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반야심경

법륜스님 반야심경-제09강 부처님 십대제자-사리자

Buddhastudy 2017. 5. 30. 21:30


 

안녕하세요. 오늘은 반야심경 강의 9번째 시간이 되겠습니다. 지난번 시간까지 첫 번째 줄 공부를 했죠?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이 첫 번째 줄이 제일 중요합니다. 모든 보살을 대표한 관자재보살, 관세음보살님께서 대승보살의 수행법인 반야바라밀다 수행을 행하셔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다. 그 깨달음의 내용은 모든 법이 다 공함을 깨달으셨다. 그것이 조견오온개공이다. 이렇게 모든 법이 다 공하다는 법의 실상을 깨달으니 일체의 번뇌, 모든 고뇌가 다 사라져버렸다.

 

여러분들이 지금 안고 있는 온갖 번뇌, 괴로움, 고뇌. 이런 것들이 다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여기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더 공부를 해야 할 것은 이 깨달음의 내용에 관한 겁니다. 일체법이 다 공하다. 그것을 여기서는 오온이 모두 다 공하다. 이렇게 표현했죠? 오온이 모두 다 공하다. 그러면 오온이 모두 다 공하다는 하는 것을 알기만 하면 모든 괴로움이 사라지는데, 우리는 오온이 모두 공하다 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경험되어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문장은 오온이 모두 공하다 하는 그 문장에 대한 더 깊은, 더 자세한 해설이다. 이 반야심경은 법을 설하는 자는 대승보살을 대표해서 관자재보살이 설하시고, 이 법을 청해 듣는 사람은 소승을 대표해서 사리부트라=사리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문장, /사리자야/ 사리자라고 나옵니다. 오온이라는 것은 색수상행식인데 색수상행식이 모두 공하다고 했으니까 첫 번째 색이 공하다하는 것을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야 합니다. 색이 공하다 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말하면, 수학적인 논리학에서 증명하듯이 색이 왜 공한가? 색이 어떠해서 공한가 하는 것을 증명해서 설명하는 것이 그 다음 문장입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렇게 설명했어요.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색이 공하다 하는 것을 확연하게 밝힌 글입니다. 그와 같은 방법으로 수 또한 그렇다. 상 또한 그렇다. 행 또한 그렇다. 식 또한 그렇다. 그러니까 나머지 4가지도 동일한 논리에 의해서 동일한 방법으로 다 공하다 하는 것을 밝혔다. 이것은 내용을 줄여서 /수상행식 역부여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문장을 다시 자세히 이해하셔야 됩니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장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내용, 깨달음의 내용은 뭐냐? 오온개공이다. 그 오온개공을 다시 풀어서 자세하게 설명한 문장이 그 다음 문장이다. 오온, 5가지 가운데에서 첫 번째 색을 먼저 드러내서 색이 공하다. 이 얘기요. 색이 공하다 하는 것을 밝히는데 여기에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불이,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 그리고 색과 공은 곧 같다고 말하는 즉시, 불이와 즉시라는 방식으로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렇게 말하는 게 하나 있고,

 

두 번째는 색과 공이 다르지 않다라고 하면 색불이공만 하면 하면 되지 공불이색은 뭣 때문에 했느냐? 색즉시공만 하면 되지 공즉시색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이 서로 뒤집어서 역으로 말하는 방법이 곧 색이 공과 같다는 수학적 증명방법입니다. 수학에서 A=B임을 증명하라. ‘AB가 같음을 증명하라.’ 하면 첫째, ‘A이면 B이다.’ 라는 명제가 성립함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B이면 A이다.’라는 명제가 성립함을 보여야 되요. , 그 명제가 성립하고 그 명제의 역이 성립하면 A=B,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면 동물이다.’ 이 명제는 성립하죠? 사람은 사람인데 동물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람이면 동물이다.’ 그러나 동물이면 사람이다.’라고 하는 이 명제의 역은 성립하지 않죠. 그러기 때문에 사람과 동물은 같다.’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명제가 성립하고 그 명제의 역이 성립할 때, ‘AB는 같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결국은 색이 공하다는 하는 증명하는 거예요. 색과 공이 같다는 관계에 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색이면 공이고 공이면 색이다.’ 라는 두 가지 명제가 성립해야 색이 곧 공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역으로 반복해 놓은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이것이 같음을 증명하는 방법에 속한다.

 

다시 돌아와서 不二불이라는 방법을 썼죠. ‘다르지 않다하는 거 하고, ‘즉시 곧 그것이다.’라는 것은 왜 이렇게 달리 표현을 했느냐? 이것은 하나는 시간적 접근이고 하나는 공간적 접근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할 때, “부처님께서 어떤 법을 깨달으셨느냐?” 이렇게 말할 때 한마디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연기법을 깨달으셨다.” 이렇게 말합니다. 뭘 깨달으셨다고요? 연기법을 깨달았다.

 

그러면 이 연은 (말미암을 연, 일어날 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말미암아 일어납니다.

 

다시 말하면 ‘A로 말미암아 B가 일어난다.’ 이 말은 ‘AB는 무한한 준재가 아니다.’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AB는 뭔가 서로 연관된 존재다. 그러니까 ‘A로 말미암아 B가 일어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렇게 서로 연관되어 있다. 마치 그물처럼.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있다. 이것을 4개의 문장으로 나누면 이렇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과 저것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계 맺어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은 공간상에서 상호관계 맺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과 저것이 시간적으로 상호 인과관계에 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일어난다. 그러니까 이것이 원인이라면 저것이 결과다. 이것과 결과는 인연과보의 관계에 있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시간적인 연기에요. 다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4개의 문장으로 연기법은 표현이 됩니다. 다시 한 번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앞에 두 문장은 존재의 생성, 드러난 존재, ‘존재가 있다라고 하는 유의 세계, ‘존재가 일어난다.’는 생의 문제를 표현하고 있고, 뒤의 두 문장은 존재의 사라짐, 존재의 없음인 무를 표현하고 있고, 존재의 사라짐인 멸을 표현하고 있다. 유 무. 또는 생 멸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다시 바꾸어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유 무는, 있고 없음은 별개가 아니다. 실제의 존재는 있다 없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존재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고, 존재가 인식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연관이 해체되었다는 거란 말이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은 공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서로 연관되어 있다. 개별적 단독자,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이것을 다른 말로 정리하면 무아 이렇게 말합니다. 무아라고 말한다.

 

아라고 할

홀로의 단독자라는 것은 없습니다.

서로 연관되어 존재한다.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이것과 저것은 시간적으로 상호 연관되어있다. 인과 관계로 연관되어있다. 이것을 無常무상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함이 없다. 영원하다. 영원불멸하다 하는 것은 없다.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이렇게 변해간다. 그러니까

 

연기법은 두 개의 다른 말,

즉 시간과 공간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면

무상과 무아, 무아와 무상이라고 말 할 수가 있다.

 

중생이라는 말은 나쁜 사람이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중생이란 말은 어리석은 자다. 무지한 자다 이런 얘기요.

우리는 법에 무지하기 때문에

존재의 참모습이 연기인데도 연기인 줄을 모른다.

존재의 참모습, 법의 실상이 무상이며 무아인데

우리는 무상이며 무아인 줄 알지 못한다.

항상 함이 없고, 영원하지 않고, 변해 가는데도

우리는 착각을 해서 그것이 영원하고, 그것이 항상 한다고 생각한다.

 

또 존재의 참모습은 서로 연관되어있어서 단독자라고 하는 것은 없다. , 어떤 존재도 이것은 이것이다.’ 라고 할 단독의 실체는 없다. , 존재의 참모습은 무아인데도 우리는 아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라고 하는 착각인 아견에 떨어지고,

항상 한다라고 하는 착각인 상견에 떨어지게 된다.

 

그러다보니까 없는 것을 있다하고, 잘못알고 있다. 이것을 반야심경 뒤에 가면 전도몽상이라고 그래요.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 뱀을 만나서, 꿈속에서 강도를 만나서 놀라는 것과 같다. 깨어보면 없지만, 그 꿈속에서 어떤 환영 속에서는 분명히 뱀이 있으면 강도가 있다. 이런

 

아견과 상견,

이것은 무지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는 일 마다 다 괴롭다.

일체가 다 괴로움이다. 그래서 고가 발생한다. 일체개고다.

 

그런데 존재의 참모습이 연기임을 깨달으면

곧 무아임을 깨닫고 무상임을 깨달으면 어떠냐?

우리가 하는 일마다 괴로움이라는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났던 괴로움도 다 사라져 버린다.

 

괴로움이 사라졌다. 괴로움이라는 것이 없다.

이것을 열반이다라고 해요.

모든 괴로움이 사라지고, 고요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열반적정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불교의 가르침의 가장 핵심은 사실은 연기법입니다.

연기는 다른 말로하면 무상과 무아, 무상과 무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제법이 무상하고 무아임을 깨달으면

열반적정의 경지에 들게 되고,

제법이 무상과 무아임을 알지 못하고

아견과 상견에 빠지게 되면

괴로움에 떨어지게 된다. 일체고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무상, 무아, 또는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이것이 삼법인이다. 또는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이것을 삼법인이다. 이것이 진리다. 라는 도장이다. 도장이 찍혔다.

 

그래서 어떤 가르침이든 이 무상, 무아, , 열반, 또는 이렇게 해서 사법인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러니까 이것이 분명하면 그것은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부처님 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설령 부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말했다 하더라도 이런 이치를 말해서는 그것은 진리다. 불법이다.’ 라고 말 할 수 있고, 비록 그 책 제목에 부처님이 말씀하셨다.’는 단서가 붙어있다 하더라도 무상, 무아, , 열반의 내용이 아닌 것이 여기에 들어있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삼법인이다. 이렇게 말한다.

 

이 무상과 무아를 대승불교에서는

새로운 용어로 공이라고 했습니다.

 

. 공이라고 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제법이 공하다하는 것을 증명하려면 제법이 무상하고, 제법이 무아임을 증명하면 제법이 공하다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래서 여기,

 

색이 공임을 증명하는데

색이 무상하다 하는 것을 하나 밝히고,

색이 무아이다 라는 것을 밝히면

색이 공하다라고 증명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무상하다 라는 것은 변한다 이런 얘기요./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다. 얼음이 변해서 물이 되었다 하는 것은 얼음과 물은 별개에요? 별개가 아니에요? 별개가 아니다. 얼음과 물은 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변화했을 뿐이다. 이럴 때 얼음과 물은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 할 수가 있다. 그럴 때 그것이 불이가 된다. 불이. 얼음과 물은 다른 것이 아니다. 다른 존재가 아니다.

 

같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같다는 말보다는

얼음과 물은 모양과 형태는 다르지만,

얼음이 변해서 물이 되기 때문에

얼음과 물은 다르다고 할 수가 없다.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이 무상함을 말하는 거다.

 

같은 방법으로, 고로, 같은 방법으로 수도 이렇게 하면 /수불이공 공불이수 수즉시공 공즉시수/ 이렇게 된다. 상도 마찬가지, 행도 마찬가지, 식도 마찬가지다. 문장을 딱 축양해서 뭐라고 했다? /수상행식 역부여시다./ 그러니까 이 문장은 앞에 문장에서의 무엇을 증명한 것이다? 해설한 것이다? /오온개공/을 설명한 것이다. 이렇게 짜여 있습니다.

 

, 그러면 이 문장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첫 번째, /사리자/이렇게 나왔습니다. 사리자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지혜제일입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아세요? .

 

*첫 번째가 지혜제일 사리부트라입니다. 사리부트라 원 말은 사리부트라입니다. 줄여서 사리불 또는 사리자, 이렇게 말하는 거요. 사리부트라. 지혜제일입니다.

*두 번째가 신통제일 마하목건련입니다. 마하목건련, 또는 목건련. 신통제일이다. 10대 제자 가운데 신통이 제일인 자다. 두 번째 제자입니다.

*세 번째는 두타제일 마하가섭입니다. 두타제일 마하가섭.

 

첫 번째 제자와 두 번째 제자는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드셨어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는 첫 번째 상수제자가 누구다? 마하가섭존자에요. 그래서 마하가섭존자가 500아라한을 모아놓고 사회자가 되어서 아난다존자와 우파리존자를 경과 율에 초안자로 해서 경률을 결집했다. 그럴 때 가장 상수제자가 마하가섭입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 존자가 천안제일 아니룻따입니다. 한문으로는 아나율이라고 그래요. 아니룻따. 아니룻따는 석가족 출신입니다. 아주 똑똑한 젊은이였어요. 그런데 출가한 이후에 어느 날 법문을 듣는 시간에 졸다가 부처님께 지적을 받았어요. 그 한 번의 지적을 받고 다시는 졸지 않겠다고 각오를 하고 그다음부터는 잠을 안 잤어요. 잠을 안자고 용맹정진을 하다보니까 눈병이 났어요. 눈이 굉장히 아팠어요.

 

그래서 의사 지바카가 와서 치료를 했는데, 지바카가 부처님께 말씀하기를 다른 특별한 병이 아니고, 잠을 자지 않아서 생긴 병입니다. 잠을 자야 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아니룻따에게 눈은 잠을 먹이로 한다. 그러니 좀 자도록 해라.” 이렇게 권유를 했어요. 그러니까 아니룻따가 부처님께

 

깨달음은, 지혜는 무엇을 먹이로 합니까?

부처님께서 정진을 먹이로 한다.

 

그러니까 아니룻다가 저는 설령 눈이 먼다 하더라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정진하겠습니다.” 이렇게 그는 잠을 자기 않고 정진을 해서 결국 눈이 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눈이 열렸다. 하늘의 눈이 열렸다. 그래서 아니룻다를 천안제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천안제일 아니룻다, 아나율, 이분이 네 번째 제자입니다.

 

*다섯 번째 제자는 금강경에 등장하는 수보리에요. 수부티죠. 수보리가 다섯 번째 제자다. 해공제일이다. 제법이 공한 이치를 가장 밝게 아는 자다. 그다음에

*여섯 번째 제자는 논의 제일 가전연입니다. 그는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논리적으로, 다른 이교도들과 논쟁을 할 때, 불법을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게 설명하는데 제 일인자였다.

*일곱 번째는 설법제일 부루나입니다. 부루나존자, 부루나존자는 많은 사람, 그 어떤 사람도 불법을 비난하고 헤치려고 하는 그런 사람도 다 교화해 내는 그런 설법의 일인자다. 부루나 존자.

 

*여덟 번째는 지계제일 우파리입니다. 계율을 가장 청정히 완벽하게 지킨 사람입니다. 이 우파리는 석가족의 노예출신입니다. 석가족 귀족들의 왕족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그런 천민이었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출가해서 부지런히 정진해서 십대제자에 든 분입니다. 지계제일 우파리존자.

 

*아홉 번째는 밀행제일 라후라존자. 라후라존자는 부처님의 아들입니다. 부처님의 외아들이에요. 출가하시기 전에 낳은 아들인데, 부처님이 출가하신 후 12년째, 성도하신 후 6년째 고향으로 돌아와서 많은 석가족들에게 설법을 해서 그때 많은 석가족 젊은이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의 눈이 열려서 출가를 했습니다. 그때 부처님의 전부인이었던 야소다라 공주가 아들 라후라에게 저기 계시는 저분이 너희 아빠이시다. 가서 인사를 드려라.” 인사를 하면서 아버지, 저에게 상속물을 주십시오.” 이렇게 말해라. 했습니다.

 

라후라존자가 아버지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아버지, 저에게 상속물을 주십시오.” 출가한 스님이 상속물을 줄게 있습니까? 없죠. 그런데 왜 야사다라공주는 아들에게 이렇게 시켰을까요? 남편이 출가해서 괘씸해서 그랬을까요? 알 수 없는 일이오. 그 말을 듣자 부처님께서 라후라존자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사리부트라여, 이 아이를 출가시키십시오.” 그렇게 해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상속물을 주셨습니다.

 

대부분 출가는 자발적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선택 하는 거요. 그런데 라후라존자는 출가가 자기가 선택한 게 아니었어요. 아버지에 의해서 강제로 주어진 것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 라후라는 이 승단 생활에 많은 이런 문제를 일으켰어요. 라후라가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반왕은 너무너무 상실감에 빠졌어요. 아들이 출가한 것으로도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하나밖에 없는 손자마저도 출가해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정반왕이 부처님께, “부처님이시여, 이 미성년자, 20살 이하의 미성년자가 출가할 때는 반드시 부모의 승낙을 받고 출가함이 좋겠습니다.”라고 건의를 했을 때, 부처님께서는 그것이 합당하다.”라고 생각하셔서 승낙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20세 이상 성년의 남녀가 출가할 때는 부모의 동의서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20세 미만의 미성년자가 출가할 때는 반드시 부모의 동의서가 있어야 합니다.

 

라후라는 이런 계율이 있기 전에 출가를 했죠. 설령 이런 계율이 있다 하더라도 라후라는 부처님이 출가를 허락했기 때문에, , 이미 아버지가 출가를 허락했기 때문에 또한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린아이가 자기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니까, 수행생활이 힘들고, 그래서 장난이 많았다고 그래요. 그 가운데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스님들이 와서 부처님 어디계시냐?” 물으면 여기 계시면 저기 계신다고 그러고, 저기 계시면 여기 계신다고 그러고, 이렇게 거짓말 장난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어린아이를 출가시켜서 이렇게 승단을 어지럽히느냐? 이런 비난의 소리가 있었다. 그래요.

 

그 얘기를 들은 부처님께서 늘 라후라를 염려하시다가 이런 라후라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자,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외출을 하고 돌아오셨는데, 라후라가 새 대야에다 발 씻을 물을 떠왔어요. 부처님께서 발을 다 씻은 뒤에 라후라 보고 이 물을 먹어라.” 이랬어요. 그러니까 라후라가 안 먹으려고 그랬어요. “왜 안 먹느냐?” “발 씻었는데 더럽잖아요.” “물을 갖다 버리고 오너라.” “버리고 온 그 대야에 내일 아침에 이 그릇으로 밥을 빌어라.” 하니까 라후라가 또 거절을 해요. “왜 그러냐?” “발 씻은 더러운 그릇에 어떻게 밥을 받아먹습니까?”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그 그릇을 치우시면서 라후라야, 사람도 그렇다.”

 

사람의 몸은 본래 깨끗하지만,

그 마음이 물과 같아서 거짓말을 행하게 되면

발 씻은 물처럼 더러워진다.

그러면 아무도 그를 가까이 하려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린 라후라지만, 그 발 씻은 대야에 비교해서 설명한 이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닫고 뉘우쳤습니다. “, 그렇구나.”

 

계율을 어기는 것은 바로

마음을 더럽히는 거구나.

마음이 더러우면 몸까지 더러워져서

사람들이 그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 버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라후라는 크게 깨닫고 그 이후부터는 아주 부지런히 정진했다. 자기의 정진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숨겼어. 조용히 정진을 했다. 그래서 밀행제일이라고 합니다. 밀행제일 라후라존자다. 아들이라서 10대 제자가 된 게 아니고, 그 수행력이 높았기 때문에 10대 제자에 들었다.

 

*아난존자, 다문 존자 아난존자다. 이렇게 말합니다.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들은 자다. 부처님께서는 29살에 출가하시고 35살에 깨달음을 얻어서 붓다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하루도 쉬지 않고 다니시면서 설법을 하셨죠. 그랬기 때문에 많은 제자들을 두셨습니다. 출가한 무수한 제자들이 있었고, 빔비사라왕 비롯한 각국의 왕들까지 포함한 수많은 재가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하실 일이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또 이교도들이 부처님을 시기하는 사람이 많고, 부처님에 대한 어떤 살해위협까지도 나타났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자들은 출가수행자들은 다 스스로 홀로 생활을 하죠. 그러나 부처님께 혼자 계셔서는 안 됩니다. 요즘 말로하면 시봉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부처님께 건의를 했는데, 부처님께서 거절을 하셨습니다. 또 얼마의 시간이 자나다가 또 건의를 했는데도 부처님께서 거절을 하셨어요. 부처님이 성도 후 20, 그러니까 우리 세속 나이로 치면 55세 되던 성도후 20년이 되던 해, 3번째 다시 시자가 있어야 한다.”하고 청을 했을 때 부처님께서 침묵으로 승낙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대중공사를 해서 누가 가장 좋겠느냐했을 때, 사리부트라도 제가 하겠습니다.” 목갈리나존자도 제가 하겠습니다.” 마하가섭존자도 제가 하겠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다 부처님을 시봉하겠다고 자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리부트라 목갈리나존자가 다 부처님보다 연세가 많으세요. 이런 저런 것을 다 감안했을 때 부처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리고, 또 부처님과 같은 종족출신, 석가족 출신이고, 성격도 아주 온순하고, 머리도 아주 총명하고, 이런 아난다 존자가 제일 적격이다. 이래서 아난다존자가 천거가 되었어요.

 

또 그 외에 수많은 스님들이 있죠. 이 가운데에서 제일 훌륭한 스님들을 10대 제자라고, 십대제자 가운데 제1제자가 사리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사리자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인 사리자도 되겠지만, 이 사리자라는 것은 소승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소승불교에 가장 뛰어난 제자, 사리자를 배우는 사람으로 세워놓고, 대승불교에는 대승은 보살승입니다. 상가가 보살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대승보살에는 4대 보살이 있죠. 누굽니까? 대지문수 사리보살, 대행보현보살, 대비 관세음보살, 대원본전 지장보살 등 수많은 보살들이 있다.

 

이 보살들 가운데에서 여기에 법을 설하는 자로 등장한 분이 누구다? 관세음보살, 관자재보살이다. 여기서는 관세음보살과 사리자는 대승을 대표하고 소승을 대표해서 자리를 배치했다.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 이 사리자에게 관세음보살이 지금 말하고 있는 거요. “사리자야, 사리자야. 오온이 모두 공하느니라. 색은 이러이러해서 공하다. 수상행식도 이러이러해서 공하다.” 이렇게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는 문장이 다음 문장이다. , 오늘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그러면 자세한 내용들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