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MBC1919-2019 기억-록

[기억록] 호사카 유지, 조명하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Buddhastudy 2019. 11. 15. 20:41


일제는 이 사건에 대해

한 달간 보도를 통제했다.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대만총독이 경질되었고요

경찰서장 사임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일제를 두려움에 떨게 한 사건

이 분의 의거는 대한 독립 역사에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런데 왜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는가.

그것을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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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왕족은 일본인에게 있어서 신이었죠.

그래서 왕족을 표적으로 삼는다, 라는 것은

일제 자체를 표적으로 삼는 그런 뜻이 있었고요

 

일본왕족 = 일본제국

 

일본 육군 대장이자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

일본의 왕족구니노미야 구니요시

 

대만 주둔 일본군의

전비 태세를 점검하러 대만을 방문한

구니노미야에게 날아든

독 묻은 단도

 

오직 자신만의 결심으로 의거를 단행한

조선 청년 조명하

 

일제는 당시 왕족으로 노린 첫 번째 의거였기 때문에

일왕 히로히토에게도 굉장히 충격을 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제는 이후, 조명하 의거에 대한

한 달간의 어떤 보도도 하지 않았던 거죠.

 

이 충격을 어떻게 가라앉히고

독립운동의 의지를 꺾을까

상당히 왜곡된 내용을 만들어서 신문에 실었다.

 

조명하의 의거에 대한

일제의 왜곡된기록

 

실망한 나머지 자살을 결의하였다.

감히 대역죄를 저질렀다.

-대만일일신보 1928.6.15.

 

모르핀 중독자

우발적으로 위해 입혀

조선인이라고 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장래희망도 없기 때문에

세상을 비관해 자살을 경의

-밀대일기 일제강점기 육군성 자료)

 

조명하 의사에 대해서 뿐만이 아닙니다.

굉장히 많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폄하시켰습니다.

독립운동가, 그리고 독립군을 비족(천한 민족), 테러리스트, 불령선인이다.

 

이봉창 의거 관련:

취업난의 초조함 때문에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을 뉘우치다

-<요리우미>신문 호외

 

윤봉길 의거 관련:

단순히 범행자의 광폭욕을

만족시킴에 그치는 것

-<오사카 아사히 신문> 논설

 

일본의 왜곡된 기록과 그 시도는

지금까지도 역사를 바로 기억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조명하가 남긴

세 장의 사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듯이

그도 자신의 행적을 일제가 알아내면 안 된다라는 생각 하에서

오히려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 편지를 읽으면 태워라이런 식으로 계속...

 

우리는 왜 기억해야 하는가

 

기록이 없다고 해도 독립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고 계속 독립운동을 한 결과가

현재 우리의 삶이다. 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 사람들을 기억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 어딘가에 남아 있는 그 기록을 더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현재는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그날의 결과물

 

대한의 젊은이여,

조국을 굳게 지켜라.

조국을 잃으면

자유와 정의, 평화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나는 삼한의 원수를 갚았노라.

죽음의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 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 하리라.”

-순국 당시의 유언

 

조명하

(1905.04.08~ 1928.10.10)

 

호사카 유지

조명하 기억하며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