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회) 못난사람을 보면 미움이 생깁니다

Buddhastudy 2010. 10. 2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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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는 이런 거 같애요. 과거 잘 나갈 때는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요즘 퇴직해서 집에 있으면서 또, 활동하면서는 이렇게 미워하는 사람이 생긴다. 이런 얘기인데요. 첫째, 잘 나갈 때는 왜 미워하는 사람이 없느냐? 내가 잘나가고 내가 바쁘기 때문에 그 문제 제기하는 거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안 써요. 누가 나를 비난한다 해도 그 별로 신경을 안 쓴다. ? 내가 내부에 떳떳하고 당당하기 때문에. 이건 아주 좋은 거에요. 부처님을 세상사람들이 많이 욕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교도들이. 그러니까 부처님이 비난하는데도 빙긋이 웃으셨어요. 우리 같으면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맞대응을 할거 아닙니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부처님께서 내면의 세계에 아주 떳떳했기 때문에 당당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았든 지금 지혜롭게 살면, 과거의 내가 살아온 모든 삶들이 정화가 돼버린다. 이렇게 내면이 당당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직장에 다니시면서 자기 나름대로 일을 잘 하실 때는 내면이 당당하기 때문에, 소소한 거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고, 구애를 받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게 수행이되서 내면이 당당했으면, 직장에 다니나 직장을 그만두나 똑 같을 텐데. 수행으로가 아니고 그 잘난 맛에 당당했기 때문에 그 잘난 척 할 수 있을 때는 문제가 안됐는데. 지금 그만두고 나와서 약간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상태하에서는 온갖 것이 다 시비거리가 된다.

 

그러니 그때 문제가 없었다고 수행이 잘된 것도 아니고. 지금이 문제가 있다고 수행이 안된 것도 아니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냥 중생심이었다 이 말이오. 그러면 그때보다 지금은 나빠졌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는 내가 이런 중생심, 분별심을 갖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지금은 시비심이 일어 나는걸 보고 ~ 내가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미워도 하고, 이런 사람이구나하는걸 알게 됐으니, 알게 된 게 좋아요. 모르는 게 좋아요? 알게 된 게 좋습니다.

 

어떤 사람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고 진단을 받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실망을 해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어요. 그런데 자세히 한 번 살펴 봅시다. 암이 오늘 아침에 생긴 거요? 아니죠. 어제도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있었죠. 그런데 어제는 웃고 떠들고 잘 지냈습니까? 안 지냈습니까? 잘 지냈지. 암은 똑같이 있는데, 왜 어제는 웃었는데 오늘은 이렇게 우울하냐? 괴로우냐? 이 말이오. 그러면 내가 암이 있으면, 암이 있다고 아는 게 좋은 일 입니까? 모르는 게 좋은 일 입니까? 모르는 게 좋은 일이에요? 알아야 고치든지 어떻게 하죠. 그죠.

 

그것처럼 내 마음속에 미움이 있고 분별심이 있다. 그런데 내가 잘날 때 그걸 모르고 지냈는데. 이제 내가 이런 인간이구나 하는걸 알게 됐어요. 이건 좋은 현상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죽기 전에 부처님 법에 귀의해서 수행 정진해서 이것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 말이오. 첫째는 이런 나를 보고 실망하지 말고 기뻐해야 된다. ‘~ 나란 인간이 이런 인간이구나. 이게 나의 실제구나.’ 두 번째는 화내고 짜증내는 게 잘하는 일이에요? 아니죠. 암이 있다 하는걸 기뻐하라니까. 암이 있는 게 좋은 거에요. 그런 뜻은 아니에요. 이걸 고쳐야지.

 

그러니까 내가 화를 내고 미워하고 한다는 건 좋은 건 아니에요. 첫째 제가 긍정적으로 보라는 거는 이런 사실을 내가 알았다는 건 긍정적이다. 두 번째 이것은 개선 되야 할 일이다. 고쳐져야 할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고칠 거냐? 하는 문제요. ~ 누군가를 미워한다 할 때. 그 사람이 잘했어요. 내가 잘했어요?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 그럴 때 그 사람이 잘했다는 거요. 내가 잘 했다는 거요. 내가 잘했다는 거요. 그 사람 잘못하고 내가 잘했다 이 말이죠. 내가 잘못하고 그 사람이 잘했는데,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할 수가 있어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미움이 일어난다는 건 내가 잘했다 이 말이오. 내가 잘했다. 그 사람 잘못했다 이거요.

 

그런데 조금만 더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자. 옛날에 며느리 시어머니 싸울 때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다 이런 말 아시죠? 그러니까 사람의 생각, 사람의 견해는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자기를 기준에 놓고 보면 내가 옳고 상대가 그르게 되요. 그러면 상대는 어떻겠어요? 그 사람도 자기를 기준으로 해 놓고 보면 자기가 옳고 내가 그르게 되겠죠. 그래서 우리가 갈등이 생기는 거요. 그러면 진실은 어떠냐? 진실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게 아니고, 사람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 이거요.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 이게 색이에요. 내 생각이 옳다는 상을 지은 거요. 너의 생각은 그르다 하는 상을 지은 거에요.

 

그런데 실제는 어떠냐? 다를 뿐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런 건 아니다. 이걸 우리가 굳이 얘기한다면 공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다만 서로 다를 뿐인데 나를 기준해 놓고 보니까, 내가 옳게 된 거요. 그러니까 그런 상대를 고치려고 하는데 안 고쳐 지니까 어때요? 미워하게 된다. 그래서 이 미움을 없애는 거는 미워하지 말아야지 라고 결심한다고 해결이 되는 거 아닙니다.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은 내가 옳다는 것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용서해 줘야지. 용서해 준다는 건, 그래도 누가 잘했다는 거요? 내가 잘했다는 거요. 그래서 용서해 주기도 어렵지만은, 그러나 용서해 주는 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수행자는 본래 옳고 그름이 없다. 내 입장에서는 옳다는 생각이 드는 건 현실이에요.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근본을 보면 서로 생각이 다르다.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가 옳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다. 이렇게 그럴 수도 있구나.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구나 라고 이해하면, 미움이 저절로 사라져 버립니다. 미움을 없애려고 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이오.

 

그래서 이제 직장생활도 은퇴를 하셨으니까. 나이도 좀 드셨고. 인생도 많이 경험했지 않습니까? 젊은 시절에 내가 옳다고 많이 고집도 하고 살았는데. 오래 인생을 살아보면, 참 옳다 그르다 하는 게 허망하다는 거 알게 되죠. 그러기 때문에, 이해,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구나. 이런 마음을 자꾸 내십시오. 그러면 이 미움이 저절로 사라진다. 이치는 이런데 꼴만 보면 탁 미워진단 말이에요. ? 내가 옳다는 것이 이미 습관화 되 있기 때문에. 습관화 되 있기 때문에 저절로 자동으로 반응을 합니다.

 

그래서 이때는 지금 내가 옳다. 화가 탁 날 때, 미워질 때, 자기를 딱 알아차려야 됩니다. ! 내가 또 내가 옳다고 고집하구나. 이렇게 순간순간 알아차려야 된다. 먼저 이치를 먼저 알고, 그러나 현실에선 안될 때는 안 되는 그것을 알아차려서 내려놓는다. 그런데 획 휘둘려 가지고 순간에 못 알아 차려요.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지나간 뒤에라도 ! 내가 그때 놓쳤구나. 아이고 미안합니다. 내가 내 생각에 사로잡혀서 당신을 미워했군요.’ 이게 뭐에요? 참회에요. 그에게 참회를 해라. 그렇게 하면 조금씩 조금씩 이런 미움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럼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