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우학스님의 금강경 11_3. 무일 마음정의(체상용)

Buddhastudy 2017. 5. 9. 16:30



, 그러면 유인물, 보십시오. 거기 내용에 보면, 무일 우학스님인 제가 직접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공부를 한 끝에 정의를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무일 마음 정의라, 이렇게 이름을 붙였는데, 이 마음은 여기서 말하는 이 마음은, 진심을 말해요. 진심. 참된 마음. 아무튼, 이 진심, 참된 마음의 정의라. 해서 체상용으로 다시 나누었습니다.

 

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바탕을 말하고,

상이라 하는 것은 마음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고,

용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쓰임을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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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음의 바탕, 체는 다시 3가지 의미가 있으니 본래청정, 본래공활, 본래안정, 그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본래청정, 본래공활, 본래안정. 진심, 즉 우리의 참 마음이야 말로 본래로 청정하고, 본래로 공활하고, 본래로 안정했더라. 이 말이에요.

 

그러면 이 청정이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맑고 깨끗하다. 이 말입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맑고 깨끗하다.

공활이라고 하는 말은 비어 훤칠하다. , 툭 터졌다. 이 말이죠. 본래 공활하였더라.

안정이라는 말은 편안하고 고요하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편안하고 고요하였더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현재 중생의 몸을 끌고, 중생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래 청정하고, 본래 공활하고, 본래 안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왜 그러냐? 탐진치, 3독심을 부리기 때문에 그래요. 중생들은 온갖 탐욕심으로 그 마음이 탁해져 있어요. 마치 스모그가 꽉 낀 것처럼 탐욕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청정하지를 못해요. 그런데 그 본바탕, 하늘로 예를 들면, 하늘은 본래 맑고 깨끗해요. 그런데 거기에 스모그가 낀다면 바탕은 한바탕이로되, 스모그가 끼면 살기가 힘들죠. 중생이 탐욕심으로 스모그 같은 그런 탁한 기운을 꽉 품어 내면 스스로 살기 힘들어지는 거죠. 그렇지만 그 하늘바탕은 본래로 맑고 깨끗하였더라. 그 말이에요.

 

그 다음에 공활이라. 비워 훤칠한 것을 공활이라 하는데, 중생은 성냄으로 그 마음이 옹졸해 있고, 성냄, 화냄으로 인해서 칸막이, 마음의 칸막이를 자꾸 쳐가는 겁니다. 그래서 툭 터지지 못한 거죠. 진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3번째는 안정이라, 편안하고 고요한 것이 본래 마음인데, 중생은 어리석음으로 해서, 깜깜한 어리석음으로 해서 그 마음이 불안하고 들떠있어요. 이건 치심이라고 말해요. 치심, 치심으로 인해서 그 마음이 어둡고 그 마음이 어리석어서 불안하고 때로는 들떠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행을 통해서 마음공부를 통하다보면, 마음이 지극히 편안하고 고요한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다 느끼게 되죠. 왜 그런가? 이 진심, 참 마음, 참 마음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다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중생의 마음은 본래는 맑은 하늘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먹구름 같은 것이 몰려와서 깜깜해지고, 비가 쏟아지고, 앞뒤 구분이 안 되고, 하다 보니 온갖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거죠. 그것은 바로 탐진치 3독 때문에 스스로 부르는 하나의 업인 거지요. 그런데 본바탕은 맑은 하늘이고, 본바탕은 훤칠한 하늘이고, 본바탕은 아주 고요한 그런 하늘이었다, 이 말입니다. 진심, 참 마음은 바로 그러한 자리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바탕을 체적인 면에서 얘기를 한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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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두 번 째는 마음의 모양, 상입니다. 마음의 모양 상. 마음이 모양이 있다하면 그것도 어려운 말이지만, 억지로 이름 붙여서 마음의 모양, 이렇게 붙여놨습니다. 그래서 심시보장이라 했는데, 진심시보장이라. 참 마음이 보배 창고다. 이 말이에요. 참 마음이 보배창고다. 보배 창고는 눈에 보이잖아요. 보배창고.

 

내 참마음의 보배 창고에 있는 것이 뭔가?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성취하는 것이 있고,

만족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긍정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기쁨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

긍정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여튼 이러한 좋은 것은 본래의 나의 마음, 보배창고에 가득 들어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과 공부를 통해서 이 보배창고에 있는 참된 내 것, 진짜 가치 있는 것, 이것을 끄집어내어서 써야 하는 거죠.

 

그 다음에 진심시조주라. 심시조주, 진심시조주, 참마음은 창조의 주인이더라. 이 말입니다. 창조의 주인이더라. 우리가 일체유심조라, 이런 말도 쓰는데, 일체는 다 마음이 짓는다. 이러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짓는 만큼

세상의 크기가

자기 앞에 전개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마음이 크면 세상도 크고,

그 사람의 마음이 옹졸하면 세상도 옹졸해 있는 거죠.

 

바로 이 진심이 부리는 하나의 작용, 모양입니다. 진심시조주라. 창조의 주인. 그 상 한번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심시보장, 심시조주, ,

 

이 세상을 누가 창조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창조한다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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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마음의 쓰임이라. 용이라 했어요. 심시불타라. . 읽어보겠습니다. . 이것은 마음의 쓰임입니다. 앞으로 불교 공부를 또 많이 하게 될 텐데, 체상용. 이렇게 설명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을 삼대라 하는데, 체상용, 삼대로 참 마음을 설명하자면 이러하더라. 그 말이죠.

 

그다음에 용은 심시불타라. 했습니다. 진심시불타라. 마음이 곧 불타라. 마음이 부처다. 그런 말 쓰죠? 바로 이 불타가 부처라는 말이고, 인격화해서 부처님. 그렇게 말하죠. 심시불타라. 이 불타는 깨어있음. 주인공. 그런 뜻이었어요. 그래서 마음이야 말로 늘 깨어있는 것이고, 마음이야 말로 주인공이다.

 

그래서 마음을 잘 써라. , 쓸 용. 마음을 잘 쓰는 사람이 이 세상을 재미있게 잘 사는 사람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참마음, 진심의 정의는 앞으로 여러 공부를 할 때, 자주자주 살펴봐야할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