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0)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20회) 가사에 소홀한 아내

Buddhastudy 2010. 7. 1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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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옛날에는 남자만 사람이었어요. 여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자에 딸린 사람이지. 독립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이오. 그래서 종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고 항상 주인에게 소속된 존재이지 않습니까?. 여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어릴 때는 자기 혼자 이름을 못 불리고 아무개의 딸이라고 불리고. 결혼하면 아무개의 아내라고 불리고. 늙으면 아무개의 엄마라고 불렸어요. 이게 얼마 전 까지 남아 있었던 호주제도 있지 않습니까? 그죠? 거기에 호주제도에 호주, 호주라는 란이 있고. 거기 아버지 이름이 들어갔다가 결혼하면 누가 들어갔다? 남편이 들어갔다. 남편이 죽으면 거기 아들 이름이 들어가고. 이런 잔재는 옛날에 여자가 사람으로 평가 못받을 때 인정 못 받을 때의 그 유산이란 말이오.

 

서양에서도 여성은 선거권이 없었던 게 오래됬죠. 선거권있는 거 얼마 안됩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땅을 분배하거나 세금을 거두고 할 때 여자는 땅도 안주고 세금도 안거둡니다. 아시겠어요? ? 개한테 세금 안거두듯이 사람이 아니에요. 남자만 가지고 인두세도 거두고 거기에 다른 땅도 배분하고 이렇게 하는거요. 그러면 여자는 남자가 하는 일을 뒤에서 보완하는 역할입니다. 그게 뭐냐? 가사를 돌보고 아이를 키우고 이런 일이란 말이오. 밖에 일은 다 남자가 하는거요. 대외적인 거는. 그런 문화 속에서 우리가 자라오다가 지금 들어오면서 어떠냐? 여성을 법률적으로 남자와 똑같이 한 사람으로 취급을 하고. 교육기회도 똑같이 주어지고. 직장을 얻을 기회도 똑같이 주어진단 말이오.

 

그러면 할머니 세대는 완전 전업주부였고. 어머니세대는 전업주부가 다수고 조금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고. 우리 세대에 오면 거꾸로 전업주부가 적은 이런 시대에 왔단 말이오. 그러니까 나의 의식에 형성 된 거는 어머니를 보면서 전업주부의 부인관을 가지고 있단 말이오. 그런데 내가 사는 현실은 안그리됬다 이 말이오. 여기서 오는 문제요. 그런데 사람이 우선 살려면 사람이 뭐가 있어야 산다 그래요? 밥을 먹어야 산다 이러잖아요. 밥 안먹고 사는 사람 없죠. 밥 먹으려 산다 이 말이 물질을 말합니다. 사람은 살려면 물질에 있어야 되. 그런데 사람은 밥만으로 살 수가 없다. 성경으로 말하면 뭐가 있어야 된다. 말씀이 있어야 되. 말씀. 빵만 먹고 산다면 짐승하고 별 차이가 없다 이 말이오. 말씀이 있어야되.

 

이 말씀이라는거는 다른 측면으로 말하면 인간은 뭔가 나름대로 자기의 꿈이 있고 희망을 가지고 산다 이런얘기요. 그것이 기독교 같으면 구원이라든지 불교 같으면 깨달음이라든지 이렇게 되겠죠. 그럼 꼭 그게 아니라도 누구나 다 꿈과 희망이 있어야 되는데. 지금 자살하고 이런 사람들은 꿈과 희망이 사라졌어요. 먹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꿈과 희망이 사라져서 여기도 지금 앉아 있는 중에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이 많을거요. 욕심은 있는데 꿈이 없다 이 말이오.꿈이 있으면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한단 말이오. 옛날에 배고플 때는 하 좀 잘살아 보세하는 게 뭐가 될 수 있었다? 꿈과 희망이 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헝거리 정신은 거의 없어졌단 말이오. 배고픈 시대를 지났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 분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이 있어야 되. 그러면 여성들이 직장 다니는것은 직장에서 자기 삶의 보람이 있어야 되. 돈 버는것도 있지만. 거기서 삶의 보람이라는 게 있다는 거요. 만약에 남자분들 돈 줄테니까 니 집에서 가만히 앉아 있어라. 될까? 돈을 버는게 목적인거 같지만 사실은 거기서 자기의 존재감을 끊임없이 확인한단 말이오. 그런데 지금 여성들도 그렇게 똑같이 교육받고 이렇게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걸 그만두고 집에서 애나 키우고 있다면 우울증 걸려요. 그러니까 경제 문제를 넘어서는 문제다. 그러니까 어려워서 직장을 구해서 밥먹고 살려고 직장을 구하면 이것은 빵이 있어야 산다는거. 빵을 먹어야 산다는 것이고. 지금 부인이 직장 다니는건 빵만으로 살 수 없는 말씀이 필요한 사람이란 말이오. 오직 돈 때문에만 간다면 이 얘기가 먹혀 드는데. 그리고 거기 자기 실현이라는 게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이 가사 생활을 내 돈벌어 줄 테니 집안 일이나 해라. 그것은 내가 볼 때는 해당 될지는 몰라도. 여성의 입장에선 그것만 가지고 해결 안되요. 여성이 이런 사람은 될 수 있겠죠. 돈 때문에 직장 다니는 사람은 남편이 돈만 좀 벌면 직장 때려 치워 버리고 집에서 애나 키우고 다른 취미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은 되는데. 자기 실현을 나름대로 거기에 사는 사람에게는 돈 문제가 전혀 아니에요. 그런데 남편이 이런 관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아내가 지치고 병들죠. ? 자기 실현을 위해서 직장 생활을 해야되고 남편 눈치보면서 뭐도 해야 된다? 가사노동도 잔소리 안들을 만큼 하려고 그러면 엄청나게 지치죠. 그러면 아내를 죽이는거란 말이오. 병드는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안되요. 여러 분들이 사회에서 늘 돈으로 환산하던 습관이 있는데.

 

나 같은 사람한테 절에 와 가지고 내가 저 사람보다 돈 두 배 더 냈으니까 이렇게 폼 잡아 봐요. 스님한테 먹힙니까?. 안먹히지. 그거 안먹히니까 그래도 중의 가치가 있는거 아니오. 그게 먹힌다면 세속 아니오. 그런데 자꾸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받아 들여 진단 말이오. 그런것처럼 아내는 이미 다른 차원에서 인생을 사는데. 자꾸 이런 얘기로 했으면 어렵다는거죠. 반발 하든지 안그러면 살려면 그걸 참고 살아야 되니까. 이게 기쁨이 자꾸 적어지고 육체가 병들죠. 그러니까 아내의 그러함을 존중해야 되요. 그래서 내가 오히려 돈 버는걸 약간 시간을 내서 설걷이를 같이 한다든지. 방청소를 같이 한다든지. 오히려 이런 식으로 삶을 맞춰야 되 부부니까. 만약에 내가 벌면 되지 너는 뭐.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거는 시대에 안 맞는 옛날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건 질문하신 분의 생각을 바꾸셔야 된다. 이 지금 생각을 바꿔도 이게 습관이 되서 탁 순간순간 안됩니다. 아시겠어요? 그런데 생각을 안 바꾸면 이건 고쳐질 가능성이 없어요. 그러면 이렇게 계속 살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삶의 재미가 떨어지죠 아내가. 그러면 아내가 약간의 우울증이 생기거나 삶의 재미가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날까요? 그건 누구한테 최고의 영향을 줍니까? 아이들 한테 바로 영향을 줘 버립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돈 버는 게 다 애들 잘 키우려고 하는데. 실제는 애들을 완전히 나쁘게 만들어 버리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현명하지 못한 태도다. 항상 여러분들 남편은 아내가 생기있게 살고 자신감있게 살도록 도와줘야 됩니다. 그게 자녀를 위한 최고의 교육입니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 일수록. 그래서 어릴 때 자꾸 남편 생각 하거나 갈등 때문에 애 안고 울고 이러면 애 농사는 완전 망쳤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그게 언제 드러나느냐? 사춘기 때 드러나고 성년이 되면 드러납니다. 그래서 여성들도 직장생활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애를 낳은 엄마. 여성으로서의 권리가 있고. 애의 엄마로서의 의무가 있어요. 그런데 여성의 권리하고 애 엄마의 의무하고 어느 게 더 크냐? 애 엄마로서의 의무가 더 커요.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더 주장하시면 애를 안 낳아야 되요. 적어도 애를 낳았다 하면 애로서의 권리가 더 크다. 그 이유가 뭐냐? 내가 애를 낳았다는것은 나는 선택했지만 애는 선택을 안했죠. 일방적이잖아 그죠? 그러니 이건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거요.

 

결혼은 서로의 반반의 책임이 있어요. 그것은 내가 부모님이 나한테 많이 배풀어 줬어요. 그래서 내가 부모은혜를 갚아야 되는데도 자식은 부모 말 다 안 들어도 괜찮아요. 이것은 원리로 보면 큰 죄가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 이건 누구한테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게 선택한게 아니에요. 그래서 자식이 말 안듣는다고 자식이 크게 나쁘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요. 부모말 잘 들어 훌륭한 사람 된 얘기가 극히 드뭅니다. 이 세상의 이 부처님부터 예수님부터 훌륭한 사람들 다 부모말 들었어요 안 들었어요? 독립운동가들 다 부모말 안들었어요. 안중근 부모말 들었을까 안들었을까? 이런걸 좀 생각해 봐야 되요. 무조건 애가 엄마 말 잘 들으면 착하다 착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이고 우리 애 이거 망치는 거요. 애가 사춘기 되면서는 자기 생각이 있고 부모 말에도 이의도 제기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주장도 있고. 이렇게 할 때 오히려 기분은 좀 나빠도 우리 애가 나보다 더 큰 인물 될려나 보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된단 말이오.

 

그리고 아이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다 씨앗으로부터 일어나는 거요. 그 씨앗이 형성되는 게 주로 어릴 때 형성됩니다. 주로 엄마의 품에서 있을 때 형성이 되요.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남편이 뭐라 그러든 관계 없이 내 아이를 위해서 자기의 삶을 아주 행복하고 소중하게 갖는 게 좋고. 남자라면 그 아이를 내가 마음대로 못하고 그 아내의 품안에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아이를 위하는 길은 아내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게 바로 아이를 위하는 거요. 시어머니가 됬다면 며느리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게 손자를 위하는 길이다. 그런 관점이 딱 서야 됩니다. 그래서 이 분은 조금 생각을 오늘부터 바꾸셔야 되. 바꿔도 잘 안 되는데. 오늘 탁 바꿔 버려야 아..이렇게 삶의 방식을 바꿔야 됩니다. 그래야 아이 한테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