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5)

[법륜스님 즉문즉설 1043회]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Buddhastudy 2015. 2. 6. 21:43

출처 YouTube

 

 

인생에는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야 된다. 이런 답이 없어요. 사람들은 자꾸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즉문즉설이라고 하지 말고 뭐라고 그래요? 즉문즉답이라고 왜 안합니까? 일문일답이라고 왜 안합니까? 이런 질문이 있는데, 세계에서 제일 긴 강은 어느 강입니까? 하면 나일강. 이런 게 일문일답이에요. 그런데 인생에는 답이 없기 때문에 일문일답도 될 수 없고 즉문즉답도 될 수 없습니다. 인생에는 다만 선택만이 있어요. 이런 선택을 하면 이런 결과가 빚어지고, 저런 선택을 하면 저런 결과가 빚어진다. 그럴 때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거냐? 선택에 망설임이 있는데,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어서, 책임을 안 지려고 하기 때문에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이런 얘기요.

 

서로 좋아해서 결혼을 하려는데 부모가 반대를 해. 그러면 힘들죠. 왜 그럴까요? 결혼도 하고 지지도 받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죠? 그런데 우리가 살아보면 그렇게 둘 다 되는 경우가 없어요. 그럴 땐 선택을 하면 되요. 부모의 지지를 받고 싶으면 결혼을 포기하든지, 결혼을 해야 되겠다하면 부모의 지지를 당분간 포기하든지. 그런데 둘 다 갖고 싶을 때, 고뇌가 생기는 거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 얘기를 들어보면서 저와 한께 나누는 거는 여러분들이 어떤 한쪽면만 보는데, 그런면만 있는 게 아니라 저런 면도 있다 하는 다른 쪽면을 보는 눈을 한번 가져보는 거요. 여러분들은 지금 싫은 것만을 생각하는데, 나중에 좋은 것도 함께 볼 수 있어요.

 

지금 좋은 것만 생각하는데 나중에 나쁜 것도 함께 볼 수 있어야 된다. 즉 앞도 볼 줄 알고, 뒤도 볼 줄 알아야 된다. 왼쪽도 볼 줄 알고 오른쪽도 볼 줄 알고, 위로 볼 줄 알고 아래도 볼 줄 알아야 된다. 이게 사물의 정물을 본다. 이래요. 이걸 통찰력이라고 그래요. 우리는 사물의 어떤 한 면, 한 면만 보고 그걸 가지고 마치 전체인양 착각한다. 이거를 우리가 편견이라고 그러죠. 우리가 지금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인생살이가 고달픈 거요. 이 편견을 버리고 통찰력을 갖게 되면, 이 통찰력을 지혜라고 하는데, 통찰력을 갖게 되면 이런 번뇌나 괴로움이 훨씬 삶이 가벼워져요. 생기가 돋아나게 된다.

 

우리 대부분 그렇잖아요. 공부는 하기 싫고, 좋은 대학은 가고 싶고,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어요? 돈은 빌리고 싶고 갚기는 싫고.^^ 그런데 이 인생만 그런 게 아니라 자연도, 우주도 그래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된다. 갚기 싫으면 궁해도 빌리지 말아야 한다. 이런 얘기요. 이걸 갖다가 인연과보라고 그래요. 인연과보.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이것을 물리학적인 법칙으로는 어떻게 표현해요? 뉴턴의 제2법칙, F=ma 들어봤어요? 으흠. 물체에 힘이 가해지면 속도의 변화가 생긴다. 속도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물체에 힘이 가해졌다는 뜻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다는 것은 원인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이런 가해진 힘과 결과, 속도의 변화는 어떤 관계에 있느냐? 비례관계에 있다. 그래서 뭐라고 그래요? F=ma 이렇게 말하잖아요. 이렇게 물질에서도 그런 법칙이, 생명의 세계도 그런 법칙이, 우리의 정신세계에도 그런 법칙이, 인생에도 그런 법칙이, 사회에도 그런 법칙이, 자연에도 그런 법칙이 작용한다. 이것을 불교적인 용어로는 인연과보, 줄여서 뭐라고 한다? 인과. 이래요. 인과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인과를 대부분 부정합니다. 으흠. 그러면 왜 인과를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못 믿거나 부정하는 그런 일이 생기느냐? 할 때, 원인이 있고, 결과가 생기는데, 즉시 생기는 경우도 있고, 시차가 이는 경우도 있어요. 이 시차가 있기 때문에 약간 혼란이 일어나는 거요.

 

해가 길어지면, 즉 낮의 시간이 길어지면 어때요? 추워져요? 더워져요? 더워지겠지. 해의 길이가 짧아지면 추워지겠죠. 그러면 해의 길이가 가장 길 때 가장 더워야 되고, 가장 짧을 때 가장 추워야 되잖아요. 그러면 낮의 길이가 가장 길 때가 얼마요? 621, 22일이잖아요. 그러면 그때가 제일 더워야 되는데 실제로 그래요? 안 그래요? 안 그렇지. 제일 더울 때는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7월말, 또는 8월초가 가장 덥죠. 해가 가장 짧은 동지, 1221일이 가장 추워야 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실제로 가장 추운 거는 그러고 나서 한 달 후, 1월 말, 2월 초가 제일 춥잖아요.

 

그러니까 동지 지나고 가장 추울 때를 뭐라고 그래요? 소한 대한 지나면 얼어 죽을 사람 없다. 제일 추울 때를 대한이라고 그러잖아요. 대한은 동지 지나 1달 만에 오는 대한이란 말이오. 그건 왜 그럴까요? 우리가 열을 가하는 거 하고, 실제로 지구의 공기가 데워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는 데는 시차가 있다 보니까 짧게 관찰하면 어때요? 원인은 있는데, 결과가 없는 거 같은 거, 또 뒤쪽만 관찰하면 원인은 없었는데 결과만 일어나니까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혼란이 생기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사물을 정확하게 전모는 파악하려면 공간적으로는 총체적으로 봐야 되고, 시간적으로는 길게 봐야 됩니다.

 

여러분들 등산하러 가끔 산에 가죠? 계곡을 이렇게 올라갈 때, 요즘은 산에 가서 취사를 못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없는데, 옛날에 저희들 한 1020년 전에는 계곡에서 취사를 해도 되었어요. 그럴 때 여러분들 자연적 친구들 모여서 개울에 도착했어요. “, 여기서 밥해먹자.” 그러면 먹는 물을 뜰 때는 위로 가서 뜹니까? 아래서 가서 뜹니까? 위로 가서 뜨죠? 그러면 조금 더 올라가면 조금 더 깨끗하다 이 말이죠. 그런데 발 씻거나 이럴 때는 밥해먹는 장소에서 위에 가서 씻으라. 그래? 아래 가서 씻으라 그래요? 아래 가서 씻으라 그러지. 자기가 보는 세계에서는 위는 깨끗하고 아래는 더러워요.

 

그런데 등산을 해보면 한고비 더 올라가보면 그 위에 있는 사람도 또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위에 가서 떠먹는 물은 위로 뜨고 발은 어때요? 아래로 씻지. 위에 사람하고 아래 사람하고 연결시키면 어떻게 되요? 위에 사람이 가능하면 아래로 내려와서 발을 씻고, 아랫사람이 가능하면 깨끗한 물을 뜨기 위해서 위로 가서 물을 뜨게 되면 어떻게 될까? 발 씻은 물을 떠오는 게 되죠?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왜 이런 모순이 생길까? 관찰하는 범위가 짧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1년 초는 내년에 다시 봄이 오는 줄을 알지 못하고, 하루살이는 내일 아침에 또 해가 뜨는 줄을 알지 못한다. 이런 얘기요.

 

오늘 해가 지는 것으로 지구의 종말이에요. 하루살이에게는. 그러나 길게 보면 내일 또 해가 뜨고, 1년 살다 죽는, 봄에 났다가 가을에 죽는 생물이나 식물은 내년에 또 봄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죠. 그래서 이런 혼란이 발생하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길게 보고, 전모를 보면, 문제의 본질을 알게 된다. 문제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 이걸 한문으로 고치면 뭐라고 그래요? 실상이라고 그래요. 진실한 모양, 있는 그대로의 모습, 이 실상을 알아차리는 것. 아는 것. 이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깨달음이라는 것은 물질세계에 자기 존재의 상황이나 변화의 법칙을 아는 것. 생명세계의 모습이나 변화의 법칙을 아는 것. 우리 정신계에의 작용, 이런 것을 아는 것. 이게 깨달음이에요.

 

그래서 이러한 깨달음은 과학과 상치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일치하는 거지. 다만 자연과학은 물질세계에 대한 연구고, 수행은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다. 대상의 차이 밖에 없죠. 그런데서 이제 젊은 여러분들은 종교와 과학을 나누지 말고, 그 다음에 종교와 비종교를 나누지 말고, 종교 안에 불교와 기독교를 나누지 말고, 불교 안에 소승대승을 나누지 말고, 선교를 나누지 말고, 총체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이렇게 총체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