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9)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462회] 부대에 싫은 사람이 있어요

Buddhastudy 2019. 1. 23. 20:15


저는 이제 지휘관으로서 모든 부하들을 다 아우르고 해야 되지만,

어떤 부대를 가면 정말 어떤 간부들은 정말 기대에 못 미친다는 그런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너무 싫은 사람이 있는데 이럴 땐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말씀 듣고 싶습니다.//

 

 

자기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래요.

선생님들도 얘기 들어보면 그렇고.

선생님이 애들 가르칠 때 쟤만 없으면 내가 문제가 없겠다.” 이런 게 있는데,

상대적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과일을 따져도 10개를 사오면 그 중에 제일 작은 게 있어요? 없어요? 있죠.

요것만 작나? 그것도 던져 버리면 그중에 또 작은 게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그러면 그 인간 없으면 이게 없어지냐, 아니에요.

그 인간이 없으면 다른 인간이 또 그렇게 보여요.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누구나 다 가지는 것인 동시에 그게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는 거요.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사람이 아주 나한테 걸리면 다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거요. 그 사람 때문에.

요 사람이 없으면 요게 또 문제인 사람이 되는 거요.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 나한테 좋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역할을 해요.

한 애가 꽁지를 해줘서

다른 애들이 다 꽁지를 면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관점을 자기면 조금 싫기는 하지만,

사람이 싫은 건 어쩔 수 없어요.

왜냐하면 무의식에서 올라오니까.

안 싫어해야지한다고 안 올라오는 거 아니니까.

 

그러니까 안 싫어해야지하면 실패해요.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싫어하는 건 문제가 안 돼요.

싫어하는 거와 미워하는 거는 틀리거든요.

싫어하는 거를 없애야 된다고 생각하면 미워하게 되는 거요.

 

싫음은 일어나지만

그런 사람도 역할이 필요하다.

저 사람 하나 있어서

나머지 사람이 나한테 좋게 느껴진다.

첫째, 이렇게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그 다음에 좋고 싫고라는 건 그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에요.

, 여기 있는 장병들한테 한번 물어볼게요.

강아지 좋아하는 사람 손 들어봐요.

강아지 싫어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고양이 싫어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이렇게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강아지를 싫어하는 사람을 이해를 못합니다.

어떻게 강아지를 싫어할 수 있냐?” 이렇게 되거든요.

 

그런데 체질적으로 또는 까르마, 내 습관적으로 강아지가 싫은 사람이 있는 거요.

저도 강아지를 싫어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절대로 좋아는 안 해요.

? 저는 강아지를 차에 태운 그 차에 타면 냄새 알레르기가 있어요.

그래서 숨이 막혀요.

 

저는 김치를 잘 먹는데도 고추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먹으면 땀이 줄줄줄줄 흘러내리고, 조금 더 매운 거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요.

그러면 이거를

, 고추 그거 갖고 뭐 그래?” 이렇게 말할 수 없잖아요.

 

옛날에는 우리 군대에서 술 먹으면서 술 한 잔 먹으면 쓰러지는 애 있잖아요.

그런데 과학적으로 밝혀졌잖아요. 뭐가 없어서? 간에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어서.

그걸 대학에서 억지로 입학 환영식 할 때 소주 23잔 먹여버리면 어떻게 된다? 죽어버려요.

 

그래서 매년 대학입학식 때마다 학생이 죽는 거 생기잖아.

그럼 먹인 사람은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마다의 특징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거요.

 

그러니까 마치 술 못 먹는 게 사나이답지 못하다든지, 이거하곤 전혀 관계가 없는 거요. 그건 체질적으로 효소가 있는 거거든요.

 

그다음에 요즘 동성애 같은 것도 우리가 일반적으로는 동성애는 이해하기 어려워요.

그러니까 일부 기독교에서는 완전 사탄시 하잖아요. 그런데 심리가 그렇게 일어나는 걸 어떻게 해요. 그거를. 심리가 그렇게 일어나는데.

 

그것처럼 본인이 누굴 딱 보면

싫어하는 것이 일어나는 것은

자기 까르마이기 때문에

그것은 잘못이 아니에요.

그러나 그 사람이 나쁜 건 아니에요.

이것을 구분만 하면 되요.

 

싫어하지 말아야지가 아니고

좋게 봐 줘야지도 아니에요. 안 돼요.

싫어해요.

 

내가 개가 싫어.

그러나 개 키우지 마라든지, ‘개를 왜 방에다 갖다 놓느냐?

이렇게 하면 갈등이 생길 거 아니에요. 그죠.

 

, 저 사람은 개를 좋아하구나.

그러나 나는 개가 싫어.’

개가 싫은 것을 억지로 참고 좋아할 필요는 없다는 거요.

 

그 사람이 싫지만

그 사람을 미워할 일은 아니에요.

내 까르마 하고 저 사람의 까르마가 뭐하다? 알러지처럼 안 맞는 거요.

그게 안 맞는 거요.

 

그러면 내가 안 맞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은 맞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까? 있어요.

다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아까 보니까 다수가 개를 좋아하지만, 소수가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그래서 이 세상에는 내 친구하다 버렸는데, 다른 사람 친구 잘 된 사람이 있고,

나하고 연애하다 안 맞아서 버렸는데, 그 사람을 딴 사람이 주워서 연애하잖아. 그죠.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

 

이게 왜 그러냐하면

내가 안 맞다고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거요.

내가 아이스크림 싫어한다고

아이스크림이 나쁜 게 아니고.

내가 고추 먹으면 알레르기 생긴다고

고추가 나쁜 게 아니에요.

 

내가 문제도 아니고

상대도 문제가 아니고

이건 서로 다를 뿐이에요.

 

, 저 사람이 누구하고 안 맞다?

나의 까르마, 내 업식에는 안 맞구나.

그러나 그 사람이 나쁘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에요.

왜 저런 인간하고 친구가 돼?” 이렇게 말해도 안 돼요.

그 사람하고 또 전혀 거부반응이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싫음을 억누르지도 말고

싫음을 중심으로 그 사람을 나쁘다고도 하지 말고

 

나하고 좀 업식이 안 맞는구나.’

까르마가 안 맞구나.’

 

그러나 저 사람도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시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