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이게 운명이기 때문에
그런 운명을 헤쳐나가는 거는
그것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아니고
그냥 받아들이고
그리고 담담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는 거죠.
(한 부모 가정이고
발달장애인 작은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큰아들이 내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금방 결혼도 할텐데
며느리가 작은아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일단 이런 문제가 ‘우리가 어떻게 이거를 준비해야 되느냐?’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시기보다는
좀 발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미래에 걱정되는 일이 있을 때
‘그거를 이렇게저렇게 준비하면 아마도 되지 않을까?’
또는 이런 점이 염려된다면 ‘이렇게저렇게 당부를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아시다시피 사람 마음이란 건 다 변해요.
그래서 ‘어떻게 이런 걸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이 세상에 우리가 미리 준비해서
다 그대로 된 일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이 준비해도 그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발상의 전환을 좀 하시라고 생각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게 뭐냐 하면
그렇게 염려하시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게 그 질문해 오신, 상담해 오신 분의 분별심이에요.
‘어떤 며느리가 들어올 것인가?’
‘이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짐이 되지 않겠는가?’
이게 다 분별심이거든요.
무슨 말인고 하니
정말 예상 못한 좋은 며느리가 들어올 수도 있어요.
“도련님이 저런 분이니
친자식처럼 또는 친가족처럼 끝까지 잘 보살핍시다.”
이렇게 천사 같은 부인이 며느리가 들어올 수도 있어요.
사실 우리 예전에 미국의 선교사들 중에는
우리나라에 와서 장애인하고 스스로 기꺼이 결혼한
천사 같은 미국인 부인들도 있었어요.
요새는 좀 드물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중요한 게
‘어떻게 준비하느냐?’라기보다는
지금 아버지로서
그 자식이나 또는 앞으로 올 며느리나 간에
가장 최선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또 그런 마음을,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이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전해주고
그대로 [동화]되게 하는 게
저는 더 바람직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자식의 입장에서도
아버지가 그런 분별심 속에서 고민하는
분명히 자식도 분별심을 일으킵니다.
‘아버지가 저렇게 걱정하니까 내가 잘해야지’
근데 사람 마음이라는 건 변해요.
며느리가 들어와서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또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내가 기꺼이 잘 모시겠습니다’ 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런 걸 일일이 다
경우의 수를 따져서 준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런 분별심 속에서 노심초사하는 자기부터 돌아봐라.
그리고 그런 걸 다 내려놔라.
어차피 이게 운명이기 때문에
그런 운명을 헤쳐 나가는 거는
그것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아니고
그냥 받아들이고
그리고 담담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는 거죠.
그런 아버지의 자세가
오히려 자식이나 며느리한테는
아버지가 단 한마디도
이런 것 때문에 걱정 근심하지 않고
너무나 당연한 듯이 이런 일을 꿋꿋이 다 하셨는데
내가 이런 거 가지고 불평을 하거나, 짐이 된다거나
뭐 이런 생각을 해서 되겠는가 하는
가슴에 울림을 오히려 얻을 수 있는 거지
분별심으로 자꾸 이렇게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대처하고,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대처하고’
이렇게 온갖 머리를 다 써도
실제로 일어나는 현실은 그거하곤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그건 쓸데없는 걱정 근심일 수 있어요.
또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람은 자기가 분별심으로
미래를 어떻게 걱정하고 대처하면
그런 미래를 불러들여요.
왜냐하면 자기 수준만큼밖에 안 보이기 때문에
수준에 맞는 파장을 불러들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모든 어떤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해도
본인이 그걸 자기 수준대로 해석해서
그 디스를 해버려요.
예를 들면
며느리가 진짜 좋은 마음에 이렇게 와서
‘도련님을 내가 앞으로 잘 봉양하겠다’라는 마음을 갖고 와도
시아버지 되실 분이
‘네가 이걸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라는 그 노파심을 가지고
먼저 부정적인 마인드로 대하면
며느리 마음에도 벌써 그게 전파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자기의 분별심으로
자기의 앞날을 미리 측정하고 예단하는 거야말로
사실은 부처님께서
‘제발 그런 거 좀 내려놔라’ 가르치신 삶이에요.
그래서 저는 지금 그런 거 가지고
걱정되고 염려되셔서 상담하시는 거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여태까지 살아오신 삶을 돌이켜보면
내가 걱정하고 준비한 대로 다 해결되고
그대로 흘러간 삶보다는 아닌 게 훨씬 많거든요.
그러니까 그 마음을 다 내려놓으세요.
비우시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둘째를 보살피고
또 앞으로 며느리가 오든, 아들이 어떻게 마음이 변하든
그 일편단심을 그냥 공감, 공명할 수 있는 존재로서 사시다가
가시면 되는 거예요.
그럼 둘째가 그다음에 무슨 뭐
나라가 보살피든, 형이 보살피든, 자기 운명인데
뭘 그렇게 죽은 다음에까지 걱정 근심을 한다고 해서
해소가 될 문제도 아니고
안 될 문제를 괜히 본인이 지금 끌어안고 고민하시는 거거든요.
그렇게 마음을 드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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