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심심극미묘 불수자성수연성. ‘불’자가 7자나 14자 밖에 되는데, 이 글자 속에는 아주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어요. 그래서 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법성게는 화엄경을 요약해놨다고 그랬는데, 화엄경이 글자 수로 말하면 몇 자가 되냐 하면 587,261자. 많죠. 그 많은 경전의 글자를 줄여서 210자로 만들어 놨으니까 한자 한자마다 엄청난 깊은 뜻이 담겨 있잖아요. 그래서 좀 어려운 내용도 있습니다.
그래서 진성심심극미묘인데, 진성_진성은 법성이라 해도 되고 불성이라 해도 되고, 그런데 여기에서는 진여자성, 이렇게 얘기하면 됩니다. 진여란 말 들어봤어요? 예. 들어봤을 거예요. 타타타 이런 말 들어봤어요? 타타타가 진여입니다. 어떤 노래도 있죠. 있는데, 그 진여라는 것은 타타타 하듯이 인도어로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식으로 해석하면 타타타는 태우고 태우고 또 태운다는 거예요. 다 태워버리고 남는 자리에요. 나무를 태우면 숯이 남고, 숯을 태우면 재가 남고, 그 남은 재까지도 다 태워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바로 무슨 자리? 진여자리라는 거예요. 진여자리.
그러니까 그 태운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번뇌 망상을 갖고 있는 6식이라고 있어요. 그 다음에 7식이라고 있어요. 7식은 ‘나’라고 고집하는 그런 아집이 있고, 아만이 있고, 아애가 있고, 아치가 있는 그런 7식도 태워버리고, 그 다음에 모든 업이 모여 있는 8식, 아뢰야식, 이런 식도 다 태워버리고 남는 자리가 어떤 자리에요? 진여자리라는 거예요. 진여. 진여자리는 이 허공과 같이 텅텅 빈자리에요. 그래서 여실공이라고 그럽니다. 여실히 공했다.
그렇지만 여실히 공했지만 거기에는 무량한 모형과 또 성덕, 공덕이 다 그 안에 들어있다. 그럽니다. 그래서 진성, 진여자성, 진여인데, 이것을 옛날 스님들도 뭐라고 말을 붙여야 되는데, 뭐라고 말을 붙이면 다 태우고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이것을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냥. 말 붙이면 벌써 이게 어긋난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도 말붙이고, 저렇게도 말붙이고, 말붙였는데 우리 조사스님네들은 뭐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 그냥 일물이다. 이렇게 일물이다 이렇게 한 물건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여놨어요. 또 다른 데는 법성이다. 또 불성이다. 자성이다. 진성이다. 우리로 말하면 본성이다. 또 그렇게 이름을 붙여놨는데, 조사스님들은 그게 일물이다. 이렇게 그냥 이름을 붙여놓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진성, 진여자성, 그것을 일물이라 하고, 거기에 대해서 설명해 놓은 그런 글이 있습니다. 고려 말, 조선 초에 함허득통스님이라는 스님이 금강경오가해를 적었거든요. 거기에 처음 나오는 게 [유일물어차]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다. 그런데 실지로 저거는 한 물건이라고 말하면 맞아요? 틀려요? 틀리지. 텅텅빈 자리니까. 그런데도 뭔가를 말을 하려고 하니까 ‘한 물건이다.’ 이렇게 해놨어요.
그리고 이 한 물건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 ‘한 물건’은 우리 마음속에도 있고, 부처님 마음속에도 있고, 부처님께서 얻으신 그 법력입니다. 법력. 부처님은 이러이러한 내용을 얻으셨다. 그런데 어떤 것을 깨치고 얻으셨냐? 깨달았냐? 이게 한 물건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잘 알지만, 그 한 물건은 [절명상]_이름도 없고 모양도 다 끊어졌지만, 절명상_모든 것이 다 끊어졌지만,
[관고금]_고금이라는 것은 옛과 지금을 다 꿰뚫고 있다는 거예요. 천지가 창조되고 변화되고 파괴되는 이러한 그런 시간들을 부처님 한 생각에, 일물 속에서 다 꿰뚫고 있다.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부처님은. 그러한 것을 깨달으셨다는 거예요. 깨달아 얻으신 거예요. 부처님의 능력에 다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그 다음에는 [처일진]_한군데 있지만, 한자리에 있지만 [위육합]_부처님께서 한자리에 가만히 계시지만 육합이라는 것은 동서남북과 그 다음에 어디죠? 상하, 위아래. 그러니까 동서남북 위아래를 다 둘러싸고 있다. 부처님은 딱 이렇게 보면 이 우주를 다 싸고 있는 거요. 부처님께서. 다 보고 있어요. 이 우주를 다 보고 있고, 우리 마음도 지금 다 보고 있어요. 실지실견한다고 그래. 모든 것을 알고 지금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신다. 그래요.
그다음에 안으로는 [내함중묘]라고 그래요. 안으로는 아주 많은 묘한 것을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함축, 함융하고 있다. 묘한 것이라는 것이 알 수가 없으니까 그냥 ‘묘’자를 이렇게 적어놨어요. 중묘_묘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번시간에도 얘기했지만 그 묘한 속에는 일체 모든 소리를 다 갖고 있고, 모든 광명을 다 갖고 있고, 모든 생명을 다 가지고 있고, 모든 음성을 다 가지고 있고, 모든 법을 다 가지고 계신다. 안으로 그렇다는 거죠. 내함중묘 그래요.
또 부처님은 바깥으로 [외응군기]라는 거요. 외응이라는 것은 또 바깥으로는 모든 군기_중생들에 대해서 그 마음으로 다 이렇게 비추고 계신다는 거예요. 외응군기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동물들 마음속에 또 나무, 옷, 풀, 걸레, 모든 생명 있는 것이나 생명 없는 것, 유정무정들에게 부처님은 응해주신다. 우리가 원하면 다 응해주신다는 거예요. 부처님께서는. 그래서 바깥으로는 모든 근기에 다 응해주신다. 모든 근기에 다 응해주신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주어삼재]다. 부처님께서는 주어삼재, 삼재라는 것은 천지인 삼재 그래요. 우리 한글 만들 때도 천지인 삼재를 본떠서 만들었다 하듯이 천_하늘, 지_땅, 인간의 주인이 되신다는 거예요. 주어삼재 그래요. 부처님께서는 하늘의 주인이고, 땅의 주인이고, 또 사람의 주인이 되신다. 가시는 곳마다 다 주인이 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수처작주 이런 말 들어봤죠? 가는 곳마다 다 주인이 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어삼재_부처님께서는 천지인의 다 주인이 되신다.
그래서 우리 화엄경에서는 부처님을 천인주 그럽니다. 천인주. 부처님께서는 천상과 인간의 주인이시다. 하늘의 주인이고 인간의 주인이시고 또 땅의 주인이에요. 천인주. 또 다른 데는 천인사 그래요. 천인사. 천-인-사_하늘과 인간의 스승, 아이고 잘아시네요. 예.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시다. 부처님께서는 천인주고, 또 천인사, 스승이다.
그 다음에는 그런 말은 없지만 천인부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천인부라는 것은 하늘과 인간의 아버지. 우리가 저 아침저녁으로 예불드릴 때 그러잖아요. 부처님한테 사생자부, 혹시 들어봤습니까? 예. 사생자부가 뭐겠어요? 모든 생명의 아버지시라는 거죠. 부처님께서는. 그러니까 모든 생명의 아버지다. 그러니까 생명이라는 것은 저 지옥에서도 생명이 있고, 인간에도 있고, 저 천상에도 다 생명이 있어요. 그래서 사생자부할 때 아버지 부, 자비로운 아버지시다. 이제 그렇게 하고
법화경 같은 데서는 부처님은 세간지부, 세간의 아버지. 세간의 아버지인데, 세간의 아버지가 중생세간을 보니까 이세상이 다 삼계화택이고, 또 다재환난이여. 많은 환난이 많은 거여. 근심과 괴로움이 많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했어요. [유아일인 능위구호]한다. 오직 내가 중생들을 구호한다. 왜냐? [일체중생은 개시오자] 모든 중생들은 생명 있는 것이나 생명 없는 것이나 유정무정은 다 부처님의 아들이다. 그러죠. 우리도 부처님 아들이죠? 딸도 되겠지. 예.
그래서 부처님은 그렇게 천인부란 말은 없지만, 우리가 생각해볼 때 “아, 부처님은 사생의 자부시고, 우리를 보고 다 일체중생은 개시호자다. 다 아들이다. 그래서 내가 다 구호해야 되겠다.” 이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처님을 마음속에는 자비로운 아버지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렇게 하시면 아마 부처님이 더 빨리 소원 성취시켜 드릴 거예요. 더 빨리. 부처님은 그렇게 천지인의 주인이시고,
그 다음에는 [왕어만법]이라 그래. 이 만법이라는 것 있잖아요. 백법 천법 만법, 만사만법의 만 가지 일과 만 가지 법에 다 왕이 되신다. 부처님은 법왕이시고 만왕이세요. 우리가 그렇게 받아들여야 됩니다. 법왕, 이런 말 들어봤죠? 우리 법왕은 부처님이신데, 비로자나불도 법왕, 이렇게 진리의 왕이시니까 그렇게 하고,
모든 법의 왕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법은 다 부처님한테 속해 있는 거요. 그래서 아함경에는 [무법이부조]라 이런 말이 있어요. 부처님께서 마음도 그렇고 부처님의 인생도 그런데, 무법이 부조라.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법을 만들지 않은 법이 없다. 이런 거예요. 무법이부조. 이 말은 부처님께서 법을 짓지 않는 것이 없다. 만드시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니까 왕어만법이라 그러잖아요. 만법에, 만사에. 우리 만사형통하잖아요. 이 만사에 왕이시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가 받아들이면 아주 소원성치가 또 빠릅니다.
그런데 또 일물이라는 것은 그렇게 많은 작용이 있지만, [선천지이주기시]라고 그래요. 그 일물이라는 것은 천지,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에 벌써 생겼다는 거예요.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에 생겼으니까 누가 그것을 알겠어요. 부처님만이 아신다니까. 부처님만 아는 것을 [유불능지]라고 그래요. 오직 부처님만이 아신다. 천지창조 이전에 시작되어 계셨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 다음에 [후천지이무기종]이라는 거지. 이 천지가 끝나도 하늘과 땅이 성주괴공해서 다 없어져서 가루가 되고 공이 된 상태에서도 부처님의 그 일물이라는 것, 마음이나 법성이나 그런 불성은 천지가 다 무너져도 그때까지도 남아계신다. 그래서 그것을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변하지 않고 항상 처음이나 또 중간이나 끝까지 다 계신다는 거요. 이게 일물이라고 말합니다. 일물이라고 그냥 표현해서 일물이라고 그러는데,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능력을 깨달으셨다는 거요. 우리가 ‘부처님께서 도를 깨쳤다.’ 이런 말하잖아요. ‘법을 깨쳤다. 도를 깨쳤다.’ 그래서 부처님을 대각한다. 그래. 부처님께서는 작은 소각이 아니고, 중각도 아니고, 대각, 그렇게 큰 깨달음을 깨치셨다는 거요. 그래서 대각사가 있고, 대각탑도 있고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큰 깨달음을 얻으셔서 중생구제하러 다니시는데, 타고 다니는 배가 좀 특이해. 우리는 바다에서 배를 타고 가려면 밑바닥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야 물이 안 올라 오잖아요. 그런데 부처님은 [무저선]을 타고 다닌다는 거예요. 무저선이라는 것은 밑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다니신다. 아주 깊은 뜻이 있어요.
그래서 밑바닥이 없다는 것은 뭔가 진저에 타타타 했잖아요. 태우고 태우고 재까지 다 태워서 공한 자리, 공성이라고 또 말합니다. 그렇게 공성의 배를 타고 중생들한테 나아가기 때문에 어디에 치우치거나 가지 않는 곳이 없는 분이세요. 중생 제도하러 갈 때, 어떤 배를 타고 다니시냐? 무저선_밑이 없는 배를 배 밑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다니신다는 거요.
배 밑바닥이 있으면
상이 있는 거예요. 벌써.
집착하는 거고,
“이것이다.”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그냥 무저선이라고 그럽니다.
이것은 설명해서 아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수행을 열심히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해서 “맞구나. 부처님께서는 무저선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어디나 다 가시구나.” 배가 밑바닥이 있으면 물밖에 못 가. 그런데 바닥이 없기 때문에 물이든 산이든 허공이든 먼데든 가까운 데든 내 마음속이든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또 무저선을 타고 어떻게 다니시냐하면 피리를 불고 다니시는데, 어떤 피리를 불고 다닙니까? [무공저]라는 피리를 불고 다니세요. 무공저라는 것은 뭐가 없는 거죠? 구멍이 없는 피리를 불고 다니십니다. 피리가 있는데 구멍이 없어. 그런 피리 있습니까? 그런 것도 없는데 부처님은 신통이 묘용이기 때문에 아주 신통자재하고 신통방통하고 그렇기 때문에 피리가 구멍이 없어도 잘 부셔요.
그래서 구멍 없는 피리를 불고 다니시면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모든 것을, 번뇌 망상 갈등 고민 슬픔을 다 가라앉힌다는 거예요. 그 피리를 우리나라 신라 때는 만파식적이라고 그래. 모든 파도를 다 쉬게 하는 피리라는 거요.
파도를 다 잠재운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번뇌 망상 있죠?
집착하고 그런 잡념들, 이런 것을
부처님께서 불고 다니는 피리를 들으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착 가라앉고, 편안해지신다는 거요.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무저선을 타고 무공저를 불면서 중생 제도하러 다니신다. 그게 진여 자성할 때 진여를 얻었는데 그런 전체 내용이 진여 속에 다 포함되어 있어요. 부처님께서는. 그래서 이것을 자성이라고 그러는데,
이 성이라는 것이 법에 있으면
법이라는 것은 세간법 출세간법해서 이런 물질이 있잖아요.
눈에 보이는 해, 달, 산하, 대지 이것을 법이라 그래.
우리 마음도 법이지만, 그럴 때는 법성이라고 그러고,
우리 개개중생들 마음속에 있을 때는 자성, 그래요. 자성. 우리 자성이 있다. 그러잖아요. 자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동물들도 마찬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다 자성이 있다. 개개인으로 있을 때는 다 자성, 그런 말 하고,
그 성이 부처님한테 깨달으신 부처님 마음속에 있으면 그것을 뭐라고 그러죠? 불성, 그래요. 불성. 그러니까 성은 같아. 진여. 그 성은 진여성, 그래요. 진여성. 진여성품이다. 또 이렇게 말을 붙이지만, 그
성이 법에 있으면 법성,
우리 중생들의 마음속에 있으면 자성.
부처님 마음속에 가면 불성.
그런데 그 바탕은 같다는 거요. 바탕은 다 같다.
진여가 변해서 그렇게 작용을 한다는 거요.
그래서 그런 진성심심극미묘라고 그래. 심심이란 말은 무상심심 미묘법이라고 들어봤죠? 예. 무상심심미묘법. 그렇게 개경게가 무상심심인데, 무위도 없는 심심은, 심심은 매우 깊다. 엄청 깊다는 거요. 알 수 없이 깊다. 바다의 끝을 알 수 없듯이 그렇게 깊은데, 극미묘다. 극미묘라는 ‘극’자는 지극히 미묘하다.
아까도 묘자라는 말이 나왔잖아요. 중묘. 많은 묘한 것을 다 부처님께서는 판명하고 있다. 중묘라는 말을 쓰고, 또 여기서는 미묘란 말을 써요. 미묘. 아주 지극히 지극히 작고, 우리 중생들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미묘하다는 거예요. 묘하다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 부처님께서 깨달은 그 대각을 보살님들의 깨달음을 등각 그래요. 깨달음과 같다. 등각이라 그러는데,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현보살님의 깨달음을 뭐라고 한다 했죠? 등각 그래요. 등각 보다 더 높은 깨달음이 뭐냐 하면 대각, 대각은 묘각이라고 그래요. ‘묘’자가 나왔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경전보고 공부하고 염불하고 하다가 ‘묘’자가 나오면 아, 이 묘자는 부처님하고 관계된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상당히 깊고 높은 글자입니다. ‘묘’자는. 묘하다. 이거야. 알 수 없다 우리 중생들은. 부처님만 아는 경지다. 그래서 묘각이라 그러고.
그다음에 신묘장구대다라니 할 때도 신묘하잖아요. 참 신통하고 묘하다. 기묘하다. 이것은 우리 중생들이 그 깊은 뜻을 알 수 없다. 무상심심미묘법 할 때도 묘하다. 법화경은 뭐라고 그러죠? 묘법 하잖아요. 묘법연화경할 때도 그 묘한 것은 누가 알아요? 부처님이 안다. 우리 중생들이 알기는 알아요. 어느 정도까지는 아는데, 완전히 알 수 없다. 법신보살이라고 있는데, 그가 등각을 얻은 보살님도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보현보살, 이렇게 큰 대보살님도 완전하게 묘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불능지 그래요. 오직 부처님만이 안다.
마찬가지로 진성심심극미묘 할 때 극미묘_지극히 지극히 미묘한 것은 증지소지비어경이라고 그랬잖아요. 깨달은 사람만 알고 나머지는 알 수 없다. 그랬잖아요. 오직 부처님만 아시는 아주 신통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진여라는 거예요. 진여가 그렇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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