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유행어가 있었잖아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역사도 좀 그렇지 않나요?
1987년 6월 민주항쟁
누군가는 국회의원이 되었고, 장관도 되었고
그런데 자신을 조용히 민주화의 불쏘시개로 내어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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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맏아들만큼은 공부시키려 애썼다.
어머니의 고생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아들은
졸업 4개월을 남기고 중학교를 자퇴했다.
글과 가까이 살라며
아들을 취직시킨 곳 ‘인쇄소’
열여섯에 인쇄공이 된
강은기
친구의 질문
“너는 대학 갈 생각을 안 하니?”
“공부 열심히 해봤자, 유식한 놈밖에 더 되겠냐?
나는 그냥 무식한 놈 할란다.”
유식, 무식.
세상의 평가에 연연하기보다
사회를 위한 나의 소망을 찾고 싶었다.
-강은기
세진 世進 인쇄소
세상으로 나아간다.
서슬 퍼렇던 유신정권 시절
친구부탁으로 정부 비판 유인물을 인쇄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올바른 일이면,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런 마음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강은기
언로가 차단됐던 시대
진실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유인물
강은기 사장 말고는
그런 유인물을 제작해 주려는 데가 없었다.
1970 80년대 시국관련 유인물 대부분은 그가 제작한 것들이었다.
중앙정보부, 안기부, 경찰, 검찰 연행
인쇄소 기물 압수
계엄령 위반
3년형 선고
공안 당국의 매서운 감시
모두 잠든 새벽
강은기는 인쇄기를 켰다.
“내 인쇄기는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도구다.”
“그때 운동 단체들이 돈이 어디 있어.
대부분은 외상이었지...”
인쇄소는 빚만 늘어갔다.
그런데도 강은기 사장은
민주화 운동을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찾아오면
밥값에 술값에 차비까지 내주셨다고 합니다.
30여년
앞서 나가는 이들을 응원하며
언제나 묵묵히 그들의 뒤를 지켜낸 사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민주화를 꽃피워내고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으로 남았던
강은기
그의 인쇄물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시민들에게
단비처럼 뿌려졌다.
고통을 겪었으나 굴하지 않았고
도움을 주었으나 빛내지 않았다.
강은기
(1942.2.16 ~ 2002.11.9)
이승준
강은기를 기억하여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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