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9)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467회] 문경 정토수련원 고행상의 의미

Buddhastudy 2019. 2. 8. 20:13


스님의 하루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은

문경 수련원이 나오는데 거기 보면 고행상이 있더라고요

그 고행상의 의미가 뭔지 궁금합니다

부처님이 고행을 6년 하시고 그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고라고 하셨는데

고행상이 거기 있는 이유가, 의미가 뭔지 궁금합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경험을 해봐야 되요.

그러니까 어떤 일을 할 때, 그걸 해보고 성공한 것도 경험이지마는 해보고 실패한 것도 좋은 경험이에요.

? 실패해보면 다시는 그건 안 할 거 아니에요.

아 이거 잘못됐구나.” 하고 아는 것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에요.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고행을 해보시고서야 고행의 무익함을 알았다. 이런 얘기거든요.

그럼 부처님을 쾌락을 즐기셨냐? 그런 뜻은 아니에요.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서 나가가야지, 고행이 목표로 가는 길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주로 쾌락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일정한 고행이 필요해요.

그런 면에서 그 고행은, 고행상을 두고 창궐하는 거는

내가 어떤 수행을 하다 절을 하다 힘들다든지, 명상을 하다 힘들 때,

부처님 고행상을 보면

그래, 저렇게도 하는데, 이걸 가지고 뭘 내가 힘들다고 그러냐.”

이렇게 우리의 수행을 되돌아보고, 너무 안주하려고 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고행상을 둔 거예요.

 

수행할 때는 일단 하루에 40km 걷는 것은 너무 무리다.

예를 들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데 400km 인데, 하루에 40km 걸으면 열흘 만에 갈 수 있잖아.

그런데 40km5일 걸었다. 그런데 200km 와서 10흘 간 몸져누웠어.

그러면 하루에 40km 간 게 도움이 되요? 안 돼요? 도움이 안 돼죠.

그렇다고 하루에 10km씩 가면 어때요? 40일 걸리잖아. 그런데 하루에 20km씩 가니까 몸도 견딜 만 하고 시간도 절약이 되요.

 

10km 가면 너무 게으름에 속하고,

하루에 40km씩 간 것은 너무 지나침에 속하는 거요.

 

그러면 실제로는 열흘 만에 못가고 20일이 초과되어 버려요. 열흘 아파버리니까.

그러면 200km를 닷세에 가고 열흘 아파버리고, 20km를 닷세에 가고 하면 20일 걸리죠.

그러면 만약에 보름을 아파버렸다면 25일이 걸리잖아.

그런데 하루에 20km씩 걸으니까 병도 안 나고 20일 만에 주파했다.

그러면 20km가 중도인 거요.

 

하루에 30km를 가면 안 아프다. 내 체질에.

그러면 뭐가 중도다? 30km가 중도요.

그러면 며칠 걸려요? 13일 정도 걸리지 않습니까.

요게 최선으로 가는 게 중도에요.

 

그게 몇 km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에요.

너무 치우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고,

너무 게을러도 부작용이 생기는 거요.

적절한 위치가 중도거든요.

 

그럼 이 적절한 위치를 찾으려면

어느 쪽으로 가봐야 된다?

10km 한번 가보고, 12km 한번 가보고 15km 한번 가보고,

이렇게는 중도를 찾기가 좀 어려워요.

 

처음에는 10km 가보니 너무 느리다.

40km 가보면 너무 무리다.

그래서 다시 15km를 가보니 너무 느리다.

30km를 가보니 역시 과로다.

 

요렇게 해서 어디를 찾는다?

, 내 체형과 체질에는 몇 키로가 적당하다? 20km가 적당하다.”

이걸 자기가 찾아가는 과정이거든요.

 

그런데 10km 안 가던 사람은 힘드니까,

이거 고행이다. 부처님 고행하지 마라고 그랬다. 그래서 5km 가자.’

이것은 중도가 아니에요.

 

그래서 부처님이 저렇게까지 해보셨다.

그러니까 나도 도전을 해보고, 조정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서 고행은 의미가 있다는 거요.

 

고행주의, 고행을 하면 성불한다. 이것은 잘못된 거요.

그러나 우리는 너무 현실에 안주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정진을 하려면 일정한 고행의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고행상을 수행할 때는 항상 모델로 두고 한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냥 수행을 하면 만 배하는 게 굉장히 힘들잖아요.

그런데 그 고행상을 보면 만 배는 그렇게 힘든 게 아니다.

그러니까 만 배를 이길 때, 그 고행상을 보면서

, 저렇게도 하는데, 이걸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되겠느냐?”

이렇게 우리가 수행을 할 때 자기를 격려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