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7)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108배 하다가 못 걷는 거 아니에요?

Buddhastudy 2017. 11. 27. 21:04


스님 법문을 듣고 제 업식을 극복하려고 108배를 시작했어요. 근데 최근 둘째를 낳고 무릎이 이상해졌어요. CT 촬영을 하고 의사를 만났더니 제 연골이 다 닳았대요. 뒤쪽은 거의 안 남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릎을 완전히 꿇었다 펴면 뿌드득 소리가 굉장히 심하고, 좀 하면 통증이 동반이 돼요. 그래서 잡념이 자꾸 생기는 거예요.

 

이러다가 나중에 못 걷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기도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아픈 거에 더 집중을 하게 돼요. 기도하는 중에요. 그래서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되어서, 108배를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했거든요.

 

저에게 두 살 아이와 다섯 살 아이가 있어요. 아이들을 더 낫게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108배를 하는데 이 잡념 때문에 고민이에요. 의도와 전혀 다르게 기도할 때마다 딴 생각 때문에

108배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여쭤보고 싶어서 왔어요.//

 

이 지구상에 한 70억 인구가 사는데,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108배하는 사람이 몇 명될까요? 그 사람들 다 잘 살아요.

 

좋은 일이 있으면 다리가 부러져도 해야지.

지금 말은 조금 모순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완전히 무릎을 굽혔다가 펴면 관절에 나쁜 영향을 주니까, 완전히 굽히지 말고 한 반쯤 굽혔다가 펴면 무릎에는 큰 이상이 없다. 이렇게 의사가 얘기해서 한 반쯤 굽혔다 폈더니 힘이 더 든다 했잖아요. 힘이 더 들면 어때요?

 

아니아니, 완전히 굽혔다 일어나면 의사 선생님 말씀이 무릎에 안 좋다고, 그래서 조금만 굽혔다가 펴는 것은 괜찮다고 그랬잖아요. 그럼 조금만 굽혔다가 펴면 자긴 더 힘들다며? 힘들면 어떠냐는 거요.

 

그러니까 그것을 나한테 물어봐야지 그러면. 그러니까 108배는 이마가 당에 닿아야 됩니까? 안 닿고 반쯤 굽혔다가 펴도 됩니까?” 이렇게 물어야지.

네네. 이제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는데요, 절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왜 도움이 되느냐? 이게 중요한 거요.

 

수행이라는 것은

육체의 노동이 아니에요.

마음의 작용이지.

 

그러니까 만약에 그러면 두 무릎을 못 쓰는 사람은 수행을 못한다는 얘기 아니오. 절을 못하니까. 그럼 그 사람 참회도 못한다. 이런 얘긴데, 그렇지가 않다는 거요.

 

이 몸이라는 것은

마음을 따라 움직인다.

 

이런 얘기요. 여러분들이 두 사람이 누워서 소곤소곤 얘기를 하다가 서로 의견차이가 생겨서 ? 그거 아니란 말이야?” 이런 생각이 날 때 계속 누워서 그거 아니야. 그거 아니야.” 이렇게 할까, 벌떡 앉을까? 어느 쪽이에요? 벌떡 앉아서 얘기하겠죠.

 

그럼 두 사람이 앉아서 얘기 하다가 의견차이가 나면

계속 앉아서 말다툼 할까? 벌떡 설까? 서서 얘기 하겠죠.

 

서서 얘기하다가 의견 차이가 많이 나면

고개를 쳐들고 할까? 숙이고 할까? 쳐들고 하겠죠.

 

그 다음에 눈을 부릅뜨고 할까? 내가 깔고 할까?

부릅뜨고 하겠죠.

그러면 사람이 서서 고개를 쳐들고 눈을 부릅뜬다. 할 때가 성질이 났을 때 몸이 그렇게 반응하잖아. 그죠? 이럴 때가

 

내가 옳다! 내가 맞다! 내가 잘했다!” 하는 것이 가장 강할 때,

다시 말하면 아상이 가장 강하게 뭉쳤을 때

우리 몸의 자세가 ?”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다가 , 내가 잘못했네.” 이런 생각이 살짝 스쳐 지나가면 부릅뜬 눈이 약간 감기겠죠. 그럼 쳐든 고개가 어떨까? 약간 숙여지겠죠. 더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허리를 숙이겠죠. “미안합니다.” 더 잘못했다면 무릎을 꿇고, 더 잘못했다면 이마를 땅에 대고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이렇게 말한단 말이오. 그러면

 

스스로 무릎을 꿇고 이마가 땅에 닿았다.

그럴 때는 내가 잘한 게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하면 아집이나 아상을

완전히 내려놨을 때의 몸의 자세다.

 

그러니까 우리 몸이라는 게

마음에 이렇게 반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다

내가 옳다.”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거란 말이오.

화가 나서 짜증이 날 땐 다 내가 옳고,

네가 그를 때 이 심리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 식으로 나타나니까,

 

그럴 때 아이고 제가 부족합니다.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제가 잘못 했습니다.”라는 마음이 들면 저절로 이렇게 고개가 숙여지고 허리가 숙여지게 되어 있다. 이 자세가.

 

그래서 우리가 이 스트레스를 풀려면 제가 부족합니다.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라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한데, 그것의 표현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는 거다. 최대로 표현하는 게. 그런데 우리가 마음이라는 게 잘 안 숙여지는 거요.

 

마음이 숙여지면

몸은 자동으로 숙여져요.

 

그런데 마음이 잘 안 숙여진다.

그러니 우리가 거꾸로 해보는 거요.

억지로라도 몸을 숙여보는 거요.

 

그러면 마음이 따라 또 숙여지는 성질이 있어요. 제 말 이해하셨어요? 일단 먼저 뭐부터 숙이면?

 

몸부터 숙이면

이렇게 쳐들고 있는 것 보다는

억지로라도 숙이면

마음이 따라 숙여지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절을 한다.

절을 하는 이유는.

 

그런데 절을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 108배하면 좋다더라.” 좋다더라 하는 것은 욕심이잖아. 그죠? “삼천배하면 좋다더라.” 이렇게 해서 둘이 절을 하면서 , 너는 몇 배 했노?” “300배 했다.” “, 빨리했네. 나는 200 밖에 못했는데.” 이렇게 할 때는 절은 하지만 마음이 숙여지는 성질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혀 없어요. 이런 절일 때는. 그럼 이것은 참아내기, 힘든 것을 참아내기 하는 극기 훈련이나 육체적 달련의 효과는 있지만, 우리가 수행차원에서 마음을 숙인다는 개념은 전혀 없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절을 할 때 어떤 자세로 절을 하느냐?

마음이 안 숙여지는 것을 억지로라도 숙이기 위해서 절을 하면

수행에 도움이 되고,

 

이렇게 하면 심리가 더 강해지는 거요. “너 몇 배 했어. , 그렇게 많이 했어. 안 되겠다. 나도 더 빨리해야지.” 이렇게 마음이 더, 아상이 강해지면서 절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절은 극기 훈련이나 육체적 단련을 위한 수련은 되지만 수행하고는 거리가 먼 거다.

 

그럼 이렇게 절을 할 때는 주로 어떤 사람이 이렇게 절을 하느냐? 마음을 숙이는 게 절의 원리인데 절하면 좋다더라 하는 욕심으로 절을 한다. 기복으로 절을 하면 횟수의 급급하다는 거요. 한배라도 더 하면 우리 아들 시험에 걸린다.” “복을 더 많이 받는다.” 이렇게 절을 할 때는 이것은 원래 절하는 마음을 숙이는 효과는 전혀 나지 않는다. 이렇게 절을 하면 제가 이렇게 말하죠.

 

절한다고 수행이 아니다.

절을 만 배하는 거 보다

마음 한번 숙이는 게 더 좋다.

 

이렇게 말을 한다. 이 말이오. 그러면 또 절하기 싫은 사람은 이 말이 귀에 번쩍 들어오는 거요. “, 절 할 필요가 없네.” 이렇게 들으면 이것도 또 잘못 듣는다. 왜냐하면 절을 하면 힘들잖아. 그죠. 힘드니까 마음을 숙이기 위해서 절을 하다가도 절하는 육체가 힘드니까 마음을 숙이는 게 싫은 거요. 그래서 절을 하다가 집어치워버린다. 이 말이오.

 

우리는 때로는 힘든 것을 이겨내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절을 하는 거니까 외 참회, “제가 부족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수행을 할 때 절을 하라는 것은 이런 원리 때문에 절을 하라는데, 다리가 부러진 사람은 육체적으로 절을 할 수 없잖아요. 그러면 앉아서 제가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하고 마음을 숙이는 게 원래 절의 원리요. 그것을 육체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무릎이 관절이 닳아서 못한다하면

앉아서 허리만 굽혀도 되고,

또 반절만 굽혀도 되요.

 

그런데 절이 하기 싫은 사람이 이 말을 듣고, “, 그러면 괜히 다리 아픈데 할 거 없이 그냥 앉아서 허리만 굽히면 되겠네.” 이러면 절의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마음을 숙이지 않기 때문에. 정말 마음을 숙이고 싶은데, 몸이 불편한 사람은 절을 하지 않아도 참회를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자기가 약간 내가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는 자기가 절을 하면 기분이 좋고, 절을 안 하면 좀 찝찝하다 하는 것은 절을 해냈다 하는 그런 감정 때문에 그래요. 그것은 누구나 다 일어나는 어려움을 극복하면 일어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무릎이 아픈데도 억지로 절을 하는 것은 좋은 게 아니다.

 

그런데 절은 우리가 손가락이 아프면 움직이지 마라.” 하기도 하지만 재활치료를 할 때는 아파도 천천히 움직이는 게 좋다.” 이런 이론도 있지 않습니까? 그죠. “무릎이 아프니까 걷지 마라.” 하는 이론도 있지마는 무릎이 아프다고 안 걸어버리면 관절이 더 나빠진다. 무릎이 아프더라도 조금 운동을 해줘야 오히려 관절에도 좋다.” 이런 것도 있다. 그러면 자기가 108배 정도 하는 것은 관절이 좀 문제가 있다하더라고 108배 정도 하는 것은 재활치료 효과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하는 이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론이라는 것은 딴 게 아니라 관절을 정도가 어느 정도냐. 관절에 나쁜 정도가 어떤 정도냐. “움직이기만 해도 나쁩니다.” 할 때는 절을 하면 안 되고, “천천히 움직여주는 것은 안 움직이는 것 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하면 절을 천천히 하면 되요. 다시 말하면 108배를 15분 할 거를 30분으로 늘려서, 딴 사람 3번 할 때 한 번하는 속도로 천천히 하면 관절에 무리가 안 간다.

 

예를 들면 제가 평상시에는 15분 만에 108배를 하다가 단식을 할 때는 한 30분 만에 하거든요. 이유는 빨리 일어났다가 빨리 숙이고 빨리 일어나면 단식 중에는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저혈압상태가 되기 때문에. 그러면 일어나면 핑 돈다 이 말이오. 그럼 천천히 일어나줘야 되는 거요. 그러니까 그것이 108배를 다 채운다도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108배 정도 하면 육체의 운동에 아주 좋습니다. ?

 

108번 정도 절을 하면 몸에 땀이 배일 정도입니다. 지금 같은 요런 정도의 온도에서. 그러니까 운동 상태가 가장 적당하다는 거요. 그래서

 

종교에 관계없이 108배 절을 하면

첫째 육체에 좋습니다. 전신 운동이 된다.

두 번째 다른 운동은 육체 운동에만 끝나는데

이것은 숙여주는 운동이기 때문에

마음이 숙여지는데도 도움이 된다.

 

거기다가 스스로 마음을 내어서

자기가 반성하면서 절을 하면

더더욱 좋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예외 상황에 속하죠. 무릎에 문제 있다면 의사의 진찰을 받아서 절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하면 절을 하면 안 되고, 앉아서 머리를 숙이는 절을 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 다음에 의사가 급하게 하면 관절에 무리가 가니까 천천히 하십시오.” 그러면 속도를 늦추는 방법이 있다.

 

그 다음에 그렇다 하더라도 108번 까지 하는 것은 무리다 하면 절반을 잘라서 50배를 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은 내가 절이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게 아니고, 육체의 주어진 조건에 맞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런 얘기요. 그럼 그것을 내가 50배만 했기 때문에, “108배를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찝찝하다.” 하면 그것은 절을 하는데 집착해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여러분들 듣는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힘들어도 억지로라도 매일 해야 수행이 되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은 이 법문을 딱 들으면서

, 꼭 안 해도 되네.” 이것만 귀에 쏙 들어옵니다.

그런 사람은 꼭 해야 되요. 안하면 안 돼요.

 

그런데 이런 사람은 다리가 아픈데도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안하는 게 공부다. 해야 된다는데 집착되어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육체는 맞추어야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희 절에서는 108배를 몸이 아파서 못하는 경우는 염불을 시킵니다. 108배 절하는 것은 참회 정진이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주력이라고 해서 집중, 아주 소리에 집중하는 명상인데, 이것은 1080번을 해야 되요. 그런데 절 한번 할 동안에 이것을 몇 번한다? 10번 하는 것을 대체해서 하는 게 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해도 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