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9)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아버지를 모시지 않고 병원에 보내서 죄책감이 듭니다

Buddhastudy 2019. 3. 11. 20:13


동생이 여동생이에요? 남동생이에요?

그런데 누가 반대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치매가 계시오? 조금 왔다고? 일상적인 대화는 다 되고요?

그런데 동생이 모시겠다는 오빠한테 얘기하는데 오빠가 반대하는 거절하는 이유는 뭐에요?

그럼 의논해서 하면 되지 그게 울 일이에요?

 

죄송스럽지 않습니다. ‘병원이 나쁘다이런 생각하시면 안 돼요. 그건 옛날 생각이에요.

요즘은 부잣집 노인들은 병원으로 가고, 가난한 집 노인들은 집에 있다.’ 이런 유행어 있는 거 알아요?

 

그런데 그게 울 일은 아니에요.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부모가 어린 자식을 낳아서 제대로 안 키운 것은 잘못한 거에 속하고

자식이 늙은 부모를 제대로 안 모시는 건 잘못된 거는 아니에요.

 

자식이 늙은 부모를 모시는 거는 좋은 일, 착한 행위에요.

부모가 어린 자식을 돌보는 거는 잘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그러면 이런 선악의 기준은 어디에 있냐?

어떤 자연 생태계는 선악 개념이 없습니다.

선악의 문제에서 제로베이스에요. 제로에요.

 

그러면 동물은 어미가 새끼를 낳아놓고 자기 바쁘다고 새끼를 버리거나 이런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새끼를 위해서 어미가 필요해요? 어미를 위해서 새끼가 필요해요?

새끼가 자라는데 어미가 필요하죠.

그럼 새끼가 다 자라면 어미가 필요 있어요? 없어요? 없지.

 

새끼가 독립해서 날아 나가면

어미는 자기 삶을 사는 거요.

 

그런데 어린 새끼를 두고 그걸 갖다가 돌보지 않는 것은 자연생태계에는 그런 일이 없어요.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은.

그런데 자연생태계에는 새끼가 어미를 돌보는 거는 없습니다.

아무리 어미가 어린 새끼를 돌봤다 하더라도 새끼가 커서 어미를 돌본다 하는 것은 어떤 동물에도 없어요.

 

왜냐하면 새끼라는 것은, 어린이라는 것은 아직 자기 혼자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돌보는 거고, 그 다음에 늙어도 성인과 성인의 관계이기 때문에 이것은 도와주면 좋은 일이지만

안 도와준다고 나쁜 일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람은 동물하고 달라요.

다시 말하면 사람은 자기가 직장생활 바쁘다. 무슨 일이 있다고 어린 아이를 돌보지 않거나 가정 형편이 어렵다고 버리거나 이런 일이 있어요.

이것은 나쁜 행위에요.

 

자식인데 부모를 돌보는 사람이에요.

이것은 선한 행위에요.

 

인간 세상에만 선악이 있는 거예요.

질문자가 어린 자식을 돌보지 않았으면 그건 악행에 들어가는 거예요.

질문자가 부모를 모시지 않는 것은 악행이 아니에요.

질문자가 잘 모시면 선행이에요.

그런데 질문자가 선행을 안했다고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다.

 

자기가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동생은 착한 일을 좀 해보고자 하는 거요.

자기는 착한 일을 할 수준은 안 되었나 보죠. 내 살기 바빠서. 그죠?

그렇다고 자기가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자기 아무 잘못 없어요. 걱정 안하셔도 된다.

죄의식 안 가지셔도 된다. 알았어요?

 

그러니까 아버지를 어디 모실 거냐 하는 거는 가족회의를 통해서 결정 하는 거요.

거기에 가장 큰 우선권이 있는 결정권자가 누구다?

첫째, 배우자입니다. 자기가 우선권이 있는 건 아니에요.

법적으로 아닌데, 윤리적으로는 두 번째 뭐다? 아들이에요.

순번이 세 번째 자기하고 자기 동생은 세 번째 들어가는 거요.

 

그런데 둘이니까 다수잖아. 힘을 합해서 동생 집으로 밀어주는 건 괜찮아요.

그럼 오빠를 좀 속된말로 뭐한다? 꼬셔야지. 설득을 해서 엄마한테 용돈을 주든지 하면 되는데,

엄마가 볼 때는 자기가 같이 안 살아서 모르는데, 평생을 같이 산 부인이 남편을 같이 살기 힘들다하는 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치매 때문에 그러든, 성격 때문에 그러든.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같이 산 사람에게 결정권이 있는 거요.

 

보통 부모를 보시고 사는 옛날식으로 말하면 맏며느리는 시어머니한테 칭찬을 못 들어요.

그런데 23차 지차 며느리들은 1년에 한두 번 명절 때만 오고도 칭찬을 듣죠.

와서 등도 두드려주고, 용돈도 주고 그러잖아.

매일 사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

 

그런데 시어머니는 맏며느리 심정을 잘 모르는 거요.

그런 것처럼 실제로는 갈등을 일으켜도 모시는 사람이 가장 은혜를 주는 사람이오.

그런데 그 어머니가 같이 살기 힘들다 할 때는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만 생각하지 말고, 엄마도 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우선 요양병원에 모셨으니까, 모시는 거 보다는 자기가 자주 방문하는 게 쉽지 않을까.

모시는 건 실제로 자기 마음은 그렇지만 모셔보면 엄마도 못 모시겠다는데 자기가 모셔질까?

내가 볼 때는 동생도, 몰라. 동생이 뭐 관세음보살 쯤 되면 몰라도 어려워요.

 

그러니까 모시겠다는 뜻은 좋으니까 우선 병원에 좀 더 계셔보고

건강상태가 괜찮거나 이러면 동생 집으로 옮겨서 조금 있어보고 동생도 못 모시겠다 하면 아버지는 더 불행해집니다.

 

? 자기하고 아내와 자식이 다 자기 싫다는 거를 알면 그 얼마나 충격이 많겠어요.

그래도 딸이라도 모시겠다. 안 모셔보니까 모시겠다 하는 이런 마음을 내는 거거든요.

막상 모시면 그런 마음이 안들 수도 있어요.

 

그래도 모시겠다는 사람을 두고 내가 병원에 있는 게 심리적으로는 더 안정이 되요.

그러니까 자기는 지금 그거 갖고 죄의식은 갖지 말고

병원을 뭐한다? 모신다 생각하면 병원에 매일가도 괜찮아요.

매일은 못가도 일주일에 한번은 꼭 가야될까? 안 가야 될까? 가야돼요.

그거 정도로 자기 할 일을 하면 되지, 자기가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