게 나누는 것

9. 좋은 법문을 기회 될 때 마다 자주 듣는 것

10. 마음 챙김을 잘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오늘 42장경에 있는 내용을 발원문으로 올려 봤습니다. BTN을 시청하시는 여러분은 이미 열 가지 선행 중에 하나는 하고 계신 거죠? 늘 좋은 법문을 가까이 듣는 것이 선행이 된다니 선행을 행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저는 다음 시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당신과 내 안의 신성한 빛, 거룩한 불성에 경배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