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제가 저를 돌아보니까 제가 되게 계산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친구든, 부모님이든, 남편이든.
그래서 그것을 좀 고치고 싶은데 어떤 기도를 해야 될지...//
계산도 할 줄 아는 것은 좋은 건데 왜 고쳐요. 계산
무슨 소리안지 못 알아듣겠어. 안하면 되지 그럼.
모든 사람들이 다 계산적이에요.
첫째, 고칠 필요가 없어요.
두 번째 고치고 싶으면 고치면 되요.
안 고치면 안 고쳐지면 “안 고쳐지네.” 이렇게 알면 되요.
안 고쳐지면 “안 고쳐지네.” 이렇게 알면 된다고. “아, 그게 잘 안 고쳐지네.” 이렇게 알면 된다고. 얼마나 쉬워.
자기만 계산적인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계산적이기 때문에
첫째, 안 고쳐도 된다.
고쳐야 될 이유가 별로 없어.
그런데 자기가 고치고 싶다면 고칠 수도 있다. 이 말이오.
고치고 싶으면
고치면 되잖아.
고치고 싶은데 안 고쳐진다가 아니고
생각은 고쳐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이 고치지가 싫어.
고치기 싫은 이유가 뭘까?
“사람이 다 그렇지 뭐.” 이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안 고쳐도 된다는 거요. 자기가 고치기 싫어하기 때문에.
고치고 싶은데
안 고쳐지는 것은 없어요.
고치기 싫어서 안 고쳐지지.
“뭐뭐 해야지.” 하는 것은 생각이고,
“뭐뭐 하고 싶다.” 하는 것은 마음이다. 이 말이오.
가야되는데 하는 것은 생각이고
가기 싫어하는 것은 마음이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가고 싶은데 못 간다. 이런 것은 없다. 이 말이오.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거지. 가기는 가야 되는데, 가기가 싫어서 내가 안 가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계산하면 안 된다.”고 누가 얘기하니까 “계산 안해야지.”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계산이 된다 이 말이오. 말귀 알아들었어요?
왜 나도 모르게 자꾸 계산이 될까?
계산 하고 싶어서 그런 거요.
그럼 계산하고 싶으면 계산해도 돼. 나만 하나? 다 하는데.
그런데 나는 “안 하겠다”고 생각을 해도 이 마음이 계산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꾸 계산이 되는 거요.
“일어나야 되는데, 일어나야 되는데. 일어나야 되는데” 이게 무슨 말이오?
“일어나기 싫다.” 이 말이오.
“계산 안해야 되는데, 안 해야 되는데, 안 해야 되는데” 이게 무슨 말이오?
계산하고 있는 거요.
그러니까 일어나야 되는 데라는 것은 일어나고 싶어 하는 게 아니고, 일어나야 되는 데라는 의식,
이 생각은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마음이 일어나고 싶지가 않아.
이유는 뭐 피곤하든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러니 일어나고 싶지 않아서 안 일어날 뿐이지.
그러니 일어나기 싫으면 안 일어나면 돼.
그러니까 일어나고 싶은데 못 일어는 게 아니고,
일어나야 되는데 된다고 생각하는데
일어나고 싶지가 않아서
자기가 안 일어나는 거요.
그럼 일어나고 싶은데 못 일어난다. 그것은 어떤 경우일까?
허리가 다쳐서 못 일어날 때. 아시겠어요?
그때는 정말 일어나야 되는 데가 아니라, 일어나고 싶어도 몸이 안 움직여져서 못 일어날 때, 이때는 일어나고 싶은데 허리가 다쳐서 못 일어난다. “가고 싶은데 다리가 다쳐서 못 간다.” 이럴 때는 말이 되요.
그런데 지금 자기가
“계산하고 싶지 않는데 계산이 된다.” 그건 아니오.
“계산하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계산이 된다.” 이렇게 되는 거요.
왜 계산이 되는가?
받고 싶으니까.
그럼 계산을 하면 되요. 계산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계산이 안 맞으면 자꾸 괴로워지는 거요.
그럼 괴로워하면 되는 거요.
괴로워하기 싫다. 괴로워하고 싶지가 싫다. 그럼 계산을 안해야 되는 거요. 그럼 계산을 안해야 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되니까,
“아이고 이거 자꾸 되네.
자꾸 계산이 나도 모르게 되네.
계산이 자꾸 되네.”
이렇게 알아차리면 되는 거요.
계산하고 있는 나를 알면 된다.
계산하고 있는 나를 안다는 것은 뭐요?
이 괴로움이 상대편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계산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거요.
괴로움을 받으면 되고.
대게 괴로우면 계산이 안 돼요.
다시 말하면 일어나기 싫어서 안 일어나는데
옆에서 탄이 팍 터지면 일어나져요.
두 번째 ‘누가 천만 원 준다.’ 그러면 벌떡 일어나서 가요.
그러니까
안 일어나면 손해가 막심하거나
일어나면 이익이 막강하거나 하면 어때요?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게 된다.
사람이라는 게 누구나 다 그렇게 되요.
그러니까 그것은 못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거 뭐, 그거 천 원 준다하면 안 일어나요. “에이, 그거 천원 그거 받아 뭐해” 싶어서. ‘천원 손해난다.’ 그러면 “천원 주지 뭐.” 이래서 잘 안 일어난다 이 말이오.
그런데 자기가 만약에 아침에 못 일어나는데, 자동으로 3번 해서 못 일어나면 시계하고 자기 몸의 전류와 연결이 되어 팍 지져버리면 “억!”하고 일어겠죠. 3번만 지져버리면 나중에 “따르릉” 소리 나면 지지기전에 일어날까? 지진 후에 일어날까? 지지기 전에 일어날까? 지지기 전에 일어나요.
그러니까 자기는 계산을 하는 것은 특별히 나쁜 것은 아니다.
나쁘다 좋다가 아니라
계산을 하게 되면 자기한테 괴로움이 돌아오니까
괴로움을 받든지,
그게 너무 힘들면 계산을 덜해야 되는 거요.
그런데 자꾸 되는 것은 이게 안 고쳐지면 “내가 잘 안 고쳐지네. 괴롭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이렇게. 그 대가가 심하면 고쳐져요.
그래서 의지대로 우리가 안 되는 거요. 그래서 무슨 말이 있다? ‘작심 3일’ 이런 말이 있는 거요. 그런데 우리는 안 그래요. 자기처럼 다 그래요. 모든 사람이. 조금 도와줬으면 인사 듣고 싶고. 그래서 다 미워하는 거요.
그러니까 길가는 사람을 미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자기 아내를 미워하든
자기 남편을 미워하든
자기 부모를 미워하든
자기 자식을 미워하든
자기 친구를 미워하든 이러지.
거기서 뭔가 받고 싶은데
그게 안 되어서 미움이 생겨요.
길가는 사람은 왜 안 미워하느냐?
그건 내가 아예 기대를 안 하거든요.
그래서 이건 계산이라는 말보다는 ‘기대한다.’
기대하면 뭐가 생긴다? 실망이 생기는 거요.
실망이 크면 뭐가 된다? 미움이 생기는 거요.
기대란 누구나 다 기대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은 내 뜻대로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어요.
안 될 때는 그만이오.
그건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선택하는 건데,
내가 원하면 되는 것처럼 내가 착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로부터 일어나는 괴로움이오.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그래요. 함부로 한다는 것은 뭐냐 하면 화도 잘 내고 짜증도 내고. 그것은 뭐냐 하면 .
우리는 심리 작용 중에 즉, 정신작용 중에 의식, 생각하는 작용이 있고, 의식이 있고, 무의식이 있어. 잠재되어있는 정신 작용이 있다.
우리가 말하는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의지라고 하는 것은 의식의 영향을 받고
우리가 말하는 마음이다. 느낌이다. 이런 것은 무의식의 영향을 받아요.
그런데, 아무리 우리가 성격이라는 것은 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것을 성격이라고 그래. 그러면 ‘짜증을 잘 낸다.’ ‘성격이 급하다.’ 이런 게,
의식이 무의식을 통제를 할 때,
일시적으로 통제가 되요. 장기적으로는 통제가 안 돼요.
그러니까 그 말의 대표적인 게 뭐요? 작심삼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아무리 통제해도 며칠까지만 통제가 된다?
3일까지만 통제가 되지 더 이상은 안 된다.
그럼 이 무의식을 고치기가 어려워.
그래서 뭐라고 하냐?
“저 인간 저게 천성이다.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런 말을 하는 거요.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저거 못 고친다. 이 말이오. “천성이 변하는 거 보니 죽을 때가 다 되었구나.” 그 말은 못 고친다는 얘기요. 그만큼 무의식은 변화가 잘 안 일어나.
‘성격이다. 성질이다’ 하는 것은 이미 안 변하니까 성격이다. 성질이라는 말이 붙는 거요. 성격이나 성질이 안 변하는 게 아니라, 잘 안 변하니까 이름이 뭐라고 붙었다? 성격이다. 성질이다. 이렇게 붙었다. 이 말이오. 이름이.
그래서 회사 가서 잠깐 어떤 사람을 만날 때는 긴장을 할 수가 있다. 긴장한다는 것은 의식이 무의식을 딱 통제를 해요. 그런데 집에서 일상 생활하는데 계속 진장해서 살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집에 오면 방심, 긴장을 놓는다. 이 말이오. 그러면 무의식이, 버릇이, 성질이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출이 되는 거요.
그래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짜증도 잘 내고, 성질도 잘 내고, 이렇게 자기 생긴 대로, 성질대로 사는 거요. 밖에 가면 성질대로 살면 손해가 많이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가서 말괄량이가 얌전한척 하고, 이렇게 여러가지 자기 성질을 숨기고, 이렇게 화장한 얼굴처럼 이렇게 잠깐은 할 수 있어.
그런데 가족하고는 잠깐이 아니잖아. 회사 가서는 하루 몇 시간 잠깐 통제하지만, 집은 계속 같이 있으니까 통제가 안 돼요. 그래서 자기 생긴 대로 나오는 거요. 누구나 다 그래. 자기만 그런 게 아니고.
그래서 “우리 남편은 남한테는 생글생글 웃으면 나한테는 짜증낸다.” 그러면 그 인간 원래 성질이 짜증내는 인간이오. 그러니까 나한테 짜증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요. 그런데 그 인간이 남한테도 짜증내고 나한테도 짜증내는 게 좋아? 나한테는 짜증내더라도 남한테는 짜증 안내는 게 좋아? 남한테라도 짜증 안내면 낫잖아. 그죠? 나는 받아줄 수 있지만 남은 안 받아줄 거니까. 그건 손실이 많다 이 말이오.
그래서 가족한테는 성질대로 나오기 때문에 특히 우리가 가족한테 더 유의를 해야 되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성질은 못 고치니까 쉽게.
그래서 가족한테는 항상 어떻다? “미안하다.” 이런 마음을 내야 돼.
그러니까 성질을 고치고 같이 사는 방법도 있고,
성질은 내되, 빨리 사과하는 방법이 있어요.
화를 팍 내놓고는 “아이고, 여보. 미안해. 내 성질이 더러워서.” 자꾸 이렇게 얘기하면 어떨까? 사는데 별 지장이 없어요. 성질을 내놓고 나보고 잘못했다고 자꾸 뭐라고 그러면 기분이 나쁜 거요. 그런데 지가 성질내놓고 지가 금방 “아이고 성질이 더러워서 죄송해요.” 이렇게 얘기하면 그냥 웃고 만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성질내는 건 좋은데, 성질 내놓고 빨리 뭘 해야 된다? 성질 더러운 거 알아차리고 사과를 해야 돼. 그렇게 자꾸 자꾸하면 성질이 좀 고쳐져요. 사과를 안 해요 여러분들은. “나만 성질 더럽나? 너는 안 더럽나?” 자꾸 자기 성질을 두둔한다. 이 말이오. 그래서 안 고쳐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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