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철운스님_법성게

철운스님 법성게 2_3.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윤회, 업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견성, 묘각명)

Buddhastudy 2017. 10. 16. 19:46


불교에서는 윤회한다. 이런 말 들어봤지요? 윤회란 말이 있는데, 윤회라는 것은 돌고 돈다는 거지요. 뭐가 돌고 도냐 하면, 우리 중생들은 생로병사. 이렇게 돌고 돈다는 거예요. 생로병사, 생로병사, 생로병사 이렇게 돌고 돌고.

 

또 일어나는 마음이 있어. 우리 마음은. 마음은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 한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이 우주는 삼라만상은 어떻게 돌고 도느냐하면 성주괴공 성주괴공 성주괴공, 이렇게 돌면서 윤회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옛날 스님들이 궁금한 거야. 우리가 금생에 이렇게 살다가 다음 생에 지옥에 가는지, 축생이 되는지, 천상에 태어나는지, 뭐가 태어나기는 태어난다고 그러는데 도대체 뭐가 있어서 태어날까? 궁금하잖아요.

 

궁금하지요? 뭐가 도대체 있어서 다음 생에 지옥에 가서 지옥 고를 받는다고 그러고, 축생, 소로 태어나서 일 실컷 한다 그러고, 천상에 가서 즐거움을 받는다 그러고, 도대체 뭘까? 궁금해서 우리 마음을 관찰해보니까 뭐가 있어서 그러냐하면 업, 사람들이 업이라는 것이 있어서 윤회한다는 거요. 윤회.

 

업이 있어서 윤회하니까 이 업을 좀 없애야 되겠다. 업을 없애면 윤회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찾아가는 거예요. 업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우리 업이 어디에 있는가? 업이 어디 있어서 윤회하는가? 우리가 윤회한다고 그랬잖아요. 내가 죽으면 다음 생에 뭐로 태어나는데 그러면 내 몸뚱이 안에 이 업이 어디 있냐 이거에요. 업으로 태어난다고 그러는데.

 

그래서 생각해보고, 궁리해보니까 업은 육식이라는 데도 있고, 또 칠식이라는 것이 있어요. 칠식이라는 데도 있고, 그 다음에 팔식이라는데 있어. 제일 마지막에 가보니까 그 팔식이라는 것이 있어요. 팔식이 아뢰야식, 장식, 이숙식, 함장식, 이렇게 많은 뜻이 있어요.

 

결국 이 팔식은 뭐냐 하면 이숙식이라는 거예요. 무몰식 하기도 하는데, 이 팔식은 없어지지 않고, 무몰이라는, 그 다음에 이숙이라는 것은 다음 생에 달리 나타난다는 거예요. 팔식. 그래서 우리가 수행하는 사람들은 또 여러분들이나 스님들이나 이 팔식을 또 어떻게 없애야 윤회가 끝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 세상에 다 팔식에 의해서 윤회되고 하니까, 그래서 또 찾아들어가는 게 결국은 진여까지 들어간 거예요. 진여의 자리에 가면 공하기 때문에 청정, 공자리에서는 윤회도 없고 생사도 없고 늘어난 것도 없고 줄은 것도 없고, 그렇다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공부해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것은

이 팔식까지 지나가서 진여, 자성자리를 탁, 본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 견성한다고 그러잖아요.

견성한다는 것은 자성을 본다는 거예요.

 

자성이 뭔가 이렇게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되죠. 아무도 공한 자리라. 공성. 시제법공상 그래요. 모든 법이 공한 자리로 들어가면 그 속에 내 자성도 보이고, 불성도 보이고, 법성도 보여서 또 일체 항하사 묘용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타나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고 그러는데,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자리를 봤기 때문에 어떻게 얘기하시냐하면,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그래요. 하나 가운데서 일체가 다 포함된다. 부처님 마음속에 일체가 다 포함되고, _일체를 줄여서 많은 거예요. 많은 것이 하나 가운데 다 포용된다.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했어요. 그래서 그 진여자리에서는 일중일체다중일이고, 일즉일체다즉일 그래요.

 

그래서 이 자리는 우리가 현실에 이렇게 되어있지만, 우리 중생들은 볼 수 없어요. 부처님, 깨달은 분만이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보리도량이 있어요. 대각사에 있는 그 보리도량에서 깨닫고 나니까, 깨닫고 나서 그 대각의 마음으로, 묘각명이라고 그래. 이 묘각, 묘각이 대각이라고 그랬잖아요. 묘각의 이 밝은 광명으로서 원조법계 한다는 이 세상을 둥글게 둥글게 다 비추어 봤어요.

 

원조법계 하니까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대각의 밝음으로 묘각명이라고 그러죠? 묘각의 밝은 그러한 마음으로 이 원조법계, 세상을 다 살펴보니까 하나가 곧 많은 것이다. 무량이라는 거예요. 또 작은 것이 또 크게 돼. 극소동대라는. 지극히 작은 것은 또 큰 거와 같아요. 극소동대.

 

그 다음에 이 몸속에 허공, 무량한 허공이 다 포함되어있다. 허공세계가, 시방허공세계가 다 몸속에 다 들어와 있다. 이렇게 보시고, 그 다음에는 일모단현 보왕찰, 이렇게 말씀하세요. 이 털구멍하나에서 부처님의 털구멍 하나하나에서, 털구멍 하나하나마다 보왕찰을 나타내신다는 거예요. 이 세상에 우주삼라만상을 다 거기에 털구멍하나 속에서 포용하고 나타내신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미진 속에서 미진이라는 것은 모래알보다 더 작은, 그 티끌 같은 그 미진 속에서 부처님께서는 움직이지 아니하시고, 전대법륜, 무공저를 불면서 대법륜을 이렇게 세상에다 펼치신다.

 

그래서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우리가 법성게 할 때 많이 외우는데, 그 일_바로 부처님의 대각의 마음, 진여의 마음, 깨달은 마음속에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된다는 거예요. 다 포함되어서 자유제자로 그렇게 잘 나타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