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5)

[법륜스님 즉문즉설 1110회]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할까요

Buddhastudy 2015. 7. 2. 21:59

 

 

 

안녕하세요. 옛말에 세월이 유수같이 흐른다더니, 이렇게 세월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똑같은데 우리가 힘이 들면,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시간은 느리게 가는 거 같습니다. 또 우리가 아주 기쁘면,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시간은 아주 빨리 가는 거 같죠. 그래서 옛날에 살기 좋으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걸 어떻게 표현합니까? 10년을 하루같이 지났다. 10년을 하루같이 지냈다는 것은 살기 좋았다는 거요? 나빴다는 얘기요. 살기 좋았다는 얘기요.

 

그런데 우리가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시간이 거의 정지하다시피 잘 안가요. 그러면 뭐라고 그래요? ‘일각이 여삼추라.’ 이래요. 찰나가 3년 같이 느껴진다. 찰나가 3년같이 느껴진다 하면 어느 정도 고통스러운지 알겠죠? 그래서 우리는 고통은 피하고 싶고, 즐거움을 구하는데, 꼭 즐거움이 좋으냐? 이렇게만 말 할 수 없는 거 같아요. 만약에 10년을 하루같이 지나면 단명합니다. ? 100년 살아봐야 며칠밖에 못살아요? 10흘 밖에 못살아요. 그런데 일각이 여삼추라. 일각은 고사하고, 하루가 3년 같다 해도 하루를 3년 같이 살면 1년만 살면 얼마 살아요? 천년을 사는 게 되요.

 

그러니까 괴로운 게 꼭 나쁘다고 할 수가 없어요. 괴로우면 시간이 느려진다는 건 뭐에요? 단위시간당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걸 말해요. 그래서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 젊을 때, 어떤 한 사람이 고생을 좀 하면, 시간이 늘어진다. , 단위 시간당 경험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동년배 다른 사람에 비해서 완숙해 진다. 고생한 사람하고 안한 사람하고는 차이가 있다. 우리가 보통 편견이다. 속이 좁다. 이런 얘기는 뭐냐 하면 사물의 한 면만 봅니다.

 

드러난 면만 보고, 숨겨진 뒷면을 못 본다든지, 위만 보고 아래를 못 본다든지, 왼편만 보고 오른편을 못 본다든지, 이러면 편견을 가졌다. 견해가 좁다. 이렇게 표현을 해요. 그런데 고생을 하게 되면 어떠냐? 위만 보는 게 아니라 아래를 본다. 앞만 보는 게 아니라 뒤도 본다. 왼쪽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도 본다. 이게 통찰력이라 그래요. 사물의 전모를 본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고생을 해야 오히려 통찰력이 생긴다. 그래서 젊어서는 고생을 일부러 돈 주고 사서라도 한다할 만큼 우리가 고난을 겪는 것은 삶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일부러 자청할 필요는 없지만, 나에게 오는 고난을 피할 필요는 없다. 그 고난이 곧 복이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인생에 두려움이 없어져요. 그런데서 여러분들 지금 이런저런 삶에 있어서 장애가 있을 거예요. 아이들이 뭐, 문제가 있다. 부부간에 갈등이 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여러 가지 나름대로 갈등이 있을 텐데, 이런 갈등이 있는 것이, 이런 어려움이 있는 것이 꼭 나쁜 거 아니에요. 그것을 극복하고 나서 보면,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나의 능력이 커지게 됩니다.

 

우리가 지난여름 더울 때는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 지나놓고 보면 별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우리가 어려움이 있어야 능력을 키울 수가 있어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면, 우리는 능력이 커질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가 실패를 해야 연구를 합니다. 실패를 해야 새로운 도전을 해요. 그래서 우리가 새로운 걸 발견하고 또 능력이 커져가는 거요.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 삶이 지금 이런 저런 이유로 다 고달프고 힘들겠지만, 그걸 고달프고 힘들다 하는 측면에서만 보면, 불행이고, 이것이 나에게 새로운 어떤 기회, 나의 능력을 키우는 기회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큰 복이 된다.

 

주어진 상황은 똑같은데, 그것을 불행으로 만드느냐? 행복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렸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불교라기보다 진리에 관한 얘기니까 한번 따라 해보세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 그래서 여러분들이 행복을 만들어 가는 거요. 자꾸 행복이 주어진다고 생각해요. 감나무에 감이 저절로 떨어져서 내 입에 들어오지 않듯이, 행복도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오. 설령 저절로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하더라도, 그거는 금방 지나가버립니다. 다시 불행으로 돌변한다. 행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나의 인생, 나의 행복을. 내 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 어떻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것을 불행이 아니라 행복으로 볼 거냐? 이런 얘기를 오늘 좀 여러분들이 구체적인 얘기를 두고, 해보려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가 한꺼번에 보는 눈, 이게 지혜에요. 우리가 그런 눈을 조금 갖게 되면, 즉 내가 보는 것에 대한 고집을 조금만 내려놓게 되면, 우리의 행복 지수는 훨씬 높아진다. 여러분들의 삶이 훨씬 더 자유의 영역이 넓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조금 더 같은 조건하에서, 그러니까 뭘 할 거냐는 본인이 결정하지만, 그 결정된 안에서 어떻게 더 행복할 거냐? 하는 거는 우리가 함께 연구해본다면, 더 우리에게 좋은 답을 찾을 수가 있다. , 이런 말씀 드리며 시작하세요.

 

 

 

후자부터 먼저 얘기를 해보면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 딸 3이라는 거요? 3에 아들 1라는 거요? 아니, 자기 자식은? 그럼 아까 할아버지가 아들 없다고 그랬다며? 기다린다고 그랬다며? 나와서 아들 하나 낳았다? 으흠. 자기도 딸 3 낳아놓고 아들한테는 그래? 자기나 많이 낳고 그런 소리 하면 괜찮은데. 그런데 그건 이해가 되요. 그러니까 부인되시는 분이, 그러니까 홀어머니 모시기도 쉽지가 않은데, 홀시아버지 모시기는 더더욱 어렵다. 나야 내 아버지니까 괜찮지만, 부인이 모시기에는 쉽지 않다. 자기가 이해해요? 이해 잘 못해요?

 

, 나와서, 7~8년 살면서 그걸 몰랐다고? 아이고, 부인 여기 왔어요? 그걸 그냥 하루만 살아도 눈치를 채지 그걸 7년을 살면서도 눈치를 못 채고. 그러니까 그거는 같이 사는 거 어려운 일이에요. 그걸 살 수 있는 길은 부인이 수행을 해서 보디사트바, 보살정도가 되어야 살 수 있는 거지, 그 전에는 어렵다. 그러니까네, 이웃집 노인이라도 모시고 살 수 있으니까 보디사트바가 되면, 그 전에는 어렵다. 그러니까 그거는 누이가 모시고 사는 게, 사는 데는 더 편하다. 그러니까 이게 남녀 문제이기 때문에, 며느리하고 시아버지는 또 남이잖아. 그죠? 그렇기 때문에 이거는 옷을 하나 벗어도 그렇고, 뭘 하나 해도 불편해요. 그걸 이해해야 돼.

 

그렇기 때문에 그건 딸은 덜하지만, 며느리는 여러 가지 사는데 불편해요. 꼭 불효라서 안 모시려고 하는 게 아니고, 그리고 시어머님은 간섭을 해서 싫고, 시아버지는 뒤를 봐야 될 일이 많아요. 시어미는 밥도 해먹고, 애도 봐주고, 청소도 하고 이런 반면에 잔소리가 많고, 시아버지는 이런 잔소리는 안하는 대신에 뭐든지 밥도 차려다 줘야 되고, 이불도 깔아드려야 되고, 일이 많아. 그리고 또 아까 얘기한 것처럼, 남녀라는 게 또 있어 불편한 면이 있어요. 자기는 잘 모르는 거 보면 굉장히 둔한 남자요.

 

그렇기 때문에 이사를 나온 건 잘한 거요. 그리고 거기 다시 들어가려고 할 필요는 없다.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 거는 부인이 여보, 내가 공부를 좀 해서, 제가 남도 모시는데, 당신 아버지 제가 잘 모시고 살겠습니다.”라고 이렇게 청을 하면 못이기는 척하면 받아들이면 몰라도, 부인이 원하지 않으면 시도를 하지 않는 게 좋다. 그거는 내가 효도하는 거 보다 더 중요한 일은 내가 내 자녀들이 잘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그 문제는 별로 고민거리가 없어요.

 

다 자기가 들어가려고 하는 이유가 혹시 아버지가 재산을 가지고 있어서 모시면 떡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이런 생각 때문이라는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떡고물 보다는 내 힘으로 우리 가정을 꾸리는 게 더 중요하고, 그거는 누이가 모시면 누이가 가져가도 좋다. 누구든지, 부모를 모시는 사람이 살아있을 때 유산은 가져가고, 돌아가시면 누가 모셨던 관계없이 법적으로 유산이 1/n로 나누어지게 되어있으니까, 그때 내 권리를 받으면 되고, 그 문제라면 그렇게 처리하고 나머지는 아무리 아들이라 하더라도 지금 형편에는 우선 그렇게 처리하는 게 낫고,

 

다만 부인이 이런데 와서 법문도 듣고 공부해서 스스로 발심을 해서 아버님을 모시겠다하면 그건 수용해도 좋지만, 그래도 말려야 돼. 자기는 말리고 부인은 하자 그러고. 그래서 부부싸움을 해야 돼. 그런 부부싸움은 좀 해도 되요. 그러기 전까지는 자기가 자주 가서, 마음에 걸리면 누이 집에 가서 자기 아버지니까,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는 건 좋다. 이런 관점을 갖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자기 생각은 어때요?

 

두 번째, 앞에 거는 대중 앞에 서서 얘기하는 거 보면 그 정도면 됐어요. 그런데 그거보다 좀 더 잘하고 싶으면 연습을 해야 되요. 그러니까 말도 처음부터 잘 탈 수 있어요? 연습을 해야 되요? 연습을 해야 되고, 피아노도 연습을 해야 되고, 자전거도 연습을 해야 돼. 자꾸 대중 앞에서 말하기 연습을 해야 되는데, 오늘 자기 이왕지 선 김에 연습을 한번 해보지. ? 연습을 한번 하세요. 뒤로 돌아서세요.

 

, 지금부터 노래를 한곡 합니다. 마이크 잡은 김에 한번 연습을 해봐요. 아무 노래나. 하고 싶은 데로 찬송가 불러도 괜찮아요. 그러면 안 돼. 지금 연습이니까 해버려야 돼. 이때 콱, 해버리면. 뽕짝을 했으면 훨씬 더 연습이 되었을 텐데. . 그렇게 자꾸 연습을 하셔야 되요. 머뭇거리지 말고 자꾸 연습을 해야 되지, 고치려면 연습을 해야 돼.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되는 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